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게 패션 헤어스타일 동반유행[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닥터 레게 1집 '어려워 정말' (1994년 신세기)上대마초 구속 등 승승장구하던 시기 해체된 비운의 밴드

19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랩 댄스 장르로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장르가 각광을 받으며 국내 대중음악계를 강타했다. 레게음악 열풍이다.

국내 대중에게는 생소한 장르인 레게는 60년대 말 자메이카에서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흑인 댄스뮤직에 미국의 솔뮤직이 곁들여진 특히 리듬감이 탁월한 레게음악 열풍은 김건모, 투투, 룰라, 임종환, 마로니에 등 당대의 주류가수들에게 인기를 안겨주긴 했지만 이들은 레게 전문 가수들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들의 창작 레게음악으로 무장한 '닥터 레게'야말로 이 새로운 흐름의 시작을 주도했던 선구적인 국내 유일의 레게 전문 밴드였다. 최근에도 김반장이 리더로 활약하는 '윈디시티'와 '소울스테디락커스' 같은 레게 밴드가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레게'는 여전히 국내에서는 생소한 음악장르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라는 단서는 의미 없는 추론이겠지만 만약 닥터 레게가 단명하지 않고 오랫동안 활동을 계속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레게는 혼이 담긴 진솔한 가사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리듬감이 탁월한 매력적인 음악이기 때문이다.

1993년 정식 결성되어 팀 이름을 '닥터 레게'로 정했던 것은 '전문적으로 레게음악을 하는 박사가 되자'는 의미라 한다. 결성 초기 라인업은 7인조였다. 리더보컬에 김장윤, 리드 기타에 이구, 베이스 기타 최은창, 키보드 김명환, 퍼커션 Ruin, 드럼 Sunny에다 현재 힙합계의 대부로 불리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바비 킴이 이 밴드의 래퍼로 활동했었다.

이들의 히트곡이자 데뷔곡 '어려워 정말'이 수록된 싱글 음반은 당시 3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가는 대박을 기록하며 가요 차트 3위에 등극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단 2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여러모로 기록적이다. 우선 이전에는 국내 대중이 경험하지 못했던 실험적 음악성을 담았다. 노래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같은 곡을 레게와 펑크, 록 등 무려 여섯 가지 버전으로 시도한 점은 흥미롭다. 또한 마이클 잭슨의 주도 하에 세계적인 가수 45명이 참여했던 'WE ARE THE WORLD'를 녹음한 미국 LA의 A&M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해 국내 가요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실제로 이 앨범에는 마이클 잭슨의 앨범에 참여했던 세계적인 브라스 팀이 세션에 참여했고 록밴드 U2와 마돈나의 앨범을 작업했던 세계적인 엔지니어 타비 모테가 녹음한 놀라운 음반이다.

이처럼 미국 현지 녹음 제작비만 1억 원이 넘는 아낌없는 투자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신세기레코드 사장 아들인 제작자 윤태원이 이들의 음악을 듣고 크게 고무되었기 때문. 싱글 발표 후 공중파 방송을 장악한 닥터 레게에 의해 젊은 세대들 사이에는 흑인 특유의 레게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대유행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데뷔 초기의 광풍 같았던 인기는 잠시, 리더 김장윤이 대마초와 마약 투약 등으로 구속되는 대형사건이 터졌다.

닥터 레게는 한참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해체된 비운의 밴드다. 그래서 싱글의 성공에 탄력받아 1994년 야심차게 발표한 정규 1집은 국내 최초의 본격 레게 앨범이었지만 정당한 평가 없이 사장되어 버린 저주받은 걸작이다. 앨범을 들어보면 시종 귀에 감겨오는 흥겹고 중독성 강한 리듬과, 김장윤의 탁월한 보컬과 초창기 바비 킴의 랩은 상당한 수준의 음악공력이다. 또한 연주트랙 '파이오이어'에서 들려준 기막힌 연주와 구성은 이들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뮤지션들이었음을 증명한다.

베이스기타리스트 최은창은 "음악은 더불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같이 음악을 했을 때 나오는 파워는 혼자 할 때와는 다른 것 같다. 레게에서 기타는 없어서도 안 되지만 절대로 앞으로 치고 나가면 안 된다. 현란한 테크닉보다는 한 리듬을 반복적으로 계속 치면서 영혼을 울려주는 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게는 세뇌시키는 것 같은 중독성이 강한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