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직선의 스토리, 구조, 액션의 폭팔적 상승작용

시인 김춘수의 말대로, 누군가를 '꽃'이라 부르는 순간 그는 '꽃'으로 기능한다. 인간은 이름을 얻음으로써 역할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정범 감독은 인간관계에서 누군가를 무엇으로 '부른다'는 행위가 얼마나 힘이 센지 시험하려는 듯하다. 그의 데뷔작 <열혈남아>에는 친아들을 죽이려는 사내(설경구)를 "아들"이라 부르는 어머니(나문희)가 등장한다.

그녀가 사내에게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아들을 죽이려는 원수'와 '복수 대상의 어머니'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유사 가족'으로 탈바꿈한다. 결국 사내는 원수를 죽이지 못한다.

아니, 죽일 수 없다. 그녀가 사내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순간, 복수의 상대는 이미 한 어미를 둔 '형제'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아저씨'다. 이정범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 태식(원빈)은 전직 특작부대 일급 요원으로, 암굴 같은 전당포를 은신처 삼아 살아간다.

얼굴을 거의 가린 덥수룩한 머리는 태식의 가면이고, 전당포의 철창은 스스로 세운 감옥이다. 그가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이유는 과거의 끔찍한 사건 때문이다. 특수 작전에 투입됐던 태식은 보복 세력이 눈앞에서 임신한 아내를 으깨어 죽이는 참상을 목격한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그는 "내일이 없는" 무간지옥 속에 자신을 유배시킨 것이다.

지우고 싶은 과거에서, 잠시나마 태식을 건져 올리는 이는 옆집 소녀 소미(김새론)이다. 소미가 방긋 웃는 얼굴로 그를 "아저씨"라 부를 때, 태식은 "무술시범을 견학하던 국회의원을 기절시킨" 특작부대 살수요원도, 잊고 싶은 과거를 붙들고 사는 유령도 아닌 평범한 '옆집 아저씨'가 될 수 있다.

약에 취해 "같이 죽자"고 울부짖는 엄마를 피해 태식의 전당포로 포르르 달려오는 소미에게 소시지 반찬을 해주고, 이부자리를 챙겨주는 '옆집 아저씨'. 이 평범한 이름에 기대, 태식은 조금씩 상처를 치유한다.

어느 날, 소미의 엄마가 마약 조직의 물건에 손을 대면서 잠시의 평화는 박살난다. 소미의 엄마가 마약이 든 가방을 태식의 전당포에 숨겨둔 것이다. 마약 조직은 모녀를 인질로 잡고 태식에게 물건을 전달할 것을 요구하자, 조용히 일을 해결하고 싶었던 태식은 소미의 안전을 조건으로 사건에 발을 담근다.

약속대로 물건을 전하지만, 태식은 온 몸의 장기가 도려내진 채 살해당한 소미 엄마의 시신을 발견한다. 소미는 아이들을 범죄에 활용하다 장기밀매단에 내파는 '개미굴'에 팔려간 상황. 태식은 새로운 이름 '아저씨', 정확히는 그 이름을 불러준 소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아저씨>의 이야기만 접했을 때, 몇몇 선배 영화들의 이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외로운 킬러와 외로운 소녀의 멜로 <레옹>이 대부격이고, 하나뿐인 친구였던 소녀를 지키기 위해 일당백의 싸움을 시작한 전직 요원이 등장하는 <맨 온 파이어>,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된 딸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지옥 끝이라도 쫓아갈 전직 요원출신 아버지의 격렬한 부정을 그린 <테이큰>은 형님뻘이다.

이런 소재의 영화는 '직선'의 구조를 가진다. 최대한 빨리 대상을 구한다, 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이야기의 가지를 뻗을 여유가 없다. 때문에 자칫 '단순하고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핀잔을 살 수 있다. '직선의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판가름난다.

첫째는 대상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를 관객에게 납득시킬 것, 둘째는 응징 대상에게 관객도 함께 분노할 것, 셋째는 직선의 이야기를 상쇄할 만큼 액션의 힘이 셀 것. 이정범 감독은 명민하게 세 가지 조건을 훌륭히 충족시킨다.

소미와 태식의 '교감'을 부각시키는 장면이 기대보다 짧은 것은 아쉽지만, 감독은 천인공노할 마약, 장기 밀매 조직을 '응징대상'으로 내세움으로써 액션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오랫동안 자료조사에 공을 들였음이 분명한 생생한 디테일은 악행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부추긴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건 세 번째, 액션의 힘이다.

<아저씨>의 액션은 단순히 '직선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장식이 아니다. 화려한, 즉 공중에 붕 떠서 이단돌려차기를 하는 식의 장식적인 액션은 한 장면도 없다. 대신 간결하고 빨리 적의 급소를 노리는 '직선의 액션'만이 존재한다. 매우 단순하고 빠른 액션이기 때문에 '보는 재미'는 떨어질 것 같지만, 폭발력은 가히 놀랍다.

아마 한국 영화에서 이렇게 '단거리 결투'를 집요하고 완벽하게 담아낸 영화는 <아저씨>가 처음일 듯싶다. 특히 태식과 마약조직 용병 사이의 단검 결투는 백미. 중국의 무협지와 일본 낭인 시리즈 등에서 익히 보아온,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설정이 직선의 이야기에 결을 만드는 것도 인상적이고, 단검 특유의 짧게 끊어치는 액션 맛을 살린 것도 놀랍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준 정교한 액션이다.

영화의 이야기와 구조와 액션이 모두 닮은 꼴이라는 것도 <아저씨>의 특징이다. 감독은 '소녀를 구한다'는 직선의 이야기를, 태식이 소미를 좇고, 그 뒤를 경찰이 좇는 직선의 구조와 짧고 간결한 직선의 액션으로 풀어낸다. 이야기와 구조와 액션이 직선으로 질주하면서, 속도감이 배가되고, 자연스레 액션 위로 정서가 실린다.

거의 대사가 없다시피 한 태식이 악당들의 급소에 칼을 꽂을 때 튀는 핏방울과 함께 그의 분노가 전달된다. 종종 악당의 퍼포먼스나 태식의 응징이 과하게 잔혹한 장면도 있지만, 태식의 분노에 쉽게 동의되기 때문에 거슬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배우 원빈에게 쌓인 '지켜주고 싶은 아름다운 남자'의 이미지는 <아저씨>에서 실보다 득이 크다. '지켜주고 싶은 아름다운 남자'가 이웃집 소녀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자, 관객들은 보다 빨리 '정의로운 그'에게 감정적으로 동의한다. 한국의 정서 상 낯선 총격 액션이 <아저씨>에서 그리 이물감이 없는 것도 원빈의 스타일리시한 이미지와 관계가 깊다.

여성 관객들은 액션 흑기사로 변신한 아름다운 '원빈'을 보기 위해, 남성 관객들은 신선하고 강도 높은 액션을 보기 위해 <아저씨>를 택할 듯. 그리고 둘 다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어 극장 문을 나설 것이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