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테일러 우드 감독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년시절에서 '전설의 싹'을 보다

비틀즈의 멤버는 4명이지만, 비틀즈를 양팔 저울에 올리면 무게는 둘로 분산된다. '존 레논' 이거나 '폴 매카트니' 이거나. 비틀즈가 전설이 되기까지, 과연 둘 중 어떤 천재의 힘이 컸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을 내기 쉽지 않다.

존과 폴의 개성이 너무 뚜렷하기도 하거니와 존이 너무나 황망히 그리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탓도 있다. 전설은 살아남은 자보다 일찍 떠난 자를 위한 것이니까.

올해는 존 레논의 탄생 70주년이자 사망 30주기가 되는 해다. 비틀즈 관련 책과 음반, 각종 행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샘 테일러 우드 감독의 <존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가 개봉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만큼이나 유치하지만 비틀즈 팬들이라면 한 번쯤 답을 해야 할 "존이냐, 폴이냐"라는 케케묵은 질문에 샘 테일러 우드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단호하게 '존'이라고 답한다.

<존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는 아직 음악을 만나기 전, 불량소년 존 레논이 비틀즈의 존 레논이 되기까지의 유년시절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영상 자서전이다. 비틀즈의 팬, 그 중에서도 존 레논의 팬이라면 놓쳐선 안 될 선물이라는 의미다.

<존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에서 익숙한 '존'의 모습은 없다. 바가지 단발머리를 열정적으로 흔들며 공연하는 존이나 예수님 헤어스타일에 꽃을 들고 명상을 하는 존만 기억하고 있었다면, 엘비스 헤어스타일을 한 악동 존의 모습은 낯설고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리버풀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존 레논(아론 존슨)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이모 미미(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와 이모부 조지(데이비드 스릴펄)의 손에 자란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존의 이모 미미와 조지는 존에게 여느 친부모 못지 않게 애정을 쏟는다.

하지만, 부모 특히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이 심했던 존은 짓궂은 장난과 반항으로 외로움을 표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에게 아버지와 같았던 이모부 조지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고, 상처 입은 존 앞에 엄마 줄리아(앤 마리 더프)가 나타난다.

자신을 버렸다는 분노도 잠시, 존은 음악을 사랑하고, 자유를 즐기는 엄마 줄리아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미미 이모는 줄리아가 또 다시 존에게 상처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한다.

<배트맨 비긴즈>가 떠오르는, 좀 과한 감이 있지만 <존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는 비틀즈 전설의 근원이 '존 레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꽤 적절한 제목이다(해외개봉제목은 <노웨어 보이>).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전설'이 되기 이전의 '문제아 틴 에이저' 존의 귀여운 재롱(?)을 볼 수 있다.

영화는 이 말썽꾸러기 소년이 음악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찾아오는 평생의 동지들과의 만남, 한 아들을 두고 애정을 확인받으려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엄마'의 사랑싸움을 촘촘하게 엮어나간다.

1950년대를 꼼꼼히 재현한 따스한 화면 속에서 존을 비롯한 인물들이 서로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이는 전기 영화로서 <존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가 공들인 인물의 디테일 덕이 크다.

영화는 존 레논의 이복동생인 줄리아 바드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했는데, 존 레논을 포함해 이모 미미, 엄마 줄리아를 가장 가까이서 바라봤을 원작자의 섬세한 인물 묘사가 배우들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영화는 '두 엄마' 미미와 줄리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의 심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차이코스프키의 단아한 클래식을 사랑하는 보수적인 이모와 로큰롤의 비트에 몸을 흔들어대는 자유분방한 엄마의 '음악적 DNA'는 존 레논의 음악세계를 완성하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두 엄마' 만큼이나 존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기대했던 대로 폴 매카트니(토마스 생스터)다. 기껏 동네 밴드에서 엄마 줄리아에게 배운 밴조를 튕기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던 존 앞에서 폴은 놀라운 기타 연주를 선보인다. 존과 폴이 함께하는 장면들은 분명 비틀즈 팬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순간일 것이다.

천재가 천재를 만났을 때의 묘한 긴장감과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진 또래에 대한 질투, 그리고 평생의 동료를 만난 희열이 뒤엉키는 장면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 사람의 미래-질투와 애정이 공존하는-를 떠올리게 만든다.

힘주어 세워 올린 '앨비스 헤어'와 사각 뿔테 안경, 촌스러운 체크 셔츠로 치장한 '날라리 존'은 <킥 애스>의 '얼치기 슈퍼히어로'를 통해 국내관객에게 얼굴을 알린 아론 존슨이 연기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가지 단발머리'의 존, 혹은 '예수님 헤어'의 존과 연결지으면 한없이 낯선 얼굴이지만,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존'을 만나는 신선함에선 합격점이다. 그는 이 역할을 위해 6개월간 밴조와 기타 연주,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 직접 영화 속에서 연주와 노래를 소화했는데, 공연 신에서 보듯 꽤 그럴 듯하다.

폴 매카트니 역의 배우가 낯설지 않다면, 아마 <러브 액츄얼리>를 봤기 때문. 조숙한 짝사랑으로 어른들을 울리고 웃겼던 바로 그 '애어른 악동' 토마스 생스터가 벌써 이렇게 자랐다.

영화는 어머니를 잃고 괴로워하던 존이 드디어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막을 내린다. 비틀즈의 명곡들이 즐비하게 쏟아질 1960년대를 포기하면서까지, 영화는 '전설이 될' 소년의 유년기에 집중한다.

감독의 단호한 선택 덕에 <존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는 다른 비틀즈 영화들과 확실히 다른 위치에 자리한다. 익히 알려질 대로 알려진, 마니아라면 외우고도 남을 '전설의 열매'보다는 곧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전설의 싹'을 보는 감흥이 남다르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