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정조 극복, 따뜻한 정서의 이별노래[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신승훈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0년 덕윤산업데뷔 20주년 기념앨범 후배들에 의한 음악적 재해석 시도

격동의 80년대가 지난 1990년의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에서 활기가 넘쳐 흘렀다.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자리잡아갔고 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걸쳐 풍요와 안정이 가속화되었다.

대중문화의 산업화 이전이었던 당시,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했던 막강한 권력은 자본과 미디어 그리고 힘이 빠진 정치권이 아닌 대중이었다.

80년대가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라면 90년대는 최대 황금기로 평가할 만하다. 신승훈은 그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뮤지션이다.

이미 80년대에 팝 발라드 장르를 도입하며 거대 담론을 이끌었던 이문세 이후 유재하, 변진섭을 거친 한국의 발라드는 이승훈에 이르면서 가히 절정을 구가했다.

이별 노래가 대다수인 그의 1집이 한국 대중가요의 오랜 전통인 슬픈 정조를 극복하고 따뜻한 정서로 받아들여진 것은 90년대 초반에 형성된 사회적 낙관주의가 빚어진 낭만적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1987년 천재 뮤지션 유재하가 불의의 교통사고 요절한 지 꼭 3년 뒤인 1990년 11월 1일은 대중음악계의 묘한 인연이 생성된 날이다. 그날 대전 출신의 신인가수 신승훈이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했고 같은 날 해질 무렵, 사랑의 가객 김현식이 간경화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신승훈이 자신의 데뷔 20주년 기념앨범을 금년 11월 1일에 발표한 이유는 자신의 데뷔일이 유재하와 김현식의 기일과 같기 때문이다. 명곡을 두고 스러져간 두 사람과 가왕 조용필을 음악적 '멘토'라 밝힌 신승훈은 "조용필 선배는 새로운 길을 직접 알려주었고, 김현식, 유재하 선배는 가수로 살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데뷔 시절의 신승훈은 유재하의 팬에 불과했다. 대전 카페촌에서는 잘나가는 가수였지만 무작정 상경한 그는 서울의 가리봉동과 방배동 카페촌을 맴돌며 혹독한 좌절의 시간을 거쳤다.

남의 노래만 부르는 것이 지겨워 창작곡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의 환골탈퇴는 시작되었다. 탁월한 프로듀서 김창환에 의해 픽업된 그가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타이틀로 삼으려 한 음반사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노래를 타이틀로 고집했고 유재하의 기일인 11월 1일로 데뷔음반 발매를 잡았던 것은 유재하의 음반에서 본 '유재하 작사 작곡'이라는 창작자 크레디트 문구가 근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승훈이 창작한 5곡이 수록된 1집은 그와 한국 대중음악 전체에 성장 동력의 발판을 마련해준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한국 발라드의 체질을 개선한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비롯해 '날 울리지마' 같은 탁월한 발라드 트랙들은 당대 대중의 심금을 울리며 무명 가수의 데뷔앨범에 140만 장의 판매기록을 안겼다.

또한 1991년 무려 14주에 걸쳐 차트 정상에 군림한 '보이지 않는 사랑'이 수록된 2집 이후 20년 동안 이룩한 1700만 장의 경이로운 앨범 판매기록은 대중음악계의 산업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데뷔 이후 5집까지 모든 정규앨범을 밀리언셀러로 장식한 가수는 그가 유일하다. 이점은 그가 왜 '발라드의 황제'로 불리며 지금도 사랑받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일 것이다.

엄밀히 말해 신승훈은 음악적 혁신을 이뤄낸 아티스트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20년 동안 인기정상의 자리를 지켜내며 발라드의 대중화를 이뤄낸 '황제'라는 명예를 획득했지만 한 장르에만 매몰된 활동반경은 음악적 다양성 부족이라는 멍에로 작용하는 이중적 결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그의 데뷔 20주년 기념앨범에 참여한 정엽과 클래지콰이, 다비치, 2AM, 나비, 싸이 등 후배들에 의한 음악적 재해석을 통해 그의 음악은 장르 음악으로 영역이 확장되는 동시에 세대를 뛰어넘는 통시성을 담보하고 있음이 비로소 증명되었다. 이는 인기 뮤지션이기에 겪었던 음악적 저평가가 부당한 것임을 웅변한다.

그의 노래들은 90년대 대중이 선택한 최고의 멜로디였고 대중음악 최대 활황기를 이끈 기름진 자양분이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준 자신의 음악 멘토들처럼 자신 또한 후배들에게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