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장진 감독의 <퀴즈왕>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들이 말로 쌓는 코미디

장진 감독은 '수다의 힘'에 매혹된 감독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영화사 이름을 '필름 it 수다'라고 지었을까. 읽기에 따라서 '필름있수다'로 읽히기도, '필름, 그것은 수다'로 읽히기도 한다.

어느 것으로 읽어도 장진 감독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모로 가도 뜻은 통하는 '수다'의 유희. 영화사 이름은 장진 감독이 찍는 영화와 꼭 닮았다.

그가 2010년 추석 극장가에 또 한 편의 '수다 유희극' <퀴즈왕>을 들고 찾아왔다. <퀴즈왕>은 여전하다.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쉴 새 없이 자신의 '말'을 늘어놓는다.

얼핏 소통 불가능해 보이는 각자의 수다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하나의 줄기를 이루고, 결국 그 줄기는 소통의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퀴즈왕>을 보면서 바벨탑의 설화가 떠올랐다. 인간들은 하늘에 닿고자하는 욕망으로 탑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통부재로 인해 결국 중도에서 포기하고, 하늘에 닿고자 하는 욕망은 좌절됐다. 이 이야기는 헛된 욕망의 좌절로 읽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장진 감독의 <퀴즈왕>은 비슷한 좌절에서 끝내 긍정의 얼굴을 찾아낸다.

비록 헛된 욕망일지라도, 그 욕망이 희망도 의지도 없던 인간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사력을 다해 움직이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성과가 아니냐는 긍정. 누구도 하늘에 닿을 순 없지만, 하늘에 닿아보고자 꿈꾼 자는 다른 꿈을 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퀴즈왕>은 난데없는 4중 추돌 교통사고에서 시작한다. 각각의 사정을 가진 네 무리의 사람들이 한 밤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다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는다. 의문의 한 여인이 자동차 전용도로로 뛰어든 것이다.

껄끄러운 부자지간인 호만(송영창)과 지용(이지용)의 차가 1번 타자로 여인을 치고, 말다툼하던 부부 상도(류승룡)과 팔녀(장영남)의 차가 2번 타자로 토스한 것을, 해결사 도엽(김수로)와 상길(한재석)의 벤츠가 가까스로 피하고, 우울증을 이겨내는 사람들 모임의 정상(김병옥)과 여나(심은경) 일행 차가 땅에 떨어진 여인을 밟고 넘어간 것이다. 이처럼 엄청나게 꼬인 사고의 시비를 따지고자 사람들은 우르르 한 밤의 경찰서에 끌려온다.

여기서 등장인물이 끝이 아니다. 경찰서엔 음주난동으로 붙들려 온 준상(임원희)과 폭주족 단속에 걸려 경찰서를 찾은 철가방 철주(류덕환)일행이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 여기에 '매의 눈'을 가진 강력반 마 반장(장진)이 폭주족 살인사건 용의자를 찾기 위해 합류한다.

각자 자신의 무죄를 부르짖으며 빨리 집에 보내 달라고 아우성치던 와중, 사람들은 길에 뛰어든 여인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한마디씩 툭툭 보태다가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지금껏 한 번도 최종 우승자가 나오지 않은 TV 퀴즈쇼의 문제 출제자였던 것. 그녀의 USB에는 총상금 133억 원이 걸린 퀴즈쇼의 마지막 문제가 적혀 있었고,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 답을 알게 된다.

이제 경찰서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의 목표를 얻게 된다. 133억 원. 누군가의 인생을 한 번에 바꿔 줄 만한 거액이다. 호만과 지용 부자는 오래도록 병상에 누운 엄마의 병원비가 필요하고, 상도와 팔녀 부부는 지지리도 가난한 삶을 벗어버릴 돈이 절실하다. 해결사 도엽과 상길도 저 돈이면 어둠의 세계에서 손을 씻을 수 있다.

우울증을 이겨내고 싶은 정상과 여나 일행도 133억 원이라는 거액을 보자 삶의 의지가 용솟음친다. 철주 일행도 철가방이라고 무시하는 세상에 한 방 먹일 요량으로 의지를 불태우고, 퀴즈쇼를 재방에 재재방까지 섭렵해 온 퀴즈쇼 마니아 준상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박봉에 노고를 이겨야 했던 말단 순경들도 위법이 아닌 행운을 마다할 리 없다. 이때부터 영화는 각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퀴즈쇼를 준비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나열한다.

<퀴즈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리저리 꼬인 경찰서의 상황극이 1단계라면, 각 인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상식책을 들여다보는 준비과정이 2단계, 마지막으로 결전의 그날이 3단계다. 1단계와 2단계는 장진 감독 특유의 수다와 상황극으로 채워진 코미디라면, 3단계에 이르러선 꽤 긴박한 스릴러로 변모한다.

3단계의 긴장감은 일반적인 퀴즈 프로그램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맞거나 틀리거나. 관객들은 틀리는 순간 바로 탈락되는 퀴즈 프로그램의 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응원하는 도전자가 떨어질까 마음을 졸인다. 여기에 죽은 문제 출제자 여인을 둘러싼 비밀이 섞여 들면서 긴장감의 강도가 높아진다.

사실 <퀴즈왕>은 시작부터 큰 약점 하나를 품고 시작한다.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133억 원의 주인이 될 퀴즈왕은 단 한 명뿐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좌절할 게 분명하다. 계속되는 좌절의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 그리 유쾌할 리 없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목표가 뚜렷한 영화들은 주인공이 온갖 방해물을 넘어 목표를 이루는 직선적인 과정에 집중한다.

하지만 장진 감독은 일부러 직선의 과정을 흐트러뜨리고,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즉 곁가지에 치중한다. 장진 감독의 목적은 단 한 명의 퀴즈왕을 등극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기 위해 퀴즈쇼라는 판을 벌인다.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한 명의 승자만 남는 피라미드의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쌓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앞서 영화 설명을 하면서,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빼놓지 않고 표기한 것은 <퀴즈왕>이 그 모든 인물을 주인공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쌓는 방식은 장진 감독의 전작 <박수칠 때 떠나라>와 유사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한 여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녀의 죽음을 욕망했던 사람들이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모두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지만, 아무도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죽음을 이루는 데 성공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퀴즈왕>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그들은 모두가 퀴즈왕이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되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 말 한 마디를 세상에 후련하게 전하는 목표를 이뤘다. '수다의 힘'을 사랑하는 장진 감독의 뚝심이 읽히는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퀴즈 왕>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은 엔딩 크레디트다. 아주 작은 단역일지라도, 출연했던 모든 배우의 얼굴과 함께 이름을 소개하는 엔딩 크레디트는 '피라미드를 쌓는 과정'에 주목하는 영화 <퀴즈 왕>의 의도와 근사하게 어울린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