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21세기는 가히 '용병'의 시대다. 스포츠도, 전쟁도, 심지어 '테러와의 전쟁'까지도 용병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경찰이 치안을 유지하고, 군인이 나라를 지키던 시대는 가버린 것일까.

용병의 산업화와 대중화는 '이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인식이 확산됨으로써 더욱 격화되었다. 전쟁에서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만한 위대한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먹고 먹히는 아귀다툼만이 남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점점 '싸울 명분'도 '지킬 명분'도 잃어간다. 그리고 일상 자체가 전쟁이 되어간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영화 , , <부당거래>, , <추격자> 등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저마다의 삶이라는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21세기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증언한다.

영화 의 주인공 태식(원빈)의 유일한 친구는 옆집 소녀 소미다.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과 소미 외엔 어떤 '사회적 관계'도 맺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태식. 전직 특수요원이었던 태식은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한날한시에 잃고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마더>
태식과 소미는 영화 <레옹>의 주인공들처럼, 서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미 엄마가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소미와 함께 실종되고, 태식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연고자', 소미를 찾기 위해 몇 년 만에 무기를 든다. 실어증에 빠졌던 그가 3년 만에 동료에게 꺼낸 첫 마디는 '총 좀 구해줘'였다.

소미 엄마는 온몸의 장기가 다 파헤쳐진 채 이미 살해당했고, 이 사실을 모르는 소미는 '개미굴'이라 불리는 아동노동 착취현장에 납치되어 엄마와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소미를 찾고, 소미 엄마를 죽였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장기를 불법으로 적출한 살인범들을 '혼자 힘으로' 소탕한 아저씨, 태식. 그는 아무도 소미를 제대로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소미에게 마지막 '보호자'가 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암담하다.

"내일만 보고 사는 놈들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태식은 소미와 함께 할 수 있는 '오늘'만을 살기 위해, '내일'을 버렸다. 그가 소미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물론 이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는 그를 살아있게 한 마지막 이유, 소미를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린다.

그의 힘으로 지켜줄 수 없었던 아내와 아기처럼 소미를 저 세상으로 보낼 수 없었기에. 태식은 범죄조직과 경찰 양쪽의 추격을 받으며 소미를 살려내고, 관객은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는 그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감정이입하게 된다.

<의형제>
그가 세상을 믿을 수 없는 이유에, 차라리 혼자 싸울 수밖에 없는 그의 고독한 선택에, 관객 또한 절실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영화 는 거대한 조직의 일원이었던 두 남자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다 결국 조직으로부터 이탈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혼자'가 됨으로써 진정한 소통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국정원 요원 이한규(송강호)와 남파 공작원 송지원(강동원). 이한규는 희대의 베테랑 간첩 '그림자'를 잡지 못한 채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국정원에서 파면당하고, 지원은 '그림자'는 물론 북한 당국에도 배신자로 낙인 찍혀 '생계형 간첩'으로 전락한다.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도 조직의 의무를 잊지 못하던 두 사람은, 욕망보다 책임을 중시하고 이득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한규는 여전히 송지원을 통해 그림자를 잡으려 하지만, 송지원은 이한규의 정체를 모른 채 이한규의 '사람 찾기 대행 산업'의 고용인이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총을 겨누는 거대한 조직을 대변하는 '적'과 '적'으로 만났지만, 조직에서 버려진 자신들의 운명이 서로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용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충성할 만한 바람직한 조직도, 의지할 만한 든든한 대의명분도 없는 세상에서 두 사람은 오롯이 '혼자'가 되기 위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이한규의 진짜 싸움은 자신을 쫓아낸 국정원의 오해를 풀고 그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는 '자아'를 되찾는 것이었고, 송지원의 진짜 싸움은 자신 때문에 고통받고 있을 가족을 구해내고 누구에게도 '배신'하지 않는 '오롯한 자아'를 찾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자아를 찾아주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 또한 순탄치는 않다. 지원은 남한에서의 삭막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제3국인 영국으로 가고, 이한규는 자신의 '태스크 포스'를 힘겹게 경영하며 또 하나의 '생존이라는 전쟁'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는 '엄마의 눈'에 비친 '무고한'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한 어머니의 지난한 투쟁을 그렸다. 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 도준(원빈)과 단 둘이 사는 엄마(김혜자)는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좀 모자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

변호사는 돈만 밝히고, 경찰은 만만한 혐의자 도준을 범인으로 확정지음으로써 서둘러 사건을 종결지으려 하고, 도준의 유일한 친구조차 도준을 돕지 않는다. 엄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러가며 황폐한 세상과 맞서지만, 그녀가 아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엄마조차 없는, 또 하나의 버려진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뿐이었다.

처럼 특수 요원의 액션을 쓸 수도 없고, <부당거래>의 남자주인공들처럼 각종 '거래'를 추진할 수 있는 회심의 카드도 없는, 그저 아무런 힘도 없는 '엄마'는 그렇게 아들을 지키지만 아들의 배신 앞에서 결국 광기에 사로잡히고 만다.

철석 같이 믿었던 아들은 바로 끔찍한 여고생 살인 사건의 범인이었고, 아들은 어머니를 속이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의외의 '지능범'이었던 것이다.

대중문화 컨텐츠 속에서 '혼자 싸우는 사람들'의 쓸쓸한 자화상이 늘어가고 있다. 이 모든 '혼자만의 전투'를 그린 영화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대의명분이 사라져가는 세상, 타인의 순수한 호의를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집단적 자화상이 아닐까.

사회의 보호망이 점점 약해지고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환상이 사라지면서, 이 냉혹한 사회에서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극대화되고 있는 징조가 아닐까.

"아무도 믿지 마…엄마가 구해줄게…." 영화 의 광고 카피는 이제 자신을 낳아준 엄마밖에는 믿을 수 없는 세계의 삭막함을 대변한다. 21세기 대중문화 속의 한국인은 이제 스스로의 삶을 향해 쓸쓸한 '용병'이 되어가고 있다.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