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가요의 명예회복[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말로 '동백아가씨' 下 2010 JHN 뮤직슬픈 정조를 살리며 현대적 편곡으로

재즈가수 말로의 스페셜 앨범 <동백아가씨>(지난주 기사 참조)는 전곡을 한국어 가사로 구성해 가장 한국적인 재즈 앨범이란 평가를 획득한 3집 <벚꽃 지다>와 4집 <지금, 너에게로> 이후 한국적 재즈 스탠더드를 찾아가는 음악여정이 본격화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녀는 전통가요가 담고 있는 슬픈 정조와 원곡의 원형질을 보존하면서도 박자와 화성에 변화를 주는 현대적인 편곡으로 전혀 새로운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동백 아가씨'는 4분의 5박자 변박으로, '서울야곡'은 차차차 리듬으로, '목포의 눈물'은 국악의 자진모리와 닮은 아프로큐반 리듬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 결과, 트로트 가요의 전매특허인 과도한 바이브레이션이나 꺾기의 통속적 질감은 사라지고 '절제의 미학'이라는 세대 초월적인 공감대를 획득했다.

말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통해 트로트부터 이태리 가곡까지 광범위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경험했다. 그녀가 전통가요에 재즈어법을 덧칠해 리메이크 작업에 시동을 건 것은 이미 1998년에 발표한 1집 을 통해서다.

그때 '봄날은 간다', '희망가', '이별의 종착역' 3곡에 이어 3집 '봄날은 간다'와 5집 '황성옛터'를 통해 자신의 향후 음악적 방향의 조타를 놓지 않았다. 버클리 음대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인 그녀는 한국 스탠더드 재즈 작업의 소스로 자연스럽게 전통가요의 선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말로는 공연 레퍼토리로 전통가요를 재해석한 노래들을 빠트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예상을 뛰어넘는 관객의 반응을 접했지만 리메이크 앨범으로까지 제작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앨범제작을 요청하는 뜨거운 관객의 목소리를 접한 후 팬서비스 차원이라는 실리와 이제는 기억 저편에서 아른거리는 과거의 명곡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며칠 밤을 새워 편곡하고 단 이틀 만에 녹음을 마쳤다.

이번 앨범에 정규앨범인 6집이 아닌 K-Standard란 부제를 단 '스페셜 앨범'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다.

타이틀곡인 '동백아가씨'는 말로 특유의 절제와 여백의 밀고 당기기를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기쁜 노래를 불러도 슬프게 들리는 목소리를 타고 났다"는 그녀의 허스키보컬은 이 노래에 원곡에서 경험하지 못한 쓸쓸함과 서늘함까지 담아냈다.

이에 대해 말로는 "내 목소리는 기쁨을 돋우기보다는 슬픔을 어루만지는 쪽이다. 한 마디로 팔자가 센 것"이라고 말한다. 전곡 편곡과 프로듀싱 과정을 통해 가장 힘들었던 곡은 '고향초'와 '목포의 눈물'이고 가장 신경 쓴 곡은 '서울 야곡'이라고 한다.

멜로디가 단순하면서도 신파적인 '고향초'는 놀라운 재즈어법으로 거듭났지만 '목포의 눈물'은 뭔가 임팩트가 허전한 느낌이 있다. 역시나 그녀 역시 기회가 되면 다시 편곡하고 싶은 곡이라 한다.

현인의 명곡 '서울 야곡'은 원곡의 탱고 질감을 더욱 선명하게 하는 보사노바 편곡으로 이 앨범의 필청 트랙이 되었다. 또한 민경인의 날렵한 피아노 선율로 경쾌함이 느껴지는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와 음산한 분위기의 인트로가 청자의 집중을 불러오는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도 완벽하게 새로운 노래로 탄생했다.

전제덕의 하모니카가 가슴을 울리는 '하얀 나비'와 '구월의 노래' 그리고 박주원의 놀라운 기타 톤과 서영도의 베이스를 통해 절정의 슬픈 정조를 구현한 '개여울'은 눈물이 찔끔 나는 감동을 안겨주고 자신의 아카펠라를 기막히게 덧칠한 '산유화' 또한 청자의 귀와 마음을 잡아끄는 주옥 같은 트랙들이다.

과거의 전통가요 중엔 시적인 노랫말과 멜로디를 갖춘 고품격의 노래가 무수하다. 지금의 성인가요는 경쟁적으로 통속적인 가사와 구태의연한 멜로디의 반복을 통해 장르의 저질화를 자초했다. 그래서 말로의 이번 작업은 단순히 '가요의 재즈화'를 넘어 한국 전통가요의 명예회복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 같다.

이제 그녀는 한국대중음악사를 수놓은 박춘석, 길옥윤, 이봉조 등 거장 작곡가와 남인수, 이미자, 김정호 등 거대한 족적을 남긴 가수들의 명곡을 선별해 재즈로 표현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