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가락의 현대적 접목 통해 우리 노래 찾으려는 실험과 대중화

최근 이장혁, 루시드 폴, 오소영, 시와, 재주소년, 10cm 등 젊은 뮤지션들에 의해 포크 질감의 노래들이 심심치 않게 발표되고 있다. 포크송 부활의 기미는 그만큼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세상이 혼탁해졌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포크송이 가장 각광받았던 시기가 정치사회적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포크음악에 대해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추억의 음악이라고 말하는 이와, 진솔한 삶과 인생을 담아낸 음악이라고 말하는 진중한 청자도 있다. 둘 다 틀리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제껏 내가 들었던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노래들 중 가장 가슴에 파고들며 오랜 여운을 안겨준 아름다운 노래는 대부분 포크송이라는 점이다.

한국포크 음악사에 빛나는 명반을 이야기할 때 흔히들 김민기, 양희은, 한대수, 양병집, 김의철, 방의경, 조동진, 김광석, 김두수의 음반들을 언급한다. 공통점은 팍팍한 삶의 풍경을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를 통해 이야기했고 세월을 넘어 회자되고 있다는 점이다.

포크음악의 최전성기인 1972년, 당대 최고의 국내 포크 뮤지션들이 참여해 참신한 실험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담아낸 '맷돌공연' 음반은 반듯이 기억되어야 된다. 이 음반은 국내 초창기 포크씬의 소중한 흔적을 기록한, 말이 필요 없는 명품 포크음반이다.

70년대 포크음악의 메카는 단연 명동이다. YWCA 청개구리 공연을 시작으로 해바라기, 맷돌, 참새를 태운 잠수함은 한국포크 음악사에 반듯이 기록되어야 할 무브먼트였다. 하지만 기록보존에 무관심했던 한국 대중문화의 치명적 아킬레스건은 70년대 노래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맷돌'음반은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당대 노래운동의 실체를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맷돌공연은 1972년 6월 14일 명동 코리아나 백화점 3층 문화 살롱에서 시작되었다. 공연의 단골관객이었던 평론가 이백천의 사회로 1972년 9월 26일 명동 시공관(국립극장)에서 특별공연이 열렸는데 그 실황을 담은 음반이 '맷돌'이다.

공연의 모토는 우리 전통 가락의 현대적 접목을 통해 우리 노래를 찾는 실험과 대중화다. 음반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특별공연에서는 탈춤, 판소리 같은 한국 고전 음악의 원류도 선보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장현종, 임진수, 이탄 등 6명의 시인들에게 가사를 의뢰해 백순진, 김광희 등 대학생 작곡가들이 멜로디를 만들어 발표하는 실험적 무대를 구현했다는 사실이다.

이 음반에는 그때 만들어진 네 곡의 실험곡과 일곱 개의 기성곡까지 총 11곡이 수록되어 있다. 참가 포크 가수들이 군사 정권에 의해 억압된 자유와 저항의식을 한국적 포크 송에 담아내려 노력한 점은 평가해줘야 할 업적일 것이다.

사회를 맡은 이백천의 멘트를 시작으로 포크듀오 4월과 5월은 공연을 위해 창작된 '대학시절'과 '딩동댕' 2곡을 노래했다. 한국 최초의 포크 남성듀오 트윈폴리오 출신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던 송창식도 윤형주 곡 '비와 나'와 '딩동댕'을 노래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은 송창식과 백순진이 같은 가사에 다른 곡을 붙여 동시에 발표한 점이다. 송창식 버전은 대중이 기억하는 히트 곡 버전이 맞고 백순진 버전은 가야금 2대와 통기타 2대가 어우러지는 실험적 국악 포크다. 공식 무대에서 시도된 첫 창작 국악 포크송에 대해 백순진은 "공연 후 한 국악인이 '다시는 그런 장난 하지 말라'고 혼을 냈다.

그날 우리들의 실험적인 국악포크를 의미 있는 작업이라며 인정해준 사람은 김민기뿐이었다"고 전한다.

'돌멩이'를 노래한 심창균은 당시 보건사회부장관의 아들이다. 맷돌 공연이 제약 속에서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역할이 컸다. 포크의 전설 김민기도 1집에 없는 '새벽길'을 통기타 한 대로 깔끔하고 진중하게 노래했다. 음반 뒷면에는 한국의 밥 딜런으로 불린 서유석이 노래한 한국 국악 포크의 고전인 '타박네'와 '진주낭군'과, 한국포크의 대모 양희은의 '서울로 가는 길', 그리고 빈자리와 참여가수들 모두가 부른 합창버전 '아침이슬'이 수록되어 있다.

한때 음악애호가들 사이에 음반의 존재여부에 대한 논란까지 벌어졌던 이 전설적인 포크명반은 2004년 조용하게 CD로 복각되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