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감독 전작의 엑기스만 뽑아 웃음의 당의를 입힌 결정체

5월23일 63회 칸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고, 두 한국 감독이 여봐란 듯 트로피를 거머쥐고 귀국했다.

이창동 감독의 걸작 <시>가 경쟁부문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홍상수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 <하하하>가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칸국제영화제의 수상 결과를 정리해 보자.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의 공통적 원칙은 '발견'이었던 것 같다. 경쟁부문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은 태국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전생을 기억하는 분미 아저씨>에게 돌아갔다.

2004년 <열대병>으로 경쟁부문에 첫 초청되어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그간 칸의 단골손님으로 초청된 끝에 6년 만에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태국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아시아 영화로 따져도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심사위원 대상은 프랑스 감독 겸 배우 자비에 보부아의 <신과 인간>이, 감독상은 우리에게 <잠수종과 나비>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프랑스의 대표 배우 마티유 아말릭의 감독 데뷔작 <온 투어>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 대상은 2008년 디지털 3인3색으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던 마하마트 살레하룬 감독이 칸의 첫 초청작 <절규하는 남자>로 거머쥐었고, 남자연기상은 <뷰티풀>의 하비에르 바르뎀, <우리의 인생>의 엘리오 제르마노 공동수상, 여자연기상은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지만 유독 칸국제영화제와 인연이 없었던 줄리엣 비노쉬가 <서티파이드 카피>로 한을 풀었다.

태국영화에 첫 황금종려상을, 감독 전업한 배우에게 첫 감독상을, 검은 대륙의 재능 있는 신예에게 첫 감독상을(기회가 된다면 마하마트 살레하룬 감독의 영화를 꼭 챙겨 보길 권한다. 6년 뒤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처럼 살레하룬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기경력 27년의 중견배우 줄리엣 비노쉬에게 첫 여우상을 건넨 것은, 벌써 예순 살이 넘은 칸국제영화제가 "아직도 영화제로서 보석을 발견하는 총총한 눈을 잃지 않았다"는 외침처럼 들리는 감이 있다.

심사위원단이 전혀 다르지만, 비경쟁 부문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든다. 예를 들자면 "당신의 능력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젠 하산해도 되겠다"는 확답이랄까. 홍상수 감독이 1998년 <강원도의 힘>으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이후, <오! 수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올해 <하하하>까지 6번 초청 만에 얻은 첫 성과다.

칸국제영화제가 "먼 길을 자주 행차하셨으니, 여비에 보태라"며 대상 상금을 수여했을 리 만무하다. 예우차원이라기보다는, 홍상수 감독의 10번째 영화 <하하하>가 전작의 엑기스만을 뽑아 그 위에 웃음의 당의를 덧씌운, 홍상수 감독의 영화 결정체라고 보는 게 훨씬 타당하다.

<하하하>의 첫 번째 장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생활의 발견> 이후 홍상수 감독의 유머 실력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유머가 '쓴 웃음'을 유발하는 수준이었다면, <극장전>을 넘어서면서부터 간간이 '폭소'를 뽑아내더니, <하하하>에 이르러서는 '포복절도'에 도달했다. 지금까지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작가주의 예술영화' 카테고리에 속해 있었다.

비록 평자들은 이번 영화도 깊은 의미를 따져가며 분석에 분석을 거듭할지언정, 일반 관객은 그럴 필요가 없다. 부조리의 탐구가 어쩌고, 지식인의 치부가 저쩌고, 매번 같은 주제를 다루는 고집스러운 작가주의라느니, 기타 등등의 홍상수 감독에 대한 '평가'는 잊어도 그만이다.

그저 두 시간 가량 하릴없이 킬킬대고 싶으면, <하하하>를 보면 된다. 세상에 '설명해야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만큼 부적절하고 가치 없는 게 또 있을까. 웃음은 이해가 아닌 직관에서 터져 나온다. <하하하>는 인간이 웃을 수밖에 없을, 안간 본성의 웃기는 심연을 직관적으로 꿰뚫는다.

두 번째 장점은 "나아간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하하>는 홍상수 감독의 전작에서 흥미로운 엑기스만 뽑아내서 우려낸 엑기스 중의 엑기스다. <하하하>는 전작과 비교했을 때, 반복적이고 여전하지만, 동시에 새롭고 한 걸음쯤 앞서 나아간다. <하하하>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은 영화에 큰 의미가 없지만, 전작과의 비교를 위해 서술하자면, 이번에도 '두 찌질한 남자가 한국의 소도시로 여행을 떠났다가, 여자를 만나고 연애하는 과정'을 그린다.

찌질한 남자들이 나오는 건 매번 그러했고, 여행을 떠난 건 <강원도의 힘> 이후 반복적이었다. 궁색한 섹스에서 의미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인간군상을 그리는 것도 여전하다. 흥미로운 반전도 비슷하다. 영화 평론가 중식(유준상)과 영화감독 문경(김상경)이 "좋았던 이야기만 하자"고 꺼낸 여행담이 실은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걸 퍼즐처럼 엮은 구성은 홍상수 감독의 대표작인 <오!수정>에서 이미 선보인 구성이다.

이 모든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하하하>는 새롭다. 엇갈린 기억이 얼기설기 엮인 세상에 한 발이 묶인 줄도 모르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좋지 않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며 깨금발을 뛴다. 그들에게 힘을 주는 건, 술자리와 허름한 숙박업소에서의 섹스와 어줍지 않은 농짓거리뿐이다. 홍상수 감독은 이 '과거', 즉 오늘의 '현실'을 있게 만든 우습고도 치졸한 과거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귀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감독의 미소는 진심이다. 홍상수 감독의 미소 속에 냉소는 없다. 이전엔 "우리 것들이 고매한 척을 해봐야 끝내 동물이지. 다만 괴물만은 되지 말자꾸나"라고 짐짓 젠체하며 타일렀던 어투는 완전히 사라졌다. 진짜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이 귀여워 웃는 감독의 미소는 훌륭한 배우들의 몸을 스피커 삼아 증폭되고 급기야 폭발한다. 김상경, 유준상, 예지원, 김영호 같은 '홍상수 경험자' 들이나, 문소리,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 같은 첫경험 배우들까지, 너무도 훌륭한 앰프가 된다.

특히 문소리의 눈에 콕 박히는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좋은 것만 보라"는 이순신 장군(김영호)의 가르침처럼 의식을 내려놓고 쉴 새 없이 킬킬거리다가 극장 밖을 나오면, 그제야 <하하하>가 얼마나 성숙한 영화인지 어렴풋이 감이 온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인터뷰에서 홍상수 감독은 "내게 영화를 만드는 건 독을 채우는 작업이다.

이제 하나의 독이 거의 다 찬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첫 번째 독은 <하하하>로 완전히 채운 듯싶다. 이젠 두 번째 새로운 독을 채울 차례라는 듯, 홍상수 감독은 또 8월부터 새로운 장편에 들어간다. 그의 두 번째 독은 어떤 그릇일지, 사뭇 기대가 크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