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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춘·유호·현인의 '골든 트리오'

한국전쟁 중 수 많은 진중가요 발표
피라민·이산가족 등 응원하는 공식 관용어구호 애용
[우리시대의 명반·명곡]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 (1953년 오리엔트레코드 上)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딱 60년이 되었다. 강산이 무려 6번이나 변했으니 상당수 외국인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졌다고 해도 섭섭할 것은 없다.

하지만 얼마 전 초등학교 3-6학년 3600명을 대상으로 한 언론조사에서 40%에 달하는 우리 아이들이 '6·25 한국전쟁은 조선시대에 일어난 전쟁'으로 잘못 알고 있고 20%는 '일본과의 전쟁'이라는 황당한 대답을 했다고 한다.

또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남북한의 경계가 휴전선이 아닌 38선으로 알고 있다는 조사결과와 18세 이상의 성인 상당수도 한국전쟁이 정확하게 몇 년에 발발했는지조차 모른다는 놀라운 결과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전쟁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민족 최대의 비극이자 한국 근현대사의 최대 사건이다. 전쟁은 국토를 황폐화시켰을 뿐 아니라 당대 대중문화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분단된 땅덩어리처럼 대중문화 역시 남북으로 양분되는 아픔을 안겨주었다. 월북이든 납북이든 전쟁 중에 북으로 넘어간 모든 문인과 대중 문화인들의 작품은 그 내용의 여부와 상관없이 금지의 철퇴가 내려졌다. 그 바람에 원작자가 뒤바뀌어 발표된 작품들로 인해 최근까지 송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대중가요의 대표적 금지 인사는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의 남편인 작곡가 김해송과 작사가 조명암일 것 이다. 그들의 이름 석 자는 오랜 기간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일종의 터부였다.

드라마 작가이자 작사가인 유호와 작곡가 박시춘 콤비도 뛰어난 진중가요를 남긴 기억해야 될 인물들이다. 사실 두 사람은 역사의 격동기마다 당대의 시대상을 담은 적절한 노래로 대중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불멸의 명곡을 생산했다.

해방 이후 '신라의 달밤', '럭키 서울', '비 내리는 고모령'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두 사람은 1950년 현인이 노래해 지금껏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회자되는 진중가요 '전우야 잘 자라'로 서울수복의 기쁨을 대변했다. 그리고 1·4 후퇴를 배경으로 한 신세영의 '전선야곡', 서울 환도를 배경으로 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도 이들의 합작품이다.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미군들의 여흥을 위한 미8군무대가 생겨나면서 비로소 미국의 팝송이 급물살을 타고 국내에 유입되었다. 당시 미국 문화는 무조건 흉내내야 되는 지상 최고의 문화양식이었고 따라하고 싶은 로망이었다. 대화 중에는 무조건 영어 단어를 써야 있어 보였고 미제 물건을 사용해야 행세할 수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황당한 대중가요들이 양산시켰다. 장세정의 '샌프란시스코', 백설희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박단마의 '슈샤인 보이',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 같은 노래가 그 것이다.

사실 한국전쟁 즈음의 대중가요는 해방 시기 노래양식의 연장선상인 일본의 엔카나 중국풍의 멜로디가 대부분이었다. 국가 전체에 신음소리가 요란했던 당시 고통받는 대중의 애환을 달래주는 슬픈 노래들과 더불어 이 같은 국적불명의 황당한 노래들이 동반 유행되었다.

이는 세계 최강의 국가로 여겨진 미국문화에 대한 당대 대중의 무차별적인 동경이 빚어낸 일그러진 현상이었다. 하지만 노래에 미국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도 대중음악인들은 서구의 음악양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국적 취향을 드러내야 했기에 황당한 미국의 지명과 영어 단어가 들어간 국적불명의 노래가 양산되었던 것이다.

동족상잔의 절박한 상황은 무수한 진중가요를 탄생시켰다. 그 중 박시춘, 유호, 현인 콤비는 수많은 전쟁 명곡을 발표한 사상 최고의 골든 트리오였다. 작사가 유호는 지금까지도 공식 군가처럼 불리는 '진짜 사나이'를 쓴 인물이고 박시춘은 전쟁 막바지인 1953년 현인을 통해 '굳세어라 금순아'를 발표했다.

노래제목 '굳세어라 금순아'는 당시에는 피란민들과 이산가족에게, 지금은 힘겨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응원하는 공식 관용어구로 애용되고 있다. 또한 김정구, 박경원, 남백송, 김광남, 김희갑, 배삼룡, 나훈아, 현철, 김연자, 이박사 등에 의해 수없이 리메이크되면서 불후의 명곡으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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