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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않으면 먹히는 정글 속 세 마리 야수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치밀한 각본 속 배우들의 불꽃 연기가 빛나는 토종 정치 스릴러
흔히들 세상을 '정글'에 비유한다. 얽히고설킨 먹이사슬과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세계. 알고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 으스대는 인간도 야생의 동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정글 속에서, 살기 위해 으르렁대는 야수들의 한판 승부가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는 현실의 정글 한 가운데 카메라를 던진다.

연쇄적으로 초등학생을 성폭행하고 난도질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경찰청을 찾아 빠른 해결을 촉구하자 경찰청엔 비상이 떨어진다.

급박한 와중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의 과잉대응에 사망하고, 다급해진 경찰 간부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 반장(황정민) 팀을 소집한다.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번 승진에서 밀려났던 최철기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바로 '범인'을 만들어 내는 것. 최철기는 평소 뒤를 봐주던 건설업자 장석구(유해진)를 통해 비슷한 사건 전과가 있는 정신지체자를 '범인'으로 조작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장석구와 경쟁관계에 있는 또 다른 건설사 회장에게 뒷돈을 받고 있던 검사 주양(류승범)에게 덜미가 잡히고 만다. 이로써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최철기와 주양, 장석구 그리고 그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모든 이들의 물러설 수 없는 도박이 시작된다.

그들이 빠져든 곳은 개미지옥이다.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깊숙이 빨려드는 개미지옥. 한 번 발을 담근 이상, 파멸이 그들을 집어 삼켜버릴 때까지 그저 버둥거릴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체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제각기 다른 천적으로 제물로 바치면 '이번 판'을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부당거래>의 재미는 여기에 있다. 최철기는 장석구를 이용하고, 장석구는 주양의 뒤통수를 치고, 주양은 최철기를 밟으려 하고, 최철기는 주양과 라이벌 관계를 만든다. 이처럼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은 전체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가장 하층에 위치한다.

최철기는 경찰청의 고위간부들이 초등생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넘기기 위해 고른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비 경찰대 출신"의 바람막이일 뿐이다. 주양 역시 자신이 재계 스폰서 위에 군림하며 등을 치는 '육식동물'이라 믿지만, 결국 부자들의 돈을 지켜주기 위해 뒤처리를 맡는 '하이에나'일 뿐이다.

조폭생활을 접고 떳떳한 건설회사 대표로 신분상승했다고 믿는 장석구 또한, 여전히 최철기에게 뒷돈과 배우를 대면서 절절 매는 범죄자일 뿐이다.

세 사람이 자신의 진짜 '정체'를 모르면서 벌이는 '작전'들은 치밀하지만 허망하다. 딱 한 고비만 넘기면 끝날 것 같은,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넘고 나면 이전보다 더 험한 고비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 세 주인공은 "이번 한 번만"이라는 '희망고문' 속에서 피폐해져 간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변호할 명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나쁜 놈'들이지만, 그저 좀 잘 먹고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슬그머니 공감이 간다. 진짜 문제는 물고 뜯는 야수들이 아니라, 그들이 물고 뜯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만드는 '정글'에 있다.

전작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로 B급 액션의 상상력을 무차별 발산했던 류승완 감독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발 빠르게 내달린다.

빠른 편집과 점프 컷으로 사건의 개요를 숨 가쁘게 이어가는 영화는 수준급 범죄수사 '미드'에 익숙한 관객들을 만족시키고도 남을 듯. 여기에 "배우 보는 맛이 있을 것"이라는 류승완 감독의 호언장담처럼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의 불꽃 연기가 폭발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청렴한 경찰과는 담을 쌓은 비리 경찰이지만,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시민이기도 한 최철기 역의 황정민은 그 어느 때보다 파워풀한 연기를 펼친다. 주양 검사 역의 류승범은 일반적인 엘리트 검사 연기를 답습하는 대신, 자신의 전매특허인 껄렁대는 입심으로 승부를 본다.

황정민과 류승범은 이미 <사생결단>에서 비슷한 상황과 캐릭터로 만난 바 있다. "혹시 <사생결단>의 패턴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섣부른 추측은 멀리 던져 버려도 좋다. 황정민과 류승범은 대중이 그들에게 '보고자' 하고, 영화가 그들에게 '원하며' 스스로 '하고 싶은' 연기를 선보인다.

삼각편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장석구 역의 유해진은 이젠 '감초 조연'이라는 타이틀 속에 가둬둔 것이 미안해진다. 배우 유해진에게 처음 보는 얼굴들이 스크린 위에서 번뜩거릴 때, 앞으로 유해진이 보여줄 연기를 상상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다.

전개가 워낙 탄탄하다 보니 조연 하나하나의 연기에도 눈길이 간다. 천호진과 송새벽을 필두로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신구 조연들이 이야기 속에 착착 녹아 들어가는데, 그들의 어울림을 보는 재미가 훌륭하다. 지나가는 단역 배우 한 명도 가공할 내공을 뿜어내는 것 같은 결과물은 류승완 감독의 철저하다 못해 '징그럽도록' 치밀한 연출력의 공인 듯. 과연 '먹고 살기 위해' 부당한 거래를 시작한 사람들,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영화는 엔딩 직전까지도 그 답을 주지 않고 관객의 호흡을 조여 온다. 오랜만에 침이 꿀꺽 넘어가도록 긴장감 넘치고, 막힌 체증이 뻥 뚫리도록 호쾌한 토종 정치 스릴러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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