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 돌란 감독의 '하트비트'] 다재다능한 21세 청춘 감독의 민망하도록 솔직한 짝사랑 보고서

신작이 기근이다. 여느 해와 비교해도, 개봉작의 수가 현격히 줄어든 2010년 겨울 극장가는 썰렁하다. 그나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찾아낸 '부산의 보물'들이 하나 둘 전국개봉에 나선다는 사실을 위안 삼을 만하다.

자비에 놀란 감독의 색다른 사랑영화 <하트비트>를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다시 극장에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하트비트>는 재도 남지 않을 것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마주사랑'이 아니라, 그저 등만 바라봐야 하는 '짝사랑'의 이야기. 늦가을이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스산하고 아릿한 초겨울에 즐기기에도 훌륭하다.

사랑 앞엔 장사 없다. 달뜬 심장은 주책없이 요동치고, 시선은 한 사람에로만 쏠린다. 차마 자존심 때문에 먼저 말은 못하고,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며 상대의 반응을 체크하는 '연애 발화의 시점'엔 누구나 제 정신이 아니다.

오죽하면 사랑은 '미친 짓'이라고 했던가. 지나고 보면 '미친 짓'이지만, 하는 동안에는 무아지경. 올해로 21세가 된 자비에 돌란 감독은 <하트비트>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사랑, 그 중에서도 처연하기 그지없는 짝사랑의 가장 낯간지러운 순간만을 족집게로 골라낸다.

영화는 알프레드 드 뮈세의 문구로 포문을 연다. "세상에 유일한 진실은 이성을 잃은 사랑이다." 세상의 유일한 진실을 경험할, 즉 이성을 잃은 사랑에 빠질 주인공은 마리(모니아 초크리)와 프랑시스(자비에 돌란). 60년대 빈티지 취향을 즐기는 영리하고 당당한 마리와 모던한 취향을 즐기는 다정하고 섬세한 게이 프랑시스는 둘도 없는 단짝이다.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두 사람 앞에 시련이 찾아온다. 우연히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만난 눈부신 금발 고수머리의 청년 니콜라(닐 슈나이더). 짓궂은 사랑의 신은 그날따라 남는 화살이 많았던지, 마리와 프랑시스 모두에게 사랑의 화살을 꽂는다. 그들은 각자 '니콜라와 나는 첫 눈에 반했다'고 상상하지만, 실은 동상이몽이다.

이 관계의 중심에는 속을 알 수 없는 니콜라가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아도니스를 쏙 빼닮은 미청년 니콜라가 장난기와 수줍음이 공존하는 미소와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안 넘어갈 도리가 없다.

문제는 니콜라는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것. 니콜라는 친구로서 마리와 프랑시스 모두를 '사랑'한다지만, 나누는 사랑이 마리와 프랑시스에게 성에 찰리 없다. 셋이 아닌 둘을 꿈꾸는 두 사람은 니콜라를 사이에 두고 뜨거운 경쟁을 시작한다.

아직 니콜라의 마음이 누구에게 향해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존심 강한 마리는 '강한 여자'를 자처한다. 쿨한 친구처럼 다가서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호수 위의 백조'다.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게 위해 쉴 새 없이 발을 놀려야 하는 백조처럼, 속으로는 애가 탄다.

한 편, 평상시 섬세했던 프랑시스는 사랑 앞에서 적극적으로 변화한다. 먼저 선물을 건네고, 그의 동선을 체크해 우연한 만남을 가장한다. 가장 친했던 친구는 하나의 사랑을 사이에 두고, 가장 지우고 싶은 존재가 된다.

<하트비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이 찾아왔을 때의 공동적인 변화다. 번쩍하는 첫 만남, 몇 차례의 우연, 은밀한 탐색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황홀한 상상을 거쳐 우리는 '사랑'을 시작한다.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사랑의 권력관계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소위 말해 '밀고 당기기'의 시기. 어떻게 해야 그와의 사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순간, 약자로 밀린다.

강자에겐 처음부터 두려움 따윈 없으니까. 때문에 <하트비트>는 사랑의 절대강자 니콜라에겐 별 관심이 없다. 어떻게든 그의 품을 파고들기 위해 애쓰는 마리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눕지만 은근슬쩍 팔을 포개고 싶은 프란시스의 애처로운 몸짓을 보여주는 데 사력을 다한다.

아닌 척 내숭떨다가, 와르르 무너졌던 기억이 있는 '짝사랑 경험자'라면 매 장면에서 심장박동수가 올라간다. 그네들의 짝사랑 전쟁이 귀여워서 두근, 문득 과거의 내 얼굴이 겹치면서 얼굴이 화끈, '어장관리의 절대고수' 니콜라가 얄미워서 불끈.

마리와 프랑시스 외에도 짝사랑에 데어본 적 있는 청춘남녀들의 인터뷰도 귀여운 볼거리다. "그가 도착해, 숨을 헐떡이면서. 화를 내려고 했는데, 너무 잘생긴 거야! 차가 많이 막혔대. 난 그를 바로 용서하고 늦을 수도 있다고 했어. 왜냐하면, 난 약하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지는 거야" "거절당하는 건 힘들어. 갑자기 끝나잖아. 마치 사형 같은 거지.

하지만 거절의 대답을 기다리는 건, 마치 머리를 천천히 자르는 것 같아." 있는 그대로의 짝사랑담, 이별담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하트비트>에 '사랑영화의 걸작' 같은 거창한 칭호를 붙일 순 없다. 이건 정확히 20대에 막 들어선 청춘남녀들의 사랑이야기다. 빨리 붙고, 빨리 꺼지지만, 너무 뜨거워 재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사랑에 한 번쯤은 울고 웃고 애태웠던 이들이라면, 마리와 프랑시스을 보며 끝내는 빙그레 웃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니콜라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프랑시스 역의 자비에 돌란은 감독과 동명이인이 아니다. 이 귀여운 새침데기가 바로 자비에 돌란 감독이다. 4살 때 CF로 데뷔한 뒤 배우로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자비에 돌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연출과 각본, 프로듀싱과 미술, 패션을 담당하는 동시에 연기까지 도맡아 '천재감독의 능력'을 과시했다.

이미 19살에 감독한 <아이 킬드 마이 마더>로 2009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바 있는 그는 재기 넘치는 소품 <하트비트>로 2010년 다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