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김광석 4집 '서른 즈음에' (1994년 킹레코드)흔들리는 자신의 영혼 담긴 노래 청자들 속수무책 중독

고 김광석의 노래는 쓸쓸한 가을에 제격이다.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도 주류 무대를 장악했던 최고의 인기가수도 아니었던 그의 노래들이 지금껏 사랑받는 원동력은 20대, 30대를 넘어 60대까지 아우른 진정성 가득한 노랫말에 있다. 누구나 인생의 험난한 과정마다 느꼈던 고민과 희망을 대변해준 바로 '내 노래' 같았던 삶의 진정성이 담긴 가사 말이다.

김광석은 등장하자마자 주목을 받았던 뮤지션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존재가 대중에게 희미하게나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동물원 1집을 통해서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세상에 던져진 그의 노래 '거리에서'와 '변해가네'는 진정 감동이었다.

또한 격변의 세상을 달궜던 뜨거운 열기를 진정시키며 잔잔한 파문을 던졌던 동물원 2집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은 김광석 특유의 순수함이 담겨진 결정체였다. 1989년 초기의 여러 그룹 활동에서 점차 자기 음악에 대한 갈증으로 솔로가수로 독립한 그는 1991년 '사랑했지만'이 담긴 솔로 2집, 1992년 '나의 노래'가 담긴 솔로 3집으로 성장했다.

기성 가요계에 진출해 성공한 첫 운동권 가수로 기록된 그는 90년대 대학로 소극장 공연문화를 만개시킨 주인공이다. 1993년 노래생활 10년을 결산하는 장기공연을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시작한 그는 1995년 마침내 1000회 공연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의 공연은 10대 소녀 팬들과 20대 여성은 물론 넥타이를 맨 30대 남성 직장인까지 몰려들며 늘 만원사례를 이루었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열기는 대학로에 소극장 공연문화를 정착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불러왔다. 장르적으로도 힙합과 댄스 그리고 발라드에 밀려 절멸의 길을 걸어가던 모던 포크의 불꽃을 되살렸다.

그는 2장의 '다시 부르기' 앨범을 통해 훗날 리메이크 돌풍에 도화선을 붙였다. 그의 대표곡 '이등병의 편지'는 군 입대 문제로 고민했을 이 땅의 모든 젊은 청춘을 대변했던 노래였다. '너무 우울하다'는 이유로 한때 방송금지가 되었던 이 노래의 오리지널 가수는 전인권이다.

이처럼 원곡을 능가하는 리메이크 작업으로 그는 세상의 모든 명곡을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 마술을 발휘했다. 1994년 세상에 대한 비관적 몸부림과 희망을 동시에 담은 명곡 '서른 즈음에'와 '일어나'가 담긴 마지막 정규앨범인 4집이 세상이 나왔다.

이 앨범은 한층 강화된 포크 질감으로 '90년대 포크음악의 진정한 계승자'란 평가를 이끌어낸 김광석 음악의 진수가 담긴 명반이다. 비록 그때부터 대중적 인기와는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이 시기에 발표한 그의 노래들은 지금껏 불멸의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음은 시사적이다.

총 10곡이 담긴 4집은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자의식이 뚜렷하다. 좌절과 불안 그리고 희망과 설렘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유했던 흔들리는 자신의 영혼이 담긴 노래들에 청자들을 그만 속수무책으로 중독되었다.

첫 트랙 '일어나'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밤과 강물 위를 부초처럼 떠다니다 썩어갈 인생이 봄의 새싹들과 만나며 '일어나'를 외치는 순간, 우울하고도 아름다운 독특한 세상을 제시했다. 이어지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도 두렵고 힘겨운 세상이지만 새로운 꿈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한 근사한 노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또한 사랑의 아픔과 절절함을 경험해 봤다면 눈물 나고 가슴 먹먹한 감동에 가슴 시렸을 것이다.

이 앨범의 최고 명곡은 '서른 즈음에'다. 무심한 듯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앞만 바라보며 치열한 삶을 살았을 서른 즈음에 느꼈던 쓸쓸함이 담겨있다. 그의 요절 후 많은 가수들이 이 곡의 리메이크에 나섰지만, 그를 능가하는 뮤지션은 없었다. 김광석은 오직 김광석인 것이다.

그의 예상치 못했던 요절은 앞서 떠난 듀스의 김성재, 아이돌가수 서지원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소식과 더불어 충격파를 날렸다. 시와 노래의 접목을 통해 시노래 장르의 완성을 꿈꾸며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서성였던 김광석은 갔지만 영원한 청년 가객으로 우리 마음에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