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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음악의 선구자 '미스 다이나마이트'

미8군, 대학축제, 다운타운 클럽 춤바람
[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이금희 '키다리 미스터 김' (1966년 콜롬비아레코드)
풍만한 몸매, 화끈한 춤 객석이 '후끈' 정적 가요계에 일대 지각변동
요즘 젊은 세대들은 발육상태가 좋아 신체가 크고 인물도 서구적으로 잘 생겼다. 한국남성은 키가 170cm만 넘으면 '늘씬하다'는 찬사를 들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있었다.

얼마 전 외국 미인들의 시각으로 본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전하는 한 예능 토크 프로그램에 참관 온 여대생이 "남자 키가 180cm를 넘지 못하면 '루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인터넷을 후끈하게 달궜다. 단순하게 던져진 그 말에 예상치 못한 뜨거운 비난여론이 생성된 것은 사람의 신체나 외모에 대한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적 관심사란 증명이다.

1966년, '가요계의 기인'으로 통했던 음반제작자 황우루는 당시로서는 '키다리'로 대접받았던 키 180cm가 넘는 30여명의 남자들로 팬클럽을 결성한 적이 있다. 국내 최초의 시도였던지라 화제집중은 당연했다. 하지만 팬클럽의 주인공인 고 이금희의 대표곡 <키다리 미스터 김>은 갑자기 1년 동안 방송금지가 되었다. 이유는 황당했다.

단신의 박정희 대통령을 의식해 방송관계자들이 알아서 금지를 시켰던 것.

트위스트, 고고, 디스코, 맘보, 차차차, 힙합, 살사, 테크노, 블루스 등등.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춤이 있다.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춤이 각 나라마다 각광받는 것은 시대적, 지리적 환경과 경제, 사회적 발전과 맞물려 그 형태를 바꿔 진보하며 무엇보다 상당한 파급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춤은 우리들의 생활을 흥겹고 풍요롭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어느 시대이건 흥겨운 자리라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춤이다.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인 미국만 해도 1940년대 맘보, 50년대 트위스트, 차차차, 60년대 재즈, 락, 소울 등이 뒤섞여 살사가 등장했다.

국내에 외국의 춤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시기는 미군 주둔의 역사와 같이 한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으로 대변되는 50년대의 과도기를 거쳐 미군병사들의 여흥을 위해 유입된 신나는 춤이 로큰롤과 트위스트였다.

70년대가 고고의 시대라면 60년대는 단연 트위스트 열풍시대였다. 동네 꼬마부터 트위스트는 기분 좋은 장소에서 빠질 수 없는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았던 춤이었다. 남진의 '님과 함께'와 개다리 춤은 당시 각 급 학교의 소풍과 유흥시간에 빠질 수 없는 단골메뉴였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디스코 열풍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확산됐다.

국내의 디스코의 열기는 경제 성장기의 사회 분위기에 맞춰 한동안 상승세를 탔다. 디스코 열풍 이후는 마이클 잭슨의 브레이크 댄스가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90년대는 테크노 열풍 속에 힙합 춤이 패션, 음악, 스타일 등 패키지로 몰려들며 광범위한 힙합 문화를 형성했다.

세상의 모든 춤들을 대중에게 알린 전도사들은 댄스가수들이다. 60년대 춤 열풍을 대변하듯 당시 유행했던 춤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했던 '트위스트 김'은 배우이자 갖가지 춤을 만능으로 선보였던 국내 최초의 남자 댄스가수였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공인된 국내 최초의 댄스가수는 누구일까?

'키다리 미스터 김'을 부른 고 이금희다. 그녀는 미8군 무대와 대학축제, 다운타운의 클럽을 통해 외국의 유행음악을 대중에게 전달해준 1세대 여성 팝 메신저였고 대부분 부동자세로 노래하던 당대의 정적인 가요계에 흥겨운 춤바람 열풍을 불러오며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금희는 이후 김추자, 펄시스터즈, 인순이, 김완선, 김현정, 클론 그리고 지금의 아이돌 댄스가수 전성시대에 기름진 자양분을 제공한 한국 댄스음악의 선구자였다. 또한 한영모 감독의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김응천 감독의 음악영화 '청춘대학'은 물론 TV 드라마에 진출해 연기재능을 뽐낸 멀티플레이어이기도 했다.

당시 풍만한 몸매로 화끈한 춤을 곁들여 노래한 그녀는 뭇 남성들의 야릇한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극장 쇼에서도 이금희의 차례가 오면 객석이 후끈 달아오르며 앙코르 세례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당시 그녀의 별명은 무대를 폭발시킬 것 같다는 의미인 '미스 다이나마이트'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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