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고양이>서 <개인의 취향>까지 판타지 자극하며 인기

MBC '개인의 취향'
2003년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는 '동거(同居)'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대중을 매료시켰다. 알콩달콩한 경민(김래원)과 정은(정다빈)의 동거생활은 짜릿한 판타지를 제공하며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얼마 전 종영한 MBC <개인의 취향>도 남녀 주인공의 동거생활이 극의 중심을 이끌면서 화제가 됐다. 그 후로 7년이 지난 세월 동안 동거는 여전히 많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이야깃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변화하는 동거문화

7년 전 인터넷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는 20대 젊은이들의 경쾌한 연애관을 동거를 중심으로 풀어갔다. 이 드라마에서 동거는 성(性)의 개방이라는 거창한 의미부여가 아닌 연애의 연장선상의 하나로 그려졌다. 즉 혼전동거라는 무거운 소재가 드라마를 만나 대중에게 연애의 또 다른 접근방식으로 비춰진 셈이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는 "미디어 속 동거문화는 우리 사회의 변화된 연애관를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 등 같은 아시아권 국가만 봐도 동거는 더 이상 사회적인 이슈가 아닌 문화로 젖어들었다. 동거는 이제 여성들의 피해나, 남성들의 폐해로 여겨지지 않는다.

MBC '옥탑방 고양이'
차 씨는 "중국 드라마만 봐도 동거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낯설게 보지 않는다. 남녀가 연애를 시작해 3~4개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같이 사는 형태로 그려진다. 동거문화를 그리는 걸 버거워하는 건 한국 드라마뿐인 듯싶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혼전동거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걸 알게 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옥탑방 고양이>가 보여준 동거문화는 2004년 KBS <풀하우스>와 2006년 MBC <환상의 커플>, 2010년 <개인이 취향>으로 이어진다. 이들 드라마도 <옥탑방 고양이>처럼 경쾌하고 발랄하게 동거코드를 사용했다.

뜻하지 않은 동거생활은 주인공 남녀가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키워가는 것으로 설정됐다. 동거라는 키워드는 대중으로 하여금 발칙한 상상을 하게 하지만, 결국 사랑의 결실인 결혼으로 골인하는 '중간 정거장' 역할도 담당하며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서 동거는 결혼으로 향하는 한국 사회의 과도기적인 측면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결혼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지면서 선택적으로 동거생활을 영유하는 젊은 층이 많아지자, "결혼은 부담스럽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 동거"라는 유연한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대중문화 속에서 동거는 어떤 그림으로 그려져야 할까?

MBC '우리 결혼했어요'
동성애 문제를 정면으로 내세운 SBS <인생은 아름다워>는 차분한 어조로 예민한 부분을 꼬집고 있다. 김수현 작가는 동성애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며 가족과 친구, 주변에 이해를 구하는 식으로 화두를 던져 놓았다. "난 너를 포기 못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너를 선택하고 싶진 않아" 등 연인의 대화법이 동성끼리의 애정표현으로 둔갑해 시청자로서는 소화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은 정면으로 던져진 다소 파격적인 동성애 코드에 생소해 하면서도 흥미롭게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 드라마는 동성애를 냉소적인 비판적 시선보다는 관망하는 자세로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차우진 평론가는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성애를 다룬 방식처럼 동거문화도 호들갑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사회의 현상으로 그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 속 동거 콘텐츠의 매력

올 8월 방송 예정인 SBS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도 동거를 기반으로 한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철 없고 어수룩한 액션배우 지망생(이승기)과 구미호(신민아)가 우연히 동거를 하게 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MBC '환상의 커플'
'가짜' 게이(이민호)와 엉뚱녀(손예진)의 달콤한 동거를 보여줬던 <개인의 취향>처럼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역시 동거코드로 아기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옥탑방 고양이>, <풀하우스>, <환상의 커플>, <개인의 취향> 등 동거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들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동거라는 콘텐츠가 주는 기대요소가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린 셈이다. 2년 동안 인기리에 방송중인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도 부부라는 설정 하에 동거생활을 하는 집을 무대로 리얼한 상황을 연출한다. 프로그램 속에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배제하고 홈메이트로서의 역할이 강조된 동거생활을 보여준다.

마치 소꿉놀이를 하는 듯한 연예인들의 부부생활은 현실적이진 않지만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시청자들은 스킨십에 적극적인 남편의 모습이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내의 모습 등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동화적 판타지에 젖어든다.

한 드라마제작사의 관계자는 "동거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콘텐츠는 여성들의 취향에 맞춰진 설정이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 등 여성들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가 발굴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옥탑방 고양이>가 7년 만에 연극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영화 <싱글즈>가 뮤지컬로 재탄생한 것만 봐도 동거라는 콘텐츠는 상당히 매력적인 코드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특히 연극이나 뮤지컬을 통해 '결혼놀이', '부부역할 놀이'를 엿보는 듯한 짜릿한 쾌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 공연의 주관객이 여성이라는 점만 봐도 이들이 갖고 있는 동거에 대한 판타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유교적인 가치관이 깊게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결혼은 무거운 주제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 공연 속 동거는 골치 아픈 요소들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이처럼 동거 판타지가 자리하는 한 이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의 공급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