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적인 서사 작정한 듯 걷어내고, 인물 자체가 담고 있는 이야기 끄집어내

드디어 나홍진 감독의 신작 [황해]가 베일을 벗었다. 나홍진 감독의 김윤석, 하정우의 조합이라는 점,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관객은 [추격자] 업그레이드 버전의 속편이나 스핀오프 쯤을 기대했다.

먼저 고백하건대 많은 관객이 그러하듯 나 역시 [추격자]를 기준으로 [황해]를 기대했다. 말 그대로 '기대'.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가 아니라 "얼마나 대단할 것인지 떨리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황해]를 보았다. 이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아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황해]는 [추격자]가 아니다.

[황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추격자]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많은 부분 [추격자]에서 생의 양분을 얻었기 때문이다.

처음 [추격자]가 개봉했을 때, 이처럼 뜨겁고 끈적거리고 숨을 턱까지 차게 만드는 '고된' 스릴러가 그해 박스오피스를 점령하게 될 거라곤 아무도 예상 못했다. 그건 주연을 맡은 김윤석, 하정우를 비롯 영화를 만든 나홍진 감독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김윤석은 "<추격자>를 찍고 나서 우리끼리 관객 200만 명만 들어도, 엎드려 절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평단도 재미와 완성도 모두를 만족시켰다고 박수를 보냈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제약을 딛고 570만 명의 관객이 <추격자>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줄은 몰랐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단순히 '흥행에 성공한 한 편의 영화' 보다 의미가 크다. 일단 <추격자>를 통해 "한국에서 스릴러는 안 된다"던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그 뒤 한국 영화계는 좀 너무하다 싶을 만큼 스릴러 제작에 열을 올렸고, 비슷한 소재의 스릴러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추격자>를 넘을 만 한 건 없었다. 올해 초 <아저씨>가 비슷한 제약을 넘어 흥행작 반열에 올랐지만, "넘었다"는 수식을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 인터뷰에서 "흥행은 감독이 감히 언급할 부분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추격자>가 제작에 들어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이야기하면서, 만약 <추격자>가 평단의 호평 속에서도 흥행에 실패하면 앞으로 한국에서 '스릴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다시 말해, <황해>는 <추격자>의 성공이 가져다 준 기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에 서로를 "평생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갈 동료"라고 부르는 나홍진 감독과 배우 김윤석, 하정우의 인연이 계속된 영화이기도 하다. <추격자>가 없었다면 <황해>도 없었다.

나홍진 감독의 입장에서 <추격자>는 오래 고생해서 낳았지만 뒷바라지도 잘 못 해줬는데 알아서 잘 큰 훌륭한 자식이다. 동시에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들을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벽이기도 하다. 나홍진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 든 기준은 <추격자>가 될 것이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제 <황해>로 돌아오자. <황해>는 대 놓고 <추격자>를 연상시키는 영화다. 감독과 주연배우가 같고,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추격전이 큰 줄기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어쩌면 이토록 불리한 상황에서 오히려 반전에 성공했다.

<황해>를 보내는 내내 <추격자>의 어떤 장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 둘은 아예 다른 세상에 속한 영화다.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건, [황해]는 훨씬 더 독하고 강렬하다.

<추격자>를 보며 독하고 뜨겁고 강렬하다고 했지만, <황해>와 비교하면 <추격자>는 쫄깃한 캐러멜을 씹는 기분에 비유할 수 있다. 반면 <황해>는 모래를 한 숟가락 푹 퍼서 씹어 삼키는 느낌이다.

<황해>는 검은 화면에 흰 글씨를 무심하게 툭 얹은 것처럼 단순한 막으로 영화를 4등분 한다. 이미 막을 통해 영화를 분절했다는 건, <추격자>처럼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의도가 없음을 의미한다. 대신 감독은 지독한 현실을 스크린에 턱 널어 둔다. 그 현실은 보는 것만으로 목구멍이 까슬하도록 메말랐고, 눈 둘 데 없이 썩어 문드러졌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어느 날 면가(김윤석)라는 인물에게 살인청부를 제안 받는다. 한국으로 일하러 떠난 아내의 비자를 만들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6만 위안(한화로 1천만 원)의 빚을 진 구남은 고민 끝에 면가의 제안을 수락한다. 빚도 빚이지만, 구남은 한국으로 떠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아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다들 "마누라 바람났다"고 단정 짓지만, 구남은 믿고 싶지 않다. 결국 황해를 건너 한국 땅을 밟았지만 일이 꼬여버렸다. 구남이 죽여야 할 타깃을 다른 놈들이 죽여 버렸다. 거의 다 찾은 아내는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고, 수사망은 구남의 목을 조여 온다. 돌아가는 배편을 약속했던 면가와는 연락이 끊겼다.

구남이 황해를 건너야했던 이유는 사라졌다. 한 편, 구남을 한국으로 보낸 면가가 황해를 넘어온다. 누군가 구남을 없애는 조건으로 거액의 보수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면가는 허허 웃으며 먹이를 따라 황해를 넘어온다. 구남을 없애기 위해 달리는 면가 뒤에 또 다른 사냥꾼이 따라 붙는다.

1천 만 원이면 사람을 사서 다름 사람의 목숨을 거둘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세상. <황해>는 이 집단 광기를 구남의 내레이션을 통해 '개병'이라고 표현한다. 저들은 스스로 누군가를 쫓는 '사냥꾼'이라 믿고 싶겠지만, 그저 '개병'에 걸려 미쳐 날뛰는 사냥개들일 뿐이다.

누가 누굴 쫓는단 말인가. 그저 다들 제 목숨 하나 살고 보겠다고 버둥대는 야생에서 '추격' 따윈 배부른 소리였다. [황해]는 작위적인 서사를 작정한 듯 걷어내고, 인물 자체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는 뜨겁고 독하고 강하고 슬프다. 물론 <추격자>가 더 좋은 관객도, <황해>가 더 좋은 관객도 있겠지만, 그건 취향의 문제일 뿐 완성도의 문제는 아닌 듯 싶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