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정적 심리묘사 통해 동적 스릴 뽑아내는 연출 빛나

참으로 스피디하고 스마트한 세상이다. 처음 인터넷 네트워크 시스템이 개발되었을 때, 시공간의 단축은 거의 경외의 대상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향한 16차선 고속도로가 뚫린 기분이랄까.

이 엄청난 기술을 기반으로 인류가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 미래학자들은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정보 교류가 세계적으로 유연해지면서 경제 분야의 세계적 통합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둥, 전 세계적가 지식 평등사회로 발전할 것이라는 둥, 끝내 국경 기반의 국가 체계가 무너지고, 유럽 연합을 비롯해 지역 별 정치경제 공동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결국은 '세계정부' 형태로 통합될 것이라는 등등. 미래학자들의 예측은 어느 부분은 맞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완전히 빗나갔다.

얼마 뒤, 아마 학자들은 당최 예상하지 못했을 신드롬이 불어 닥쳤다. 한 마디로 '채팅'. 사람들이 가상의 네트워크 공간에서 부유하는 익명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를 사귀는 재미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 좋고, 눈치 빠른 천재들은 이 현상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아냈다.

본격적으로 가상공간에 '방'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개방적인 '채팅방'과 '메신저'가 인기를 모았고, 그 다음엔 오래 전 연락이 끊긴 초등학교 친구 찾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급기야 사람들은 가상공간 안에 '작은 집'을 짓고 들어앉았다. 가상공간에 집을 지어 파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사업의 세계 최고봉이 바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신작 <소셜 네트워크>의 주인공 마크 주커버그다. 소심한 괴짜 하버드 천재에서 세계적인 SNS '페이스 북'을 창시한 전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로의 변신. <소셜 네트워크>는 그 과정을 근거리에서 지켜본다.

하버드대 재학생 마크(제시 아이젠버그)는 여자 친구 에리카(루니 마라)와 대화중이다. 얼핏 보기에도 마크는 소위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괴짜(Geek)'과의 전형이다.

해 본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과 게임 조그셔틀 작동이 고작일 마른 몸에 굽은 어깨, 상대방에게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형형한 눈, 빠른 두뇌회전 탓에 남의 말을 서 너 단계 가로질러 버리는 매너 없음에,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조급한 잘난 체까지. 에리카의 말마따나 '왕재수'의 모든 요소를 갖춘 마크를 에리카는 미련 없이 차버린다.

속 좁은 천재는 에리카를 비롯해 교내 여학생들의 신상을 모조리 해킹해 공개하고, 그녀들에게 점수를 매길 수 있는 해적사이트를 만드는 것으로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복수를 한다.

마크의 장난에 엄청난 관심이 쏟아진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지식의 성전이라고 한들, 피 끊는 청춘들의 짝짓기 본능이 거세될 리 없다. 청춘 남녀의 관심사는 바로 '이성'. 마크의 실력은 금세 소문나고, 교내 비밀 엘리트 클럽의 윈클보스 형제(아이미 해머)로부터 은밀한 초대장이 날아온다.

같은 하버드 생이라고 해도, 같은 계급인 건 아니다. 마크 같은 '머리만 좋은' 평민이 있는 반면, 윈클보스 형제처럼 '머리 좋고, 집안 좋은 만능 스포츠맨'인 귀족도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비밀클럽은 '하버드 귀족'임을 입증하는 일종의 면허증인 셈. 은연중에 비밀 클럽 회원들을 동경했던 마크는 윈클보스 형제에게 특별한 제안을 받는다. 하버드 상류층만이 교류할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을 계발하라는 것.

마크의 머릿속에 번쩍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마크는 단 하나뿐인 친구이자 하버드 동창생 왈도 세브린(앤드류 가필드)과 함께 아이비리그 대학을 중심으로 한 SNS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전 세계 5억 명이 가입한 세계적인 SNS '페이스 북' 전설의 시작이다.

5억 명이라는 숫자가 감이 잘 안 올지도 모르겠다. 만약 '페이스북'이 국가라면, 마크 주커버그는 인구수로 세계 3위의 대국을 세운 시조인 셈이다.

건국엔 피바람이 따르기 마련. '페이스 북'의 건국에도 어쩔 수 없는 숙청의 바람이 휘몰아친다. '페이스 북'이 승승장구 하면서, 마크는 '넵스터의 창시자'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를 만나면서부터 불화가 시작된다.

마크가 거만하고 제멋대로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영감에 넘치는 숀 파커를 '멘토'이자 '파트너'로 곁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온 '페이스 북'의 재정최고책임자이자 마크의 친구 세브린을 찍어내면서까지 말이다. 세브린은 마크를 향해 칼을 뽑아든다.

자신의 정당한 지위를 위해 법정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자신들의 '교내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 아이디어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윈클보스 형제도 엄청난 액수의 저작권 소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세 팀은 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당시 '페이스북'의 자산가치는 50조 원에 육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이 협상 테이블의 결과에 몇 억 달러가 달려 있었다.

세 팀은 서로가 얼마나 '파렴치 한 사기꾼'인지 증명하기 위해 칼을 뽑아든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뽑아든 칼이, 어찌나 사소하고 유치한 지, 피식 웃음이 난다.

<소셜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억만장자의 성공담이 아니다. 요약하자면 실연한 '소년'의 일기에 가깝다.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 북의 성공 뒤 객기 부리느라 파자마 차림으로 월스트리트를 달리는 모습이나

"나 CEO 됐다! 이 나쁜 년!"이라 새긴 명함을 들고 다니는 모습, 그리고 '새로고침' 버튼을 반복적으로 클릭하는 엔딩을 본다면, 왜 굳이 20세가 넘은 성인을 '소년'이라 부르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이 설익은 '소년'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마음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는 마치 우리에게 주커버그와 세브린, 윈클보스 형제의 비밀 일기를 읽어주듯, 인물들의 심리 속으로 파고든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인물의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화면을 좆다보면, 어느 새 다음 장면을 숨죽이며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적인 심리묘사를 통해 동적인 스릴을 뽑아내는 연출은, 가히 세계 최고다. 중구난방 시공간을 뛰어다니는 것 같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느 한 장면, 한 대사가 버릴 게 없다. 유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완벽한 구조물. 핀처는 이 솜씨 좋은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두 가지를 던진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네트워킹 시스템이 침투한 건, 현대인의 '외로움'이라는 작은 깨달음과 "당신의 친구는 어디 있습니까?"라는 위트 있는 질문. 둘 다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