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와 음대교수의 국내 첫 크로스오버[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이동원 박인수 '향수' (1989년 아세아 레코드)정지용 시문학 재조명… 가요 이미지 제고, 클래식 대중화 두 토끼 잡아

70~80년대만 해도 봄, 가을이면 시를 주제로 한 '문학의 밤'이 청소년층에 각광받았다. 시즌축제 성격의 이 행사는 지금처럼 이성교제가 자유롭지 않던 시절의 공식적인 이성과의 만남의 장이었다.

시 한편은 외우고 있어야 문학소년, 소녀로 폼 잡을 수 있었던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낭만적인 시의 향기에 취했다. 특히나 낙엽이 지는 늦가을이면 시집 한 편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센스 정도는 필수적이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시를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시집을 발표한 시인은 증가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한 집 건너 시집을 낸 아줌마 시인들이 넘쳐난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이처럼 시인과 시집은 넘쳐나지만 시가 읽히기 않는 디지털 세상에 대안적으로 생겨난 크로스오버 장르가 있다.

시를 대중가요의 가사로 사용한 시노래다. 사실 대중가요 중 노랫말을 떼어내면 바로 시가 되는 아름다운 가사가 너무도 많다.

과거 시인들은 자신의 시가 대중가요 가사로 이용되는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해 권위 있는 대중가요 시상식의 작사부문 수상자로 지명이 되어도 수상거부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시는 장르적으로 대중가요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지금도 그럴까? 이제는 시가 읽히지 않는 세상이 되다 보니 오히려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대중가요의 가사로 사용해 주길 적극적으로 희망하는 세상이 되었다.

시와 노래. 이 둘은 각각으로 보이지만 한 몸이 되었을 땐 새로운 생명력을 발휘하며 오랫동안 대중적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80년대 초 미국의 포크가수 존 덴버가 세계3대 테너가수인 프라시도 도밍고에게 듀엣을 제안해 불멸의 감동을 안긴 ‘Perhaps Love’란 노래가 있다. 전 세계적인 히트넘버를 기록해 이 노래는 대중가수와 성악가 사이에 견고하게 존재했던 이질적 벽을 허물고 한 몸이 되게 하는 크로스오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시공은 다르지만 존 덴버와 도밍고와 똑같은 상황이 국내에서도 벌어졌다. 만약 존 덴버와 도밍고의 노래가 각광을 받지 못했다면 <향수>라는 시 노래는 탄생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성공적 선례가 있었기에 1989년 국내 최초로 대중가수와 성악가의 듀엣 곡이 탄생할 수 있었다. 80년대 중반 납북된 천재시인 정지용의 시 <향수>는 지금도 애창되는 시노래 장르의 명곡이다.

김희갑이 작곡을 한 노래를 들고 가수 이동원은 서울대 음대교수 박인수를 찾아가 듀엣 취입을 제안했고 받아들였다. <향수>는 발표 후 1년 쯤 지나면서 중년 팬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노래는 1989년 이전에 발표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납북시인인 정지용의 시는 1988년까지 공식적으로 금지대상이었다. 그러니까 민주화항쟁의 여파와 온 나라를 축제분위기로 이끈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해금이 되었고 시노래가 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획득한 셈이다. 노래의 빅히트와 더불어 정지용의 시문학도 덩달아 대중문화의 한복판에서 들불처럼 타오르며 각광받았다.

노래로 변신한 정지용의 시 <향수>는 대중의 귀로 파고들었다. 부드럽고 우수에 넘치는 보컬로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이동원은 이 노래로 주춤했던 활동을 털고 성공적인 컴백을 이뤄냈다. 박인수 교수는 이 노래에 대중가요를 뛰어넘는 고품격을 제공했지만 대중가수와의 실험적 노래작업을 이유로 불편한 시간을 감수했다고 한다.

열풍이 불긴 했지만 국내 최초라는 화려한 수식어의 그늘에는 장르적 편견과의 충돌이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구적 시도는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문학과 노래,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크로스오버로 탄생한 시노래 ‘향수’는 지금도 많은 대중이 위로받는 음악이고 대중가요의 이미지 제고와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했기 때문이다.

노래의 빅히트에 힘입어 3년 후인 1992년 러시아에서 한국대중음악의 수준에 감탄한 대작이 탄생했다. 국내 세션을 비롯해 총 130여명의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과 현지 코러스가 참여한 이동원의 숨겨진 명반 ‘말렝카’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