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스토리의 숨은 비밀국제콘텐츠컨퍼런스에 온 할리우드 대표 프로듀서 크리스 리, 밥 화이트힐 등 공개

밥 화이트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이 스토리3, 슈렉 포에버, 아이언맨2, 로빈 후드 등. 올해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이들 할리우드 영화의 공통점은? 뜻밖에도 '전혀 새로운 스토리'의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의 얘기다.

"할리우드는 예전보다 영화 제작 편수를 계속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브랜드와 프랜차이즈에 더욱 더 집착하고 있죠. 이는 간접비용을 줄이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덕분인지 할리우드 영화사의 수익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 영화 프로듀서가 할리우드 영화 스토리의 최신 비밀을 공개했다. 콘텐츠 관련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인 국제콘텐츠컨퍼런스(DICON 2010) 참석차 방한한 . 문화관광부 주최,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으로 열린 이번 컨퍼런스 기조강연 연사로 나선 그는 할리우드 영화산업 전반과 콘텐츠 창작의 흐름을 정확히 조망하며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중국계 미국인인 는 소니픽처스(전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픽처스) 사장을 역임하며 '제리 맥과이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 '가을의 전설', '마스크 오브 조로' 등의 아카데미상 수상작들도 그가 참여한 영화들. 최근에는 23년 만에 부활한 슈퍼맨으로 주목을 받은 '슈퍼맨 리턴즈', 톰 크루즈가 열연한 '발키리'의 총괄 프로듀서로도 활약했다.

"최신 흥행작 영화 대부분은 알고 보면 책, 리메이크, 속편, 만화책, TV 쇼 등에 바탕을 둔, 일반인 모두가 아는 지적 재산권이라는 사실입니다. 영화의 주된 업무 중 하나인 마케팅 작업이 브랜드 이름으로 이미 되어있고 새롭게 시작할 필요 없는 비즈니스이지요. 그게 당대의 대작 영화들입니다."

크리스 리
최신 박스 오피스를 살펴보면 그의 얘기는 사실로 드러난다. 미국내 영화 차트에서 최근 1위였던 토이 스토리3는 속편, 애니메이션 영화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익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아이언 맨2와 트롸이트라이트 이클립스도 속편, 슈렉 포에버는 네 번째 시리즈 중 하나이다. 가라데 키드와 클래시 오브더 타이탄즈 또한 리메이크 작품이다.

예외라면 인셉션이 최신 차트에서 첫 번째 오리지널 영화이고 데스피커블 미와 드래곤 길들이기는 새로운 영화이지만 둘 다 애니메이션 영화다. 그는 "이들 자료로만 미루어 보면 할리우드가 아마도 리메이크나 애니메이션만을 만든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할리우드는 또한 영화 생산량 자체를 줄여 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한 개 스튜디오가 정기적으로 15편에서 30편 가까운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12편에서 15편밖에는 영화를 제작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 편수는 줄어 들었지만 보다 더 나은 영화를 만들려는 열의가 떨어진 것은 절대 아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 할리우드의 변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무래도 영화 산업의 수익성 저하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그는 "할리우드가 경비절감에 나서고 보다 적은 수의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일례로 영화 DVD 판매 시장 변화와 연관이 깊다"고 말한다.

"할리우드에서 예전에 DVD는 돈이 잘 벌리는 경제적인 원동력이었지요. 하지만 더 이상은 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 수입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경기가 안 좋아서 사람들이 DVD를 덜 수집한다거나 그리고 인터넷 다운로드 등 새로운 판매 모델이 도입된 탓이죠." 통계로만 보아도 벌써 2006 년에서 2007 년 사이 DVD 판매는 그 이전에 DVD가 황금알을 낳던 시장이었던 것에 비해 34%나 떨어졌다.

"그래서 할리우드가 선택한 생존비결은 '진화 아니면 죽음'이라는 각오입니다. 그 의미는 수익의 숫자가 안 맞으니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어야만 한다는 것이죠. 오늘날 할리우드는 모든 것이 브랜드에 관한 것뿐입니다."

영화 제작이나 스토리에서 할리우드는 이미 알려진 스토리나 캐릭터 브랜드를 확장하거나 더 적은 양의 영화를 만들면서 프랜차이즈 협력 방식을 택하는 것 등이 지금 실천 중인 대안들이다. 여러 회사들이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 등을 나눠 부담하고 간접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는 또한 "할리우드는 더 이상 대형 스타나 감독에 의존하는 영화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또 할리우드 기준에서 3000만~5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드는 중간급 영화도 더는 만들지 않는다. 이는 아쉽게도 할리우드가 이전과는 달리 스크립트, 즉 새로운 스토리의 대본을 많이 사들이지 않는다는 뜻과도 통한다.

대신 할리우드가 요즘 열중하는 분야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브랜드들이다. 코메디북, 비디오게임 타이틀, 성인서적, 스릴러 소설, 80년대 만화작품들, 장난감과 모드게임 모델, 저예산의 공포물 등. 여기에 프랜차이즈와 리메이크 방식 또한 더해진다. 이미 성공해 자리잡은 유명한 캐릭터나 모델, 이야기들을 활용하면 제작된 영화의 마케팅 비용에서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기대에서다. 그는 "할리우드가 모험이나 위험을 회피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지향하는 셈"이라고 풀이한다.

특히 영화에서 새로운 스토리 모델로 유망한 분야로 그는 게임을 꼽는다. 물론 아직까지 게임 캐릭터나 스토리 등을 활용해 성공한 영화 모델은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비디오게임 같은 것이 영화화돼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데 적잖은 관심을 보인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는 영화 아바타와 인셉션을 예로 든다. 이들 영화가 게임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 한 가지에서 이뤄낸 것이 있다는 것, 즉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시각을 바꿨다는 점이다.

"두 영화의 특이한 공통점은 주인공이 잠이 들어야만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집에서 정신을 놓고 게임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요. 인셉션 같은 경우 특히 기존에 쓰여오던 방식이 아닌 다층구조방식으로 만들어져 관객들의 반응은 제 각각이었습니다. 어른들은 거부반응이 심했지만 당연히 젊은 관객들은 매우 좋아했죠"

인셉션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게임을 처음 접할 때 다 이해를 못하는 그러한 것처럼 이 영화도 그런식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두 번째 볼 때 이해하기가 훨씬 좋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아바타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세계 또한 게임과 관계가 깊다고 그는 지적한다. "게임하는 아이들은 게임에서 많이 본 풍경과 흡사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어른들은 이런 세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 영화에 흥미를 느낀 것 같습니다." 그는 "카메론 감독은 기존에 사용해오던 요소에 게임적인 면을 추가했고, 크리스 놀란은 이와 다른 방식을 사용했지만 둘 다 컴퓨터 게임을 영화에 접목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결론짓는다.

현대 기술 발전 덕분에 탄생하고 발전한 장르가 영화이지만 막상 오늘날의 영화 또한 인터넷을 위시한 신기술에 크게 영향받는다. 는 이와 관련 "할리우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두려워한다"고 증언한다. 가장 최신의 예는 트위터.

"최근 사람들이 트위터 이펙트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는 브루노라는 영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영화를 본 금요일 이후 토요일에 30%나 관객이 줄었고 이유는 트위터에서 영화가 재미없다는 댓글이 올라왔기 때문이죠. 사실 그 영화가 재미없긴 했지만 이는 트위터의 잘못이라기보단 트위터의 빠른 의견 전달력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반면 할리우드 사람들은 트위터가 영화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우치게 되었다.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반응을 보다 빨리 확인할 수 있게 됐기 때문. 벌써 많은 영화사의 마케팅부서에서는 트래킹 등을 사용해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들의 홍보전략이 잘되는지 파악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변화상은 새로운 스토리의 탄생 신화를 억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스토리와 콘텐츠가 그럼 대우받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잠깐 망설이다 그렇다고 답했다.

"할리우드에는 여전한 논쟁이 있습니다. 콘텐츠가 왕이냐, 배급이 왕이냐는 문제인데 저는 콘텐츠가 우선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영화사들이 제작비는 줄여도 배급과 마케팅비용은 결코 줄일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죠." 하지만 그는 "기존의 브랜드와 캐릭터 등에만 의존하는 지금의 트렌드도 마냥 지속될 수만은 없으며 인셉션이나 아바타의 경우에서처럼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스토리와 포맷의 영화는 언제든 필요하고 지속될 것"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영화계 최대의 화두인 3D와 관련해서 그는 픽사를 위시로 한 3D 콘텐츠는 영화사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많은 영화사들이 1년에 다수의 영화를 만들지만 픽사 같은 스튜디오는 한두 개밖에 만들지 않으면서 수익을 낸다는 것.

역시 기조연사로 나선 픽사의 입체영상 슈퍼바이저인 도 "3D 영화의 진면목은 새로운 볼거리를 주는 신기술이라는 점 외에도 영화에 좀 더 역동성과 감정을 불어 넣어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3D를 한다고 등장인물과 영화가 더 흥미로워지거나 그 세계가 더 믿을 만한 세계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픽사 그룹의 슬로건은 '우리가 믿는 건 변화가 아니지만 깊이는 믿을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저희는 영화를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영화의 깊이를 더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죠."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