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무성영화 주제가로 인기[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이정숙 '낙화유수' (1929년 콜롬비아)이전 곡들 구전 가요·번안곡 대부분… '황성옛터' 보다 음반발표 빨라

어느 장르나 최초 논쟁은 있게 마련이다. 최초의 대중가요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1926년 발표 당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윤심덕의 '사의 찬미'를 많이들 떠올린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노래도 적지 않다. 우선 구전가요 학도가와 박채선과 이류색이 부른 '이 풍진 세월'(일명 희망가, 청년경계가), 그리고 안기영의 가곡 '내 고향을 이별하고'와 도월색의 '압록강절' 등등.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929년에 음반으로 발표된 '낙화유수'에 한국 최초의 창작가요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발표시기로 보자면 언급한 노래 중 가장 늦는지라 납득하기 힘들 수 있다.

'낙화유수' 이전 곡들은 창작가요가 아닌 대부분 구전가요나 외국 번안 곡들이다. 전수린이 작곡한 막간가요 '황성옛터'도 창작되어 불린 시기는 '낙화유수'보다 앞섰지만 공식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음반발표가 늦었다고 부언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이정숙의 '낙화유수(일명 강남달)'는 1927년에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구영 감독의 동명 무성영화 주제가다. 그러니까 한국인 최초로 창작해 공식 음반으로 발표된 대중가요는 곧 영화주제가란 사실이다. 당시는 소리나 음악을 넣을 수 없는 무성영화시대였기에 가수 이정숙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악단의 연주에 맞춰 극장의 꼭대기에 올라가 직접 노래를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보육학교 출신으로 동요를 주로 불렀던 이정숙은 감독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영화의 인기와 동반해 큰 반향을 일으킨 주제가는 2년 뒤에 콤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유성기음반으로 정식 발표되었다. 이정숙의 독집으로 발매된 이 음반의 뒷면엔 서울의 종로 네거리를 묘사한 '쟈라메라'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영화의 각본을 쓰고, 주제가까지 직접 작사, 작곡한 김서정은 당대의 멀티 플레이어였다. 그는 1920~30년대 무성영화의 인기 변사이자 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 작사가, 작곡가, 바이올린 연주자로 인기를 구가했다.

대중가요계에선 김서정이라는 예명을 사용했고 영화계에서는 본명을 사용했다. 진주 기생의 아들로 알려진 그는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1924년에 무성영화 '장화홍련전'의 감독으로 데뷔해 낙화유수를 시작으로 '세동무'(1928, 김연실), '암로'(1930, 강석연), '봄노래'(1930, 채규엽), '강남제비'(1931, 강석연, 이애리수)', '유랑의 노래'(1931, 이애리수) 등 주로 영화 주제가를 작곡했다. 이 점은 그가 숨겨져 있는 한국 영화음악의 선구자로 평가받을 자격이 충분함을 입증한다.

영화 '낙화유수'는 개봉 당시 15만이라는 믿기 힘든 관객을 동원하며 10편의 우수영화를 뽑는 조선일보영화제에서 우수영화로 당당히 선정되었다. 진주기생과 한 화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전형적인 신파물인 영화의 스토리와 주제가의 노랫말은 창작자인 김서정의 자전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양한 활동으로 부와 명예를 획득했던 그는 인력거로 권번을 누비는 화려한 생활을 했지만 유성영화의 등장 이후 무성영화와 운명을 함께 했다. 그 후, 시에론 레코드에서 음반제작에 참여한 그는 마약에 중독되며 1936년에 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최초의 창작가요를 발표한 그는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한 인물은 아니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대중가요 전성시대의 디딤돌이 된 점은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일제 36년간 15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고 전해지는데 2000년대 전까지 국내에는 당시의 필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낙화유수'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일제강점기 영화다. 개봉 후 65년이 지난 1992년에야 총8권으로 나뉘어진 필름 원본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영화 '낙화유수'는 김영환과 이구영이 창립한 금강 키네마사가 약 3000원의 제작비를 들여 제작한 영화다. 한국 최초 창작가요로 인증된 '낙화유수(강남달)'는 1930년 인기 배우 김연실이 처음으로 리메이크한 이후 황금심, 신카나리아, 한영애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리메이크를 통해 불멸의 노래가 되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