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 언크리치 감독의 <토이스토리 3>스토리와 캐릭터, 기술력의 완변 조화 마음 울려

한 편의 영화가 제작사의 브랜드만으로 관객의 신뢰를 얻긴 힘들다. 하지만 '픽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떤 스토리인지, 어떤 캐릭터가 나올지 몰라도 상관없다. 관객들은 '픽사'라는 이름이 보장하는 완성도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픽사가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장편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90년대는 장인정신마저 느껴지는 디즈니의 셀 애니메이션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

호사가들은 "컴퓨터로 만든 차가운 애니메이션을 1시간 넘게 집중해서 볼 관객은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1995년 <토이스토리>가 개봉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스토리와 캐릭터, 기술력의 조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컴퓨터로 만든 장난감 인형들이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연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단한 장난감들이 오랜만에 극장으로 돌아왔다. <토이스토리 2> 이후 11년 만의 귀환. 1편부터 따지면 15년 만이다. 강산이 한번 하고도 절반쯤 변했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면 헌 장난감의 존재를 까맣게 잊는 아이들처럼, 항상 새로운 것을 좇는 관객이 십 수 년 전의 낡은 캐릭터에 다시 눈길을 돌릴까?

픽사의 이야기꾼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간은 흐르고, 장난감 친구가 없는 세상을 상상도 못했을 소년은 자라서 대학생이 됐다. 이젠 낡은 장난감과 노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이 많아졌을 나이. 그렇다면 주인이 놀아주지 않는 장난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쓰레기 봉지에 담겨 버려지거나, 운이 좋다면 상자에 담겨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거나, 어찌됐건 서서히 기억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함께. 우리는 그렇게, 작별 인사도 없이 어린 시절과 헤어졌다.

<토이스토리 3>은 우리에게 뭉클한 작별의 시간을 선물한다. 밤마다 끼고 누워 미주알고주알 하루 일과를 속닥이던, 하지만 어느 샌가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의 장난감 친구들에게, 그리고 '따뜻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경험케 했던 <토이스토리> 시리즈에게도.

우디(톰 행크스)와 버즈(팀 앨런) 그리고 장난감 친구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던 앤디(존 모리스)도 이제 다 큰 대학생이 됐다. 앤디와 마지막으로 함께 놀았던 때가 언제인지 가물거리는 우디 친구들은 대학으로 떠나는 앤디가 자신들을 버릴까봐 걱정이다.

짐을 정리하던 앤디는 우디만 대학으로 데리고 가고, 나머지 장난감들은 다락에 보관하려 하지만, 엄마의 실수로 장난감들은 버려지고 만다. 모든 상황을 본 우디는 앤디가 버린 게 아니라고 설득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이미 앤디에 대한 믿음을 잃은 상황.

우연히 유치원에 기증된 장난감들은 항상 놀아줄 아이들이 있는 이곳에 머물겠다고 하지만, 우디는 앤디가 대학으로 떠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결국 우디와 장난감 친구들은 작별인사를 하고, 우디는 앤디가 있는 집을 향해, 다른 친구들은 유치원에 남는다.

하지만 유치원은 겉으로만 인자한 곰인형 랏소가 지배하는 장난감들의 감옥이었던 것. 게다가 버즈마저 랏소의 음모로 기억을 잃고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하고, 친구들은 돌아온 우디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이별'이라는 다소 묵직한 주제 때문인지 <토이스토리 3>은 시리즈 중에서 가장 '어른 취향'이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장난감들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신이나 랏소 패거리의 악당짓, 감옥 요새를 방불케하는 유치원에서 CCTV를 보는 원숭이 신 등은 웬만한 스릴러, 공포 영화만큼이나 섬뜩하다. 가장 큰 웃음을 주는 '스페니시' 버즈의 코믹 시퀀스도 어린 관객들이 이해하긴 조금 어려운 구석이 있다.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쓰레기 처리장 이야기에선 재난영화의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1편과 2편을 못 본 관객이라도 어김없이 펑펑 눈물을 쏟게 만드는 엔딩 역시, 어린 관객보다는 어른 관객을 위한 감정이다. 영원히 사랑할 거란 약속. 픽사의 마법사들은 서랍장 깊숙이 처박혀있던 장난감들을 끄집어내서, 이 슬픈 약속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의 책임감.

어른 관객들은 정식으로 안녕을 고하지 못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의 장난감들을 떠올리며, 동시에 안녕을 고하지 못한 모든 관계에 대해 반추할 시간을 갖는다. 엔딩 시퀀스에 이르면 3D 안경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눈물이 쏟아지는 이유는, 전자보다는 후자 때문일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매번 최고의 최고를 넘어서는 작품을 내놓는 픽사는 이번에도 관계의 책임감을 쉽고, 유쾌하고, 절절하게 풀어낸다. 특히 이야기의 전개와 구조는 거의 완벽하달만큼 정교하다. 덕분에 관객을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관객들은 마치 프로그래밍이라도 된 것처럼, 영화가 끌고 가는 대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분명 칭찬이지만, 한 편의 영화가 완벽한 구조의 힘으로만 진행될 때 남기는 끝 맛은 어쩐지 기계적이다. 이전의 픽사 영화에서 느꼈던, '완전히 새로운 그 무엇' 대신 '완전히 안전한 구조'로 승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한 가지 뉴스를 덧붙이면, 약간 불안해진다. 픽사가 향후 준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은 <카 2>와 <몬스터 주식회사 2>. 새롭게 개발하던 두 편의 영화는 시나리오의 문제로 제작을 중단한 상태라는 것이다. 혹시 픽사 첫 영화의 시리즈 완결편이 픽사의 첫 번째 정점이자 하락의 시작이 되는 건 아닐지. 픽사의 다음 영화가 그 답을 알려 줄 것이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