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프로그램, 미성년자 섹스 어필, 누구도 문제 제기 안해

얼마 전 MBC 예능 프로그램 <세바퀴>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아이돌 가수들의 재롱잔치가 벌어졌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여느 때와는 약간 달랐다.

섹시 콘셉트로 유명한 한 여자 가수는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숏팬츠를 입고 왼쪽, 오른쪽 대퇴부의 안쪽을 번갈아 들이미는 골반 댄스를 췄다. 새하얀 허벅다리에 장내전근과 박근이 팽팽하게 솟아올랐다.

이어서 옆으로 돌아 양 다리를 160도 가량 벌린 상태에서 서혜부(사타구니)를 앞뒤로 힘껏 쳐 올렸다. 온갖 의학용어로 대체해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그 움직임에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열광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내가 원하던 거야", "염통에 이상이 왔다", "눈까지 빨개졌다."

춤을 춘 가수는 미성년자였다. 인터넷 게시판은 한 차례 시끌시끌해졌고 해당 프로그램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누구를 위하여 허리를 돌리나

페도필리아(pedophilia: 소아성애기호증)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 중에서도 음지 중의 음지에 속한 영역이다. 요즘에는 아동성폭력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당한 이의 고통이나 가한 이의 위험성에 대해 공공연하고 활발하게 토론된 적이 별로 없다.

서양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와 함께 가장 큰 모욕으로 소아성애자가 들먹여지고, 18세 이하의 청소년이 공개적인 장소나 미디어에서 노골적인 섹스 어필을 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문제로 인식한다. 일단 아동 성학대에 대한 혐의가 인정되면 신문 지상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리며 평균 15년의 형량, 여기에 평생 정신감정을 받으며 법의 감시 아래에 살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그러나 소아성애기호증이나, 소아성애자(pedophile, 페도파일)의 존재 자체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TV에서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가 왜 소아성애나 아동학대에 포함되는지, 어떤 사회적 규제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어느 시점에서 분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불분명하다.

마치 게이의 존재가 비교적 양지로 드러나 있는 서양에서는 타이트한 브이넥 니트나 스키니 진 같은 특정 기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행여 자신이 그렇게 보일까 몸을 사리는 반면, 게이 문화가 완벽히 음지에 속한 한국에서는 오히려 남학생들이 핑크색 셔츠와 핑크색 바지를 세트로 입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MBC '세바퀴' 현아 골반대스
처벌특례법도 최근에야 제정됐다. 얼마 전 일어난 조두순 사건의 참혹함이 낱낱이 공개되고 나서야 국내에도 소아성애자가 많이 있으며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관대한 처사를 보이면 안 된다는 각성이 시작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13세 미만의 아동을 강제추행할 경우 징역 3년 이상, 유사성교를 해도 징역 5년 이상의 처벌이 전부였다.

지금 페도필리아에 대한 한국의 인식수준은 여전히 거의 무지에 가깝다. 이 무지로 인해 우리나라는 본의 아니게 '로리콤'(로리타 콤플렉스, 미소녀를 좋아하는 성향), '쇼타콤'(쇼타로 콤플렉스, 미소년을 좋아하는)이 판치게 되었다.

무지는 무식한 프로그램들을 양산했다. 기인열전과 재롱잔치를 짬뽕한 SBS 오락 프로그램 <스타킹>에는 거의 매회 어린이들의 섹시 댄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섹시 가수의 춤을 그대로 따라 출 수 있다는 '댄스 신동'이 등장해 짧은 치마를 입고 허리를 돌리다가 그 놈의 서혜부를 튕기기 시작하면 MC를 포함한 패널들은 입을 쩍 벌리고 감탄한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벌써부터 그런 '절도 있는' 춤을 출 수 있느냐며 인터뷰도 시도한다. 아이는 혀 짧은 소리도 채 떼지 못한 발음으로 "소녀시대 언니들처럼 될래요"라는 대사를 무감동하게 읊는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출연한다. 그들은 3등신에 불과한 육신을 배배 꼬며 웨이브 댄스를 선보인다. "저~는 샛별 유치원에 다니는, 귀엽고 깜찍하고 섹시한" 이때 잠깐의 텀을 두고 웨이브가 들어간다. "김00입니다. 언니 오빠들, 저 오늘 꼭 뽑아주세요~"

제작진의 주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어색한 자기소개에 방청객과 패널은 귀엽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누구에게서도, 심지어 관중석에 앉아 있는 아이의 부모에게서도 경각심을 찾아볼 수 없다. 비단 <스타킹>뿐 아니라 MBC <환상의 짝꿍> 등 어린이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한 차례 이상씩 선정성 논란에 휘말렸다.

6살짜리 섹시 댄서가 신동?

정작 온라인 상에서 불거졌던 아저씨 출연진들의 '하악거리는' 반응은 큰 문제가 아니다. <세바퀴>의 김구라와 조형기는 사회자와 패널로서 방송에 필요한 리액션을 충실하게 이행했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양희은 여사처럼 "저런 건 옳지 못하다"는 대쪽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가는 분위기를 죽였다는 죄목으로 자격 없는 방송인으로 찍힐 위험이 크다.

문제는 미디어가 생각 없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실생활 속으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장랑 시간에는 섹시 댄스가 최고 인기 종목이다. 섹시의 스펠링도 모르는 아이들이 몸을 꼬고 다리를 벌리는 데에는 사회와 미디어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서구에서는 방송이나 기타 매체에서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표현할 경우 아동성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TV는 물론 패션쇼나 잡지에 실리는 것도 신중하게 통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이돌 그룹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면서 페도필리아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대해 대중이 품는 성욕에 관해서는 이미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한 마디씩 했고 거의 일단락되는 추세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그야말로 젖비린내 나는 그룹들에 대해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 제기와 해결 방안이 필요할 듯하다.

곧 데뷔를 앞두고 있는 최연소 걸 그룹 GP 베이직의 평균 연령은 15세다. 그 중 막내인 초등학생 멤버는 이미 <스타킹>에서 장기를 뽐낸 바 있다. 얼마 전 공개된 이 그룹의 티저 영상에서는 멤버들이 어김없이 핫팬츠를 입고 가슴 부위를 손바닥으로 감싸며 강조하는 듯한 안무를 선보였다.

여성가족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뢰해 발표한 한국 아동성범죄 발생률은 최근 4년간 70% 가까이 증가했다. 범행 당시 가해자가 음주 상태인 경우가 37%, 피해 장소 1위는 피해자의 집이었다. 이 위험한 상황에서 TV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