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한 가사, 가슴 깊이 파고드는 멜로디[우리시대의 명반·명곡] 김범수 1집 '약속' (1999년 SONY MUSIC)'얼굴 없는 가수'로 호기심 자극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도 인기

고 김현식의 유작 '추억 만들기' 가사에 나오듯 약속을 할 때 사람들은 왜 서로 새끼손가락을 끼는 것일까?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다. 새끼손가락은 심장과 가장 가까운 혈맥이 있는, 그러니까 마음과 제일 가까운 곳과 연결이 된 곳이다.

그러니까 새끼손가락을 끼는 행위는 마음과 마음의 약속이라 보면 될 것 같다. 밀레니엄 시대를 앞둔 1999년.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구가하던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 가슴을 후벼 파는 노래가 시청자들의 귀를 자극했다.

흐느껴 우는 듯, 비에 젖은 듯 촉촉하고 애잔한 목소리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은 애잔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범수였고 그 노래는 '약속'이었다.

하광훈이 작사-작곡-편곡-코러스까지 도맡은 김범수의 1집 는 신인답지 않은 놀라운 가창력을 담아낸 음반이다. 특히 이별에 대한 슬픔이 흠뻑 담긴 애절한 가사와 가슴 깊이 파고드는 멜로디에 절절한 목소리가 녹아든 타이틀 곡 '약속'은 김범수를 단숨에 주목받는 신인 발라드 가수로 떠올렸다. 하지만 데뷔 초기 노래는 무진장 나오는데 가수의 얼굴을 볼 수 없어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다니던 김범수는 교수의 추천으로 데뷔한 이후 단 한 차례 TV출연 후 '비주얼이 약해 한 번의 방송 출연이 1집을 망쳤다'는 이유로 소속사에 의해 "외모 때문에 좋은 노래를 사장시킬 수 없으므로 완벽하게 이미지를 만들 때까지 기다리자"는 방송출연 포기 결정이 내려져 대중 앞에 서지 못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얼굴 없는 가수 만들기'는 조성모 이후 김범수와 문차일드나 R&B 남성 듀오 브라운아이즈 등으로 이어지며 당시 가요계의 트렌드로 자리잡기도 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애절한 필이 압권인 김범수는 노래마다 탁월한 영상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했던 뮤지션이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로 각광받던 조성모에 버금가는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 마케팅을 구사한다'는 평가로 받아 '제 2의 조성모'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약속'은 드라마의 주연배우였던 명세빈, 김석훈을 출연시킨 이재용 감독이 연출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영상 실험은 계속되었다. 2000년 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첨단 기술을 통한 목소리 복구 작업을 통해 듀엣곡으로 재탄생시켜 주목받았다. 이는 1991년 미국 흑인 여가수 나탈리 콜이 고인이 된 자신의 아버지 냇킹 콜을 영상으로 되살려 그래미상을 수상했던 듀엣곡 '언포게터블'(Unforgettable)'의 경우와 흡사했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하루'는 캐나다 뱅쿠버에서 KBS 인기드라마였던 '가을동화'의 두 주인공 송승헌과 송혜교를 캐스팅해 동화 같은 화면에 애절한 영상을 담아낸 뮤직비디오로 '약속'과 더불어 지금껏 사랑받는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약속', '하루'에 이어 드라마 '천국의 계단' 주제가 '보고싶다'까지 연타석 히트를 기록하자 팬들의 가수 얼굴 공개 요청이 빗발쳤다. 첫 TV출연 이후 김범수는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탄력을 받은 김범수는 미국시장에 잠시 진출해 빌보드 '핫 싱글즈 세일즈'에서 51위 기록을 세웠다. 또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다모'의 인기를 타고 드라마 OST인 '보고 싶다'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2009년 데뷔 10주년 기념으로 이뤄진 한일 11개 도시투어 오사카 공연 때 그는 '보고 싶다'를 무반주 버전으로 노래해 현장에 온 일본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시키며 무한감동을 안겼다.

'약속'은 오랫동안 각광받고 있는 대중가요의 중요 소재다. 김범수의 '약속' 이전에도 1969년도에 발표된 혼성듀엣 뚜아에무아의 '약속' 등 무수한 같은 제목의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까지 '약속'을 소재로 발표된 노래는 무려 1000곡이 넘을 정도다. 대부분 대중가요는 사랑노래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 사랑의 '약속'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가 무수히 양산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범수가 노래한 '약속'은 그 중 최고의 명곡임에 반론을 제기할 대중은 없을 것 같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