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과 함께 부활하는 가을 대표송[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차중락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1996년 신세기레코드)팝송에 한국적 한의 정서 담은 매력적 창법… 27세 요절

고독과 쓸쓸한 정조로 가득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다. 화려한 오색 단풍이 말라 낙엽이 되어 떨어지면 어김없이 부활하는 남자가수의 노래가 있다. '가을의 전령'이라 불리는 요절가수 차중락의 번안 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다.

1966년 차중락이 록밴드 키보이스 리드보컬 시절에 처음 발표한 이 노래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 가을시즌송을 대표하는 고전이 되었다. 당시 미8군 무대에서 '코리언 엘비스'로 불렸던 차중락은 잘 생긴 얼굴은 기본이고 미스터 코리아 2위로 선정된 건장한 몸매와 달콤하게 녹아드는 감미로운 보컬로 60년대 말 젊은 여성들을 달뜨게 했던 당대의 인기가수였다.

외국의 팝송을 번안한 대중가요가 각광받던 그 시절, 팝송에다 한국적인 한의 정서를 적절하게 담아낸 그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영화감독을 꿈꿨던 차중락은 1964년 사촌형인 가수 차도균의 권유로 록밴드 키보이스의 리드보컬로 합류하며 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당시 수년간 사귀어오던 이화여대생 애인과 헤어지는 실연의 몸살을 겪었다. 그때 똑같이 실연의 아픔을 겪은 소속사인 신세기레코드 사장 아들 강찬호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의 멜로디에 자신의 자작시로 번안곡을 만들어 그에게 건넸다.

사실 이 곡은 첫 독집음반을 준비 중이던 쟈니리가 취입할 노래였다. 하지만 작사가 강찬호는 키보이스의 리드보컬 차중락이 자신처럼 실연의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병상련의 마음이 생겼다. 실제로 실연의 아픔을 경험한 가수가 자신의 노래를 더 잘 소화할 것 같은 마음에 그는 노래를 취입할 가수를 쟈니리에서 차중락으로 변경했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의 최초 버전은 1966년 늦가을 록밴드 키보이스의 연주로 쟈니리, 서정길, 김선, 남석훈, 점블시스터즈 등 여러 미8군 가수들이 함께한 소위 컴필레이션 음반 '그 밤과 같이'에 수록되었다. 당시 키보이스는 반주음악과 노래의 필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동시녹음을 시도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쓸쓸한 계절의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졌던 것.

1967년 밴드를 탈퇴해 솔로로 독립한 차중락은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차가운 콜라를 두 병이나 마셔야 겨우 정신을 차릴 정도로 눈코 뜰 사이가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바쁜 연예생활과 잦은 스캔들에 건강이 악화된 차중락은 1968년 11월 10일 급성 뇌막염으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짧은 활동으로 그는 많은 곡을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표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과 유작 '낙엽의 눈물'이 모두 낙엽을 소재로 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는 가을의 전령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1969년 그의 1주기를 기념해 특이한 대중가요상이 제정되었다. 매년 가장 뛰어난 신인가수에게 수여된 '낙엽상'이다. 이는 데뷔음반을 발표하자마자 교통사고로 사망한 유재하를 기리는 가요제와 비슷한 맥락이다. '낙엽상'의 1회수상자는 남자가수는 나훈아, 여자가수는 이영숙이다.

차중락은 배호, 김현식, 유재하처럼 사후에 더욱 주목받은 가수다. 1969년 김기덕 감독과 심우섭 감독에 의해 그의 일대기를 그린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제목으로 사용한 동명의 영화가 2편이나 동시에 기획된 해프닝은 그의 사후 인기에 대한 증명이다. 그의 대표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은 지금도 가을이면 어김없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구슬프게 흘러나오는 가을과 낙엽 시즌을 대표하는 명곡이다.

솔로독립 후 발표한 TBC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사랑의 종말' 또한 1967년 TBC 남자신인가수상을 명곡이다. '철없는 아내' 또한 연타석 히트 퍼레이드를 터뜨린 그의 빅히트곡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70년대 후반 여성듀엣 산이슬 출신의 박경애가 리메이크해 또다시 히트가 터졌지만 2004년 그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 노래는 취입한 가수는 모두 일찍 사망한다'는 징크스를 남겼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