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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시네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
꿈의 성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철저하게 영화에 접목시킨 실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다크 나이트>를 내놓았을 때, 많은 평자들은 조심스럽게 이것이 그의 최고작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비록 해외 개봉을 못했지만 로테르담 영화제 '타이거 상' 수상작으로 대략적인 수준을 짐작케 하는 장편 데뷔작 <미행>을 시작점으로 본다면, <메멘토> <인썸니아> <배트맨 비긴즈> <프레스티지>를 거쳐 <다크 나이트>를 만들기까지 단 10년.

10년간 매번 한 단계 나아간 화제작을 선보여 온 감독에게 황급히 '최고작'이라는 도장을 찍어주고 싶을 만큼, <다크 나이트>는 훌륭했기 때문이다.

놀란 감독의 특기 중 하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가 들어도 흥미롭게' 하는 재주다. 그의 영화가 대부분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합격점을 받은 이유다. 과한 판타지로 결국 우스꽝스럽게 몰락한 '슈퍼 히어로' 시리즈에 철저한 리얼리티를 수혈해 <배트맨> 시리즈를 살려낸 놀란 감독은 <다크 나이트>에선 기어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구분'과 '분열'의 강박에 시달리는 인간이다. 어쩌면 그가 배트맨 시리즈를 덥석 문 이유는 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기에 가장 대중적인, 최적의 기회라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배트맨> 시리즈에는 주인공 배트맨을 비롯해 낮과 밤, 정의와 폭력, 선과 악, 삶과 죽음, 너와 나 등 극단적 경계에 양 발을 걸치고 있는 캐릭터가 수두룩하다.

놀란 감독은 그 중에서 '대왕' 급인 조커와 투 페이스를 골라 배트맨과 대면시킴으로써 <메멘토>부터 계속해 온 탐구를 계속한다.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모두 충족시키는 놀란의 재능은 <다크 나이트>로 꼭짓점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인셉션>이 개봉하기 전까진 그랬다.

7월15일 미국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2주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인셉션>은 한국에서도 7월21일 개봉해 일주일 만에 15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다크 나이트>의 오프닝 성적과 비교하면 미약하지만, <인셉션>을 둘러싼 '말말말'의 영향력을 포함한다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평론가와 열혈 팬들의 '인셉션 포럼'이 매일 새로운 해석을 쏟아내고 있고, 여기에 전 세계 관객들이 동의와 지지 혹은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면서 점점 열기가 뜨거워지는 상황이다. 마치 <매트릭스>때의 신드롬을 다시 보는 기분이다.

놀란 감독이 열여섯 살 때 처음 구상했다는 <인셉션>의 실체는 의외로 단순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무의식의 총체'인 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 결국 특정 약물을 활용하면 전문가들이 타인의 꿈의 환경을 조성하고, 그 꿈속에서 정보를 빼내오는 기술이 발명된 것이다.

일종의 '꿈 도둑질'인데, <인셉션>의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방면 최고의 기술자다. 그는 어떤 누명을 쓰고 도피생활을 하던 중, 거물 기업인 사이토(와타나베 켄)에게 특별한 제안을 받는다. 경쟁기업의 후계자 피셔(킬리언 머피)의 꿈에 잠입하라는 것.

보통 꿈에서 정보를 빼내는 '추출(Extraction)'을 해왔지만, 이번엔 특별히 새로운 정보를 '주입(Inception)'하라는 제안이다. 꿈속에 주입한 작은 단서가 자라서 현실을 바꿀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이토는 코브의 누명을 풀어줄 것을 약속하고, 간절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코브는 이 미션을 수락한다.

꿈도둑도 금고털이처럼 전문가 팀이 있다. 코브는 직접 정보를 훔치고 주입하는 행동대원 '추출자'라면, 판을 짜고 망을 보는 아더(조셉 고든 레빗), 무의식 속에서 자유자재로 변장하는 에임스(톰 하디), 인공적으로 꿈을 설계하는 설계사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 인위적으로 꿈을 꾸게 하는 약을 만드는 유세프(디립 라오)가 한 팀이다. 여기에 제안자 사이토가 합류하고, 마침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비행기에 탄 피셔에게 '인셉션'을 시행한다.

영화는 현실, 꿈, 꿈속의 꿈, 꿈속의 꿈속의 꿈, 무의식의 지옥과 같은 림보까지 5개 무대를 오가며 코브의 팀이 피셔의 머릿속에 특별한 아이디어를 '심는' 미션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구분과 분열'은 <인셉션>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다. 꿈 속으로 끌려들어온 자들은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을 믿는 자아와, 꿈을 현실로 믿으려하는 자아로 분열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특별한 용어가 등장하고, 이 장면은 몇 단계의 꿈인지를 꼼꼼히 따지면서 영화를 보자면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막상 영화를 '그냥' 보면 술술 넘어간다. '꿈'이라는 설정만 빼면, <인셉션>은 '전문가 팀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물건을 훔치는' 화끈한 액션 도둑질 영화가 된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수도 없이 보아온 덕에, <인셉션>을 즐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무의식이기에 가능한 황홀한 액션신과 꿈의 성질에 대한 놀란의 꼼꼼한 정리(예를 들면 꿈에서 깨는 방법인 '킥', 꿈속의 시간 개념 등), 간만에 캐릭터에 녹아 들어간 듯한 디카프리오, 그 외의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초호화 캐스팅의 재미에 빠지면 2시간 20분이 금방 간다.

그리고 '논란'을 예상할 수 있는 열린 결말이 등장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오른다. 성미 급한 관객들이 '열린 결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를 뜨는 찰라, 갑자기 엔딩 음악이 바뀐다. 문득 흐르는 에디트 피아프의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영화 제목이 마지막 타이틀로 오른다. 에디트 피아프의 '후회하지 않아'는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꿈을 깨우는 장치, '킥'으로 사용된 곡이다.

<인셉션>이 진정 놀라운 대목은 이 부분이다. 만약 에디트 피아프의 '후회하지 않아'가 영화 속에서처럼 '킥'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어두운 극장에서 본 영화 <인셉션>은 단어 그자체의 의미대로 '꿈'이 된다. 이 설명에 동의한다면, 영화 속 구석구석의 비는 부분도 명쾌하게 설명된다. 영화 속에서 코브가 설명한다. "꿈이 깨기 전까진 이상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그리고 <인셉션>이 불러일으킨 열띤 토론도 설명된다. "꿈이 남긴 생각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영화를 꿈에 비유하곤 했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비유의 수준을 넘어 영화를 직접 꿈으로 치환함으로써,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 모두를 '하나의 꿈' 속으로 불러들여 분열과 구분의 강박을 경험토록 한다.

그리고 꿈이 현실에 미치는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인셉션' 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마치 '세뇌라도 받은 듯'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꿈이 현실에 미친 영향을 토론하는 과정을 지켜보자면, 감독의 '인셉션'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공했는지 알 수 있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성공이다. 관객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꿈을 공유한 셈이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놀란 감독에게 경의를. 그리고 <인셉션>을 뛰어넘을(지 모를) 다음 작품에 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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