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로스트> 등서 맹활약 불구 미국이 한국 보는 시선 여전히 시대착오적
언론에서는 이들의 활약을 '미국 내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즉 한국계 미국인뿐 아니라 한국 자체의 격상된 문화적 위치를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한국계 배우들 개개인의 활약이 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미국 드라마 컨텐츠에 나타난 한국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미국사회와 '섞이는지'를 보는 것이 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을 더 잘 설명해 준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여전히 중국풍이나 일본풍과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고,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여전히 진정한 미국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한국을 묘사하는 미드는 급증했지만 한국을 제대로 그리는 미드는 여전히 찾기 어렵다.
한국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정당하게, 되도록 오류 없이 그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이 정도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미드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미드에서 그려지는 한국인들에게서는 자연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계 미국인들은 여전히 명실상부한 미국인이 되지 못했고, 이제 와서 한국인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불안한 경계인으로 그려진다.
<로스트>의 백선화(김윤진)를 둘러싼 한국인들은 그녀와 남편의 어두운 과거의 주범들로 묘사되고 있고, 김윤진을 제외한 모든 한국인 역할 배우들의 한국어 실력이 형편 없을 뿐 아니라 우리 눈에는 전혀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드에 등장하는 나이 든 한국인들은 미국에 온 지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영어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로 묘사되기 일쑤다.
<길모어 걸스>에서 주인공 로리의 절친으로 나오는 레인과 그녀의 어머니 또한 대표적으로 잘못 묘사된 한국인 중의 하나다. 일단 가끔씩 등장하는 레인 모녀의 어색한 한국어는 눈감아 준다 쳐도, 딸의 일거수일투족에 사사건건 감시의 칼날을 들이대는 그녀의 행동은 눈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딸의 외출은 물론 딸의 음악적 취향까지 간섭하여, 레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CD들을 자기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놓기까지 한다. 레인의 어머니가 거의 광신도적 기독교로 묘사되는 장면도 거북할 뿐 아니라, 가끔씩 레인의 집에 모이는 레인의 친척들 또한 하나같이 답답하고 고지식하기 그지없다. 중국이나 일본 배우들을 거침없이 한국인으로 출연시키는 어색함은 둘째 치고, 그들 중 한국인 답게 느껴지는 배우는 한 명도 없다.
레인이 결혼 전까지 성경험이 전무한 '숫처녀'로 나오는 것도 실소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그녀의 강요된 순결은 레인의 자연스러운 사랑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곤 한다. 한마디로 <길모어 걸스>에 묘사된 한국인은 '답답함' 그 자체다. 레인 모녀는 주인공 로리 모녀가 얼마나 친구처럼 격식 없고 평등한 모녀 관계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동원된 들러리처럼 느껴진다.
천재 과학자들의 키덜트적 감수성을 흥미롭게 그려낸 <빅뱅 이론>에서는 문제가 한층 심각하다. 10대에 이미 박사학위를 딴 자타공인의 천재 물리학자 셸던에게 경쟁자가 생긴다. 바로 북한 출신 천재 과학자 소년. 15세의 나이에 이미 대학원에 진학한 이 천재소년은 셸던의 연구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의 아성을 위협한다.
<그레이 아나토미>에 등장하는 닥터 양(산드라 오)은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인들 중 가장 멋진 편에 속한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두 개나 가지고 있으며 스탠포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명실상부한 주연이다. 그녀가 없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가 '인종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녀에게 낯선 타인이 된다. 시민권이 없는 중국인 노동자가 병원 바깥에서 구조를 요청하자 사람들은 닥터 양에게 통역을 부탁한다. 오랫동안 닥터 양과 일해온 병원 사람들조차 그녀가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닥터 양은 이 순간 자신은 중국어를 못한다는 것을 밝히며 "게다가 나는 한국인이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흥미로운 대목은 그녀의 집안 전체가 유대인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집안 사람들은 유대교로 개종했고 이민 3세인 닥터 양에게서는 사실 한국인의 자취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녀는 미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미드에 흔히 등장하는 '찌질한 한국인', '답답한 한국인', '영원히 미국인이 될 수 없는, 그러나 영원히 한국인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이방인'의 대열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미국 드라마와 친숙해졌다. <전격 제트 작전>이나 <천재 소년 두기>가 사랑받던 시절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전면적인 방식으로 미드는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했다. 사람들은 단지 방영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 앉는 것이 아니라 각종 루트를 통해 아직 한국의 공중파 채널에 방영되지 않은 미국 드라마까지 적극적으로 섭렵한다.
문제는 미드의 문화적 파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미국문화에 해박해졌지만,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시대착오적이다. 미드는 한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은 여전히 '너무도 미국인이 되고 싶지만, 어쩌면 예전보다 미국인과 상당히 비슷해졌지만, 여전히 미국인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그러나 더욱 슬픈 것은 한국인들의 미국 문화를 향한 변치 않는 일편단심이다. 한국인들에게 세계화는 미국화와 다르지 않으며, 세계는 마치 미국권과 비미국권으로 나뉘어진 것처럼 보인다.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