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멜로디로 슬픔 극복 메시지한국전쟁 직후 시대상과 호흡하며 '민족가요'로 널리 애창[우리시대의 명반·명곡]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 (1953년 오리엔트레코드 下)

어느 시대건 대중가요는 시대성을 절절하게 담아냈다. 무려 100만 명이 희생된 한국 전쟁 때에도 대중가요는 큰 힘을 발휘했다.

피난민들의 고통과 애환을 달래준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은 그 시대가 낳은 불후의 명곡들이다.

당대 최고의 가수 현인이 1953년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상처받은 피난민의 마음을 위로했을 뿐 아니라 세대를 초월해 지금껏 사랑받는 명곡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 노래가사에는 흥남부두, 1·4후퇴, 국제시장, 영도다리 등 당대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무수하다. 전쟁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낯선 타향에서 고통받은 피란민들의 슬픔이 어떠했을지는 이 노래 속에 올곧이 담겨 있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간접경험을 안겨주는 이 노래는 1950년 12월 15일부터 10일간 10여만 명의 피란민이 군용선과 목선, 그리고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등에 올라 흥남부두를 철수한 그때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이 노래를 작사한 강사랑은 여순사건에 연루되어 오랜 기간 도피생활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중 대구 오리엔트레코드 문예부장으로 있던 작곡가 박시춘을 찾아갔던 그는 피란민의 고단한 삶을 경험하고 이 노래의 가사를 완성했다. 생생한 다큐멘터리 같은 가사에 감명을 받은 박시춘은 곧바로 작곡에 들어가 오리엔트레코드사 2층의 다방에서 군용담요를 창문에 겹겹이 가리고 힘겹게 녹음을 마쳤다고 한다.

이 노래는 휴전 무렵 전쟁과 분단으로 고통받은 대중의 정서를 절절하게 담아내 대중가요의 최대 미덕인 위로의 기능을 십분 발휘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향민의 아픔과 소망을 담은 애절한 가사와는 달리 경쾌한 멜로디를 차용해 슬픔을 극복시키는 놀라운 기적을 창출한 점이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만나 함께 춤을 추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곧 현실화될 것 같은 최면을 발휘했다.

이처럼 전쟁의 참상을 절묘하게 묘사한 이 노래는 전쟁 직후의 시대상과 호흡하며 민족가요로 승화되며 널리 애창되었다. 그 결과 동명의 영화가 두 차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코미디의 패러디의 영원한 소재임은 물론이고 이미자, 나훈아, 황금심, 은방울자매, 박일남, 김연자, 송해, 김희갑, 이박사 등 수 십 명의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한국전쟁의 흔적이 남겨진 남북한의 지명은 무수하지만 대다수의 피란민이 집결했던 부산은 상징적인 공간이다. 특히 부산 동광동 피란민촌에 위치한 <40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설움과 망향의 심정을 간직한 상징적 공간이다. 실제로 그 곳은 한국전쟁 당시의 애환을 담고 있는 풍경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물지게를 진 소녀, 튀밥 튀기는 노인, 혼자 계단에 앉아 아코디언 을 켜는 조각상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의 고단함을 직접 경험했던 노년층에겐 남다른 감회를 안겨줄 이미지들이다. 또한 그곳에는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전해주는 박재홍의 '경상도 아가씨' 노래비가 피란민의 고단한 삶을 증언하고 있다.

40계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부산의 명물 국제시장과 영도다리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은 헤어질 때 무작정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소리쳤다고 한다. 지금도 영도다리 계단 아래 해변 가에는 피란민들의 흔적을 간접 경험시켜주는 그 시절의 낡은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영도다리를 건너면 가수 현인 선생의 전신 동상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영도다리를 오가는 이들에게 전쟁의 아픈 추억을 노래로 전하며 쉼터 역할까지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한국전쟁 자체를 잘 모른다. 역사가 외면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디지털 세상에 그 시절처럼 온 국민이 공감하는 시대적 정서를 담은 명곡을 기대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까?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절 대중가요는 민족의 아픔을 대변했던 위대한 가락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