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2인자형 1인자 자유롭게 리더쉽 발휘박명수·김구라 등 새로운 정체성 찾는 노력으로 인기 유지

2인자의 고전, 살리에르 (영화 '아마데우스' 중)
개그맨 박성광은 언젠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한탄했지만, 이제 세상은 2등도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2인자 리더십>이나 <위대한 2인자>, <복종하며 지배하라> 등 2인자에 관련된 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역사적으로 1인자가 돋보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항상 2인자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둘의 관계 속에서 드라마가 탄생하고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2인자에 대한 조명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뒤늦은 반증이다. '1등의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2인자들은 1인자의 그늘에서 어떻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을까.

헌신과 공생, 2인자들의 덕목

김구라
'역사는 1등만 기억한다'는 명제는 사실 틀렸다. 1등이 더 유명할 뿐이다. 유명세는 모차르트가 압도적이지만, 그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살리에르와 비교될 때다. 현대인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동경하지만 정작 감정이입하는 것은 자신들과 닮은 살리에르의 범속함이다.

2인자의 이미지에는 '패배자'라는 뉘앙스가 있었다. 1인자보다 못하니 뭔가 부족하고 그래서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2인자는 종종 1인자의 보좌역이나 조언자 정도로 비춰질 때도 많다.

실제로 현대사의 2인자들은 살리에르처럼 1인자와 대적하기보다는 그를 보좌해 신화창조에 기여하는 인물들이었다. 중국혁명의 지도자인 모택동에게 주연의 자리를 양보한 주은래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뒤에서 조용히 지원했던 스티브 발머는 이미 성공한 2인자들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패배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1인자보다 못하거나 부족한 것도 아니다. 1인자와 2인자의 차이점은 그들이 취하는 태도의 차이다. 1인자는 하나의 상징이다. 최고의 자리에 혼자 서 있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으로 한 결과를 생각한다. 반면 2인자는 1인자와 자신이 함께 잘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1인자를 부각시키면서도 간접적으로는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을 추진한다.

그래서 2인자들은 1인자들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다. 1인자들이 상황의 흐름에 따라 더 높이 오르다가 급추락하기도 하는 반면, 2인자들은 1인자의 뒤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일관된 행보를 유지할 수 있다.

무한도전의 '박명수'
2인자 리더십을 정리한 책 <복종하며 지배하라>를 펴낸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2인자는 2등이 아니라 사실상 2인자형 1인자이며, 실질적으로 1위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항상 자신의 위치를 수성해야 하는 불안과 고독함을 가지는 사람이 1인자라면, 2인자는 그런 부담에서 자유로워 일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는 "장수하는 1인자들도 실은 이런 2인자 리더십을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용의 몸통을 자처하는 '쩜오'들

현재 이런 2인자 리더십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은 다. 한때 틀면 나올 정도로 공중파 오락 프로그램을 양분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유재석과 강호동은 최근 출연료 가압류 등으로 주춤한 상태다. 상대적으로 는 공중파와 지상파를 가리지 않고 MC를 맡으며 꾸준한 페이스를 자랑하고 있다.

두 1인자가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만 맡아왔다는 한계가 있는 반면, 는 정통 버라이어티 오락프로그램에서 가족토크쇼, 성인토크쇼까지 다양한 분야를 커버하며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있다.

그는 사실상 1인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입담을 가지고 있지만 프로그램 내에서 항상 상대방보다 한 발 빠져 상대역을 자처한다. 2인자들만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MBC <뜨거운 형제들>에서도 그는 탁재훈과 박명수에 비해 한 발 물러서 있다. 초기의 콘셉트가 독설가의 이미지로 시청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두 상대 MC들과의 호흡에 더 치중하며 2인자로서의 균형을 노련하게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MBC '뜨거운 형제들'은 2인자들의 시너지로 진행된다
하지만 2인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 박명수다. <무한도전> 초창기는 출연진이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들이 지금의 고유한 캐릭터를 갖기 시작한 것은 박명수가 스스로를 '거성'이라고 칭하면서부터다. 다른 사람들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던 유재석도 정작 자신의 캐릭터는 없었다. 이때 그는 박명수와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1인자', '국민 MC' 등의 캐릭터를 얻을 수 있었다.

데뷔 이후 꾸준하게 밀어붙였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던 그의 '호통 개그'는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을 만나면서 무한변주를 시작했다. 개인사업을 자주 언급한 탓에 '박 사장', '치킨 CEO' 등의 별명에서 출발한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구박과 호통 개그에서 '거성'과 '악마의 아들' 등을 파생시키며 승승장구했다.

40이 넘은 나이에서 오는 허약한 모습들은 소시민적인 동질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버지'나 '흑채 1기 개그맨', '찮은이 형', '민서애비', '쩜오(1.5인자의 준말)' 등은 나이가 들수록 허점을 드러내는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공감을 제공했다.

최근 출판된 <왜 그는 늘 2인자일까>에서 저자 배우리 씨는 "상대적으로 악역을 맡고 있는 탓에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행동과 말투, 그리고 외모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특징에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개발하려는 노력까진 더해진 덕분"이라고 2인자 박명수를 분석한다.

영화의 주연과 조연처럼 1인자의 존재도 2인자와 상호보완적인 시대가 됐다. 오히려 1인자가 정형화된 캐릭터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동안, 2인자들은 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변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2인자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