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스트리트-머니 네버 슬립스'22년 만에 돌아 온 속편, 돈의 가치보다 삶의 가치를 설파

신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면은 정치도, 문화도 아닌 바로 '경제면'이다. 경제면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단연 '주가'. 깨알같이 박혀있는 작은 화살표들과 숫자가 마치 풀 수 없는 암호문처럼 느껴진다면, 당신은 종종 누군가에게 "그렇게 생각없이 살다가는 뒤쳐진다"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가는 경제 그 자체다. 경제활동이란 더 이상 무엇을 만들고 파는 활동이 아니라, '주식'이라는 종이의 흐름을 일컫는다.

주가의 변동을 알리는 빨간 선의 그래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이 오락가락하고, 곡선이 바닥으로 치달으면 누군가의 삶도 끝장나는 현실. 문제는 그 빨간 선에 목숨을 걸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간 선이 춤추는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점이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여러 지표를 들먹이며 분석해 봤자, 답은 없다. 왜냐하면 빨간 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탐욕'이기 때문이다.

1987년, 올리버 스톤 감독은 <월 스트리트>를 통해 이 사실을 후련하게 들춰낸 바 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월 스트리트의 거물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는 화려한 명품 슈트로 몸을 휘감고 위풍당당하게 외쳤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탐욕은 결국 파멸로 이어졌다. 게코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정당한 주식거래로는 절대 잠든 돈을 깨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때문에 은밀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빨간 선을 좌지우지하던 게코는 결국 주식거래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혔고, 월 스트리트 역시 조금씩 사그라드는 거품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서서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시아 경제위기와 미국의 9.11 사태가 잇달아 벌어지면서 세계 경제는 빙하기로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고든 게코가 돌아왔다.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는 22년 만에 돌아 온 속편이다. 아마도 올리버 스톤 감독은 탐욕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야 할 시점을 지금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세계경제(엄밀히 월스트리트의 동향)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올리버 스톤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알 수 있다.

공공연히 "현재의 상황에 비하면 1920년대 대공황은 애들 투정"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미국의 경기침체는 심각한 수준이고, 도미노처럼 세계경제 역시 휘청대는 지금,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는 귀 기울일만한 초급자용 경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월 스트리트의 실적 좋은 증권 트레이너 제이콥 무어(샤이아 라보프)는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우연히 증권가 대부 루이스 자벨(프랭크 란젤라)의 눈에 들어 골프장 캐디에서 월 스트리트에 입성한 무어는 루이스에게 받은 특별 보너스로 아름다운 연인 위니(캐리 뮬리건)에게 1.4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청혼반지로 사줄 수 있을 만큼 부유하다.

하지만 무어의 행복은 보스이자 아버지처럼 여겼던 루이스의 자살로 인해 흔들린다. 루이스에게 반감을 갖고 있던 라이벌 브래턴(조쉬 브롤린)이 퍼트린 악성 루머가 피할 수 없는 화살로 돌아와 루이스의 목숨을 앗아간 것. 복수심에 불타던 그의 앞에 약혼녀 위니의 아버지 소식이 들려온다.

윌 스트리트의 '검은 손' 고든 게코가 바로 위니의 아버지였던 것. 호기심 반, 동경 반으로 고든을 찾아간 무어는 고든의 카리스마에 빠져들고, 결국 그와 비밀 거래를 시작한다.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는 미국 경제의 심장부, 월 스트리트의 하늘을 비추며 시작한다. 들쭉날쭉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빌딩 숲의 전경이 주식 거래표 그래프로 바뀌는 첫 장면에서부터 올리버 스톤의 의중을 눈치 챌 수 있다.

뉴욕의 첨탑들, 그 자체가 세계 경제성장의 상징이며 이를 이룩하게 만든 인간 탐욕의 실체라는 사실이다. 돈과 인간의 탐욕의 상관관계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초반의 몽타주 신들은 여전히 숨죽지 않은 올리버 스톤의 쟁쟁한 위트를 과시한다.

첨탑 숲을 주가 그래프로 읽어낸 감독은, 자선 파티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귀와 목에 걸린 주먹만 한 보석에서 번뜩이는 허영과 부에 대한 욕망을 짚어낸다. 그리고 주가조작으로 검은 돈을 쓸어 모았던 게코의 입을 빌려 "모랄헤저드란 누가 당신의 돈을 훔쳐놓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설명한다.

어려운 경제 용어를 몰라도, "튤립 한 송이가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을 만큼 가격이 올랐던" '튤립 광풍'을 듣는 순간, 주식게임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 이해가 된다.

진정한 '가치'가 아니라 누군가 매겨놓은 '값'이 실재가 되는 세상에서 '돈'의 가치를 좇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뻔히 열기에 타 죽을 줄 알면서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부나비처럼, 인간은 탐욕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붉은 그래프'의 지옥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게코가 세상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혈육보다 새로운 사업 밑천이 될 돈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현실이라면 게코가 탐욕을 뉘우치고 다시 딸에게 돌아올 지 미지수지만,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는 영화적 훈훈한 결론을 내놓는다.

그것이 뻔히 영화적 장치임을 알면서도, 집 값을 부풀려 돈을 벌던 무어의 어머니(수잔 서랜든)가 사람을 살리는 간호사로 다시 돌아갈 때, 무어의 약혼녀 위니가 1.4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장난감 반지를 끼고 웃을 때, 현재 나의 삶에서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게코의 말처럼 돈 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시간'이다. 범죄 스릴러 장르영화로 알짜배기 경제지식과 삶의 격언까지 얻게 되니 일석이조. 단 올리버 스톤 특유의 서슬 퍼런 불호령이 없는 것이 아쉽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