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삼순>서 <개인의 취향>까지 제 멋대로인 여자들의 진화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제 멋대로'인 여자들이 TV를 점령했다. 실수 연발에,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현실을 도피하려 한다.

겉은 똑똑해 보이는데 내실(내적인 가치)은 채우지 못한 여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어디 한 군데 모자라 보이는 여자들, 즉 '철부지녀'들의 이야기가 안방극장을 수놓고 있다. 왜 시청자들은 이들에 관심을 가질까.

'철부지녀', 계보는 있다

2005년 전국을 강타한 MBC <내 이름의 김삼순>은 30대 노처녀인 김삼순(김선아)의 삶과 사랑을 경쾌하게 그리며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삼순은 뚱뚱한 외모로 자신감을 잃은 채 사랑에도 서툰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문 파티셰라는 타이틀을 얻고, '연하남'과의 사랑을 꽃피우며 나름대로 행복한 여성으로 대변된다. 긍정적인 성품이지만 똑 부러지지 못한 성격과 어눌한 말투는 '김삼순표' 캐릭터의 시작이었다.

KBS '신데렐라 언니'
이런 캐릭터는 SBS <파리의 연인>(2004), KBS <오! 필승 봉순영>(2005) 속 여자 주인공들과 닮아있다.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김정은)은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도 "눈물은 아래로 떨어지지만 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며 슬픔을 웃음으로 넘기던 '철부지녀'다.

<오! 필승 봉순영>의 봉순영(채림)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혼자 들떴다가, 아무것도 아닌 호의에 혼자 감동받고, 아무것도 아닌 말에 혼자 막 가슴조려하고. 고쳐보려고 했는데도 안 되더라고. 어쩌겠냐? 그게 난데"라며 사랑에 서툰 여자들을 대신했다.

이들은 이어 KBS <아가씨를 부탁해>(2009), SBS <시티홀>(2009)과 <스타일>(2009), MBC <커피프린스 1호점>(2007) 속 여성 캐릭터에도 녹아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던 <아가씨를 부탁해> 속 강혜나(윤은혜), '어리바리' 여시장인 <시티홀>의 신미래(김선아), '좌충우돌'과 '고군분투'로 수식된 <스타일>의 에디터 이서정(이지아), 세상 물정 모르던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 등은 소위 '겉은 멀쩡한데...'를 곱씹게 했던 캐릭터들이다.

이런 '철부지녀'들은 현재 '무개념'에 '몰상식'까지 더해지며 새롭게 진화했다. KBS <신데렐라 언니>의 송은조(문근영)는 가족의 사랑이 고프다. "넌 꿈이 뭐야?"라며 새 식구가 된 동생 구효선(서우)에게 시니컬하게 묻는다. 자신의 내면을 반어적으로 드러내면서,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신데렐라'인 동생에 대한 질투를 차가울 정도로 절제한다.

역으로 표현하면 "사랑을 달라"고 졸라대는 어리광이다. KBS <부자의 탄생>의 부태희(이시영)는 재벌가의 딸로, 안하무인격으로 '무식'하다. "아빠, 저 회사 마음에 안 들어. 인수해버려"라며 개념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KBS '부자의 탄생'
MBC <개인의 취향>의 박개인(손예진)은 자기 좋을대로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간다. "사랑을 찾자"며 트레이닝복에 꽁지머리를 휘날린다. SBS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김소연)는 어떤가. 좋은 성적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도 '무개념' 검사라는 소리를 듣는다. 온갖 명품으로 치장하는 것도 모자라 미니스커트에 킬 힐을 신는다.

열 손가락에 반지는 기본. '철부지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신기한 건 '철부지녀'를 내세운 드라마들이 10~20% 이상의 고른 시청률로 사랑받는다는 점이다.

<부자의 탄생>과 <신데렐라 언니>의 홍보사 3HW.Com의 이현 대표는 "우리 사회의 어디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다. 그간 너무나 완벽한 외모와 실력, 청순가련한 모습까지 지닌 여자들이 그려졌다"며 "최근에는 약간 허술한 캐릭터들이 호감을 얻고 있다. 똑 부러지고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제 지루하다.

<부자의 탄생>의 이시영은 거부감 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다. 지금 옆집에 살 것 같은 여자들의 이야기에 시청자들도 큰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철부지녀'인가?

SBS '검사 프린세스'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의 신애라는 백화점의 판매담당 여직원에서 일약 공주로 신분이 승격한다. 이 같은 '신데렐라' 이야기는 많은 묘한 판타지를 자극하며 여성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이후 MBC <국희>(1999)의 김혜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굳건하게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강한 여성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듯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은 연약하고 수동적인 여성에서 적극적이고 강인한 캐릭터로 변화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라마의 주제는 인생 역전의 화려한 성공이 아닌 자아 성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전의 드라마는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주로 보여줬다. 지금은 성공이 아닌 '행복'이 가치의 중심에 있다"며 "드라마 속 여성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현실과 부딪히고 싸운다. '철부지녀' 캐릭터도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스토리가 주목받으면서 많이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신데렐라 언니>, <부자의 탄생>, <개인의 취향>, <검사 프린세스>는 표현의 기법이 다를 뿐 모두 여주인공들의 성장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송은조나 부태희, 박개인, 마혜리는 서로 각기 다른 고민들로 드라마를 이끈다. 이들은 각각 가족의 사랑이 부족하고,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며, 사랑의 기술이 부족하고, 사회성이 떨어진다.

한 가지씩 채워지지 않은 내면을 드러내면서 드라마를 재미있게 끌어가고 있다. 이 속에서 시청자들은 현실 속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여주인공들의 갈등과 고민에 함께 머리를 맞댄다. 시청자들은 이런 요소들에 공감대를 형성해가며 TV 앞에 앉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내면은 외롭고 소외감을 느낀다. 드라마도 똑같이 캐릭터로 현실을 반영한다. 캐릭터들의 내적인 성장스토리가 낯설지 않은 이유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결국 이들 드라마 속 여성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고 성장한다. <검사 프린세스>가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닌 사회적인 이야기도 하면서 마혜리의 성장을 엿보는 건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앞으로 이런 캐릭터들은 더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기존보다 더 진화된 캐릭터들이 출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