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이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신화에 휘둘리지 않고도 우드스탁의 감동을 채집한 이방인 감독의 사려 깊은 시선

<색, 계> 개봉 당시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비교하면, 쥐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이안 감독의 신작 <테이킹 우드스탁>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색, 계>의 인터뷰에서 이안 감독은 "내 인생은 언제나 안정을 갈구했지만, 사실은 천성이 떠돌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 관객으로서 이안 감독의 '떠돌이 천성'에 감사할 일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동양과 서양, 신세대와 구세대, 믿음과 배신, 사랑과 증오의 경계에서 부유하며 예리하고 섬세하게 갈등의 본질을 채집한 그의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안 감독의 이번 여행지는 1969년 미국 뉴욕 언저리의 작은 마을이다. 넓은 평원에서 자란 건강한 젖소가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초코 우유를 만드는 것 말곤 특별할 것 없는 조용한 마을. 하지만 록음악을 사랑하는 후대 사람들은 이곳을 '성지'라 부른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100만 명의 히피가 모여 록의 정신이 충만한 유토피아를 이뤘던 곳. 바로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전설이 시작된 장소다. 이안 감독은 이 전설의 발아시점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모든 전설이 그러하듯, 시작은 미약하고 보잘 것 없다.

영화는 '낡은' 이라는 표현이 황송할 만큼 엉망진창인 모텔 엘 모나코의 구석구석을 비추며 시작한다. 뉴욕에서 화가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는 엘리엇 타이버(드미트리 마틴)에게 고향 화이트 레이크와 모텔 엘 모나코는 따뜻한 고향이자 차마 발을 뺄 수 없는 개미지옥이다.

착한 아들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마을의 상공회장 직을 맡으며 모텔 회생에 안간힘을 쓰지만, 서비스 정신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괴팍한 어머니와 무심하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운영하는 모텔은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 엘리엇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듯 변변치 않은 벌이를 모텔 운영에 쏟아 붓지만, 돌아오는 건 차압과 빚독촉뿐이다.

마을 경제회복을 위해 여름맞이 클래식 페스티벌을 준비하던 엘리엇은 우연히 옆 마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기사를 읽는다. 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우드스탁 본부에 장소 대여를 제안한다.

엘리엇의 전화 한 통으로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난리통이 된다. 페스티벌 운영진의 헬기와 고급 리무진이 먼저 마을을 들쑤시더니, 페스티벌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모여든 히피들이 마을을 점령해 버린 것이다.

전설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탄생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전설적인 공연일 것이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전설로 승화시킨 건, 존 바에즈, 제니스 조플린, 밥 딜런에 이르는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무대였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공연'은 전설의 표면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만약 뮤지션들을 '트리뷰트' 식으로 재현한 공연 장면(혹은 다큐멘터리 영상이라도)을 보고 싶었던 관객에겐 아쉽겠지만, <테이킹 우드스탁>엔 공연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안 감독은 페스티벌의 무대 위가 아닌 무대 뒤에서 '전설의 씨앗'이 꽃을 피우는 과정을 바라본다.

숭고한 대의명분 같은 건 없다. 엘리엇은 파산 직전의 모텔을 살릴 돈을 벌기 위해 페스티벌을 유치했고, 자유와 예술을 논하며 흔쾌히 농장을 빌려주기로 했던 마을 주민은 주판알을 튕기더니 막판에 엄청난 거금을 요구하며 배짱을 튕긴다. "히피들이 온 마을을 도적질할 것"이라고 행사 유치를 강하게 반발하던 마을 주민들도 "생수 한 병을 1달러에 파는" 바가지요금으로 주머니를 불린다.

페스티벌 주최 측도 페스티벌의 정신보다 티켓 값 정산에 더 많은 신경을 쏟는다. 페스티벌의 일면은 돈으로 굴러가는 자본의 축제였다. 정작 우드스탁의 전설을 만든 건,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순수한 에너지다. 1960년대 말의 미국은 폭력의 시대 였다.

인종,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상황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베트남 전쟁에서 아들과 남편과 연인이 죽어나가는 비극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은 반전시위를 벌였다.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고자, 사람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총부리 앞에 서서 밥 딜런의 노래를 불렀다.

이안 감독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진정한 가치는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전이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곤봉으로 히피 녀석들을 진압하려고 왔다"던 경찰이 헬멧에 꽃을 꽂게 된 건, 그의 궁색한 변명처럼 "마을을 가득 채운 대마 연기에 취해서"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에너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안 감독의 카메라가 끝도 없이 늘어선 자유로운 영혼의 대열과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들과 진흙탕에서 아이처럼 뒹굴며 즐거워하는 베트남 참전자와 '웃음 쿠키'를 먹고 막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엘리엇의 부모님을 비출 때, 40년 전 자유와 평화의 에너지가 객석으로 조용히 전이된다. 우드스탁의 신화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당시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는 감독의 내공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안 감독의 초기작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테이킹 우드스탁>이 더욱 반가운 영화가 될 듯하다. 이안 감독의 '가족 3부작'이라 불리는 <쿵후선생>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에서 맛 본 따뜻한 가족 성장 드라마가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겪으며 엘리엇은 처음으로 부모의 진심을 확인하고, 부모는 다 자란 아들의 어깨를 도닥인다. 물론 한 번의 이벤트로 세대 간의 묵은 갈등이 눈 녹듯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감독의 쓴 소리도 여전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따뜻하다.

올 여름 한국에서 개최되는 록 페스티벌 티켓을 사 두었다면, <테이킹 우드스탁>으로 워밍업하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드는 궁금증 하나.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던, 저 많은 미국의 히피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