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뉴욕에 나타난 영구, 빛나는 슬랩스틱, 폭발력은 2% 부족

2010년의 마지막 주, 극장가의 주인공은 '해리포터' 3인방도, '황해' 3인방도 아닌 영구다.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가 개봉과 동시에 예매율 30%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냉큼 올라섰다.

이미 <라스트 갓파더>의 예고편을 접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결과다. '영구의 귀환'을 알리는 예고편이 공개되면서부터 관심이 폭주했고, <디 워> 때와는 달리 심형래 감독은 여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각종 매체의 인터뷰로 영화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심형래 감독의 자신감은 캐릭터에서 기인한다. 그 자신을 코미디언의 전설로 자리매김한 '영구'. <디 워>에선 감독과 각본자, 제작자를 맡으며 화면 뒤에 섰던 그는 <라스트 갓파더>에서 분신 같은 캐릭터 '영구'를 연기하며 스크린 위에 우뚝 섰다.

아니 스크린 위에서 쉴 새 없이 '자빠진다'. 짧은 예고편만으로도 많은 관객들은 <라스트 갓파더>가 추구하는 바를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1980년대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호령했던, 동네 마을회관을 들썩이게 했던(비공식 박스오피스 기록으로 따지자면 개봉 당시 독보적인 흥행 1위를 기록했던) '영구 무비'의 부활이다.

놀랍게도 심형래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미국 배우들을 모아 놓고 1980년대 TV 코미디 쇼에서 골백번도 더 봤던 '그 슬랩스틱'을 재현하고 있었다. 더 놀랍게도 그 슬랩스틱의 합은 2010년 지금에도 충분히 관객을 웃길 만큼 맛깔스러웠다.

예고편에서 보았던 딱 그만큼의 슬랩스틱만으로도 영화 관람료가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스트 갓파더>는 솔직한 영화다. 숨기거나 눙치거나 과대포장한 부분이 없다. 예고편이 기대하게 만들었던, 꼭 그만큼의 웃음을 선사한다.

<라스트 갓파더>의 이야기는 1950년대 뉴욕에서 시작한다. 마피아 대부 돈 카리니(하비 케이틀)는 어느 날 은퇴를 결심하고 조직원들에게 충격 고백을 한다.

상대파에게 쫓기던 그는 한국으로 숨어들었고, 그 곳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나 아들을 낳았다. 하나뿐인 혈육을 지금까지 방치했던 미안함을 갚기 위해, 그에게 조직을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아들'에게 조직을 맡길 수 없었던 돈 카리니는 조직의 '넘버 2' 토니 Ⅴ(마이크 리스폴리)에게 아들의 교육을 부탁한다.

보스가 은퇴하면 자동적으로 조직을 맡게 될 거라 믿었던 토니Ⅴ는 일단 보스의 명에 따른다. 자, 이제 그들 앞에 숨어있던 '황태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기름을 발라넘긴 8대2의 단정한 가리마, 대책 없는 배바지, 가장 잘하는 영어는 '오! 케이' 뿐인 '황태자'의 이름은 '영구'(심형래)다.

<라스트 갓파더>의 줄거리를 처음 들었던 것은 심형래 감독이 <디 워>를 개봉한 직후였다. 화제의 영화 <디 워>가 관객 수 800만 명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함과 동시에 <디 워>를 둘러싼 다소 불필요한 논쟁이 가열차게 진행되던 시기 심형래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차기작의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역시 할리우드에서 제작할 예정이며, 한국 관객뿐 아니라 세계 관객들도 능히 알만한 유명 할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해 <대부>를 패러디한 '영구 무비'를 만들겠다는 심형래 감독의 '계획'은 그 자체로 '코믹 판타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심형래 감독은 3년 만에 '판타지'를 실현시켰다. 우리는 전설의 하비 케이틀과 <킥 애스: 영웅의 탄생>의 마이클 리스폴리,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의 조셀린 도나휴가 어렵사리 '영구'를 발음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영구'와 '할리우드'의 만남. 누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심형래 감독의 꿈이 현실화된 것 자체가 <라스트 갓파더>에 대한 신뢰의 첫 번째 근거라면 두 번째 신뢰의 근거는 '영구'라는 한국 코미디계의 전설적인 캐릭터에 있다.

짧은 호흡의 콩트에서만큼 그 위력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라스트 갓파더>에서 영구의 슬랩스틱은 여전히 빛난다. 앞서 말했다시피 영구의 슬랩스틱은 골백번을 봐도 여전히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는 심형래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강조한 바 있는 "맛있게 맞는 호흡"에서 기인한다. <라스트 갓파더>는 끊임없이 '맛있게 맞고, 맛있게 넘어지는' 슬랩스틱이 부각될 수 있도록 고심해서 짠 동선의 흐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라스트 갓파더>가 심형래 감독의 전작 <디 워>와 유사해보이면서도 발전 혹은 진화했다고 평가할 만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 <디 워>와 <라스트 갓파더>는 둘 다 심형래 감독이 "할리우드에 절대 뒤지지 않는" 능력을 선보이기 위해 고안된 무대다.

<디 워>의 능력이 CG 였다면, <라스트 갓파더>의 능력은 '영구'라는 캐릭터다. CG만 빛났던 <디 워>에 비해, 캐릭터를 빛나게 하기 위해 세심하게 동선을 짜고, 에피소드를 엮고, CG로 이야기를 위한 시대를 그럴듯하게 재현한 <라스트 갓파더>가 훨씬 더 영화적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평면적인 이야기, 도식적인 구조와 뻔한 결말, 영구를 제외한 캐릭터의 생기가 부족한 점 등을 꼽을 수도 있겠지만, <라스트 갓파더>의 영화표를 예매하면서 기대했던 바가 아니므로 넘어가자.

가장 아쉬운 점은 '영구'의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그저 '할리우드 가족영화'의 선한 주인공으로 남기는 것에 만족했다는 점이다. 영구의 슬랩스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슬랩스틱의 극한까지 치달았다면 러닝타임 중 한번쯤은 입꼬리에 걸려있던 웃음이 속 시원하게 터져나왔을 텐데, 끝내 웃음은 입꼬리를 맴돌다 말았다.

심형래 감독은 <라스트 갓파더>의 인터뷰 중 또 다시 차기작에 대해 언급했다. "할리우드에서 영구를 서부로 보내면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재미있을 것 같다." 3년 쯤 뒤엔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서부를 달리는 영구를 볼 수 있으려나. 그때는 조금 더 크게 웃을 수 있길. 그리고 내 생애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로 기억되는 <영구와 땡칠이>의 "영구 없~다!"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길.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