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달한 성격, 시원한 창법 70년대 풍미[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방주연 '당신의 마음' 1972년 오아시스레코드어릴 적 추억과 사형수들의 마음 모티프 삼은 노래 '대히트'

대중가요의 마법 같은 기능은 무수하다. 그 중 상처받거나 삶의 고단함에 지친 대중의 영혼을 위로하는 치유의 기능은 으뜸일 것이다.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고 좋았던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기능 또한 대중가요의 중요한 미덕이다.

누구에게나 기억 저 편에 아름다운 수채화로 채색된 어린 시절의 풍경은 돌아가고픈 시공간이다. 치열하게 삶의 여정을 걷다보면 세상살이에 지치거나 누군가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에 즐겨들었던 노래들은 어김없이 그 시절로 인도하는 블랙홀의 마력을 발휘한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방주연의 '당신의 마음'은 이 같은 대중가요의 미덕을 입증하는 명곡이다. 특히 바닷가 하얀 백사장에서 잊지 못할 사랑과 이별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더욱 막강한 마법을 발휘하며 사랑받았던 노래다.

이수미, 정훈희 등과 치열한 인기경쟁을 벌였던 방주연(본명 방일매)은 활달한 성격에다 시원한 창법으로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가수였다. 데뷔 초기 트롯으로 시작된 그녀의 음악 여정은 포크가수들이 기세를 올렸던 70년대에 포크 팝과 트롯을 병행하는 활동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72년 같은 오아시스 전속가수였던 방주연과 이수미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2월에 이수미가 '여고시절'로 치고 나가자 4월에는 방주연이 '당신의 마음'으로 대히트를 기록하며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이후 방주연은 '자주색 가방', '기다리게 해놓고', TBC 드라마 '연화'의 연타석 히트퍼레이드로 최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애틋한 가사와 멜로디로 대중의 가슴을 파고든 방주연의 대표곡 '당신의 마음'은 작사가 김지평의 데뷔작이다. 전남 영암에서 성장한 그에겐 하얀 백사장에 대한 추억이 강렬했다고 한다. 민물을 밀고 올라왔던 바닷물이 빠지면서 흰 공책의 여백처럼 하얗게 드러났던 영산강의 모래밭은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였다.

작사가로 데뷔하기 전 김지평은 사형수들의 상담을 담당했던 서울구치소 교도관이었다. 삶이 예정된 사형수들과의 교감을 통해 그는 삶의 허무와 지난날의 추억을 반추하는 안목을 키웠다.

언뜻 바닷가에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정서로 가득한 '당신의 마음'은 놀랍게도 속을 알 수 없는 사형수들의 마음이 모티브가 된 노래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듯, 사형수라 해도 모두 잔혹한 성품의 소유자는 아닐 것이다.

교도관으로 재직하며 어떻게 저런 사람이 살인을 했는지가 믿어지지 않았을 경우를 허다하게 경험했을 작사가 김지평은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속'이란 화두에 천착했고 자신과 대화를 나눴던 사형수들이 하나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인생의 허무를 느꼈을 것이다.

1971년 교도관 김지평은 작사가 정두수가 주도했던 <작사 교실>에 참여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사형수들과의 교감에서 체득한 감정을 '당신의 마음' 가사로 이끌어냈다.

1972년 작곡가 김학송이 멜로디를 붙여 담백하면서도 애절한 방주연의 노래로 발표된 '당신의 마음'은 당대의 청소년층과 여성들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시켰고 그 해 최대의 히트송으로 기록되었다.

가수 방주연은 정상의 인기를 획득했고 신인 작사가 김지평은 1973년 한국가요대상 작사부문 수상자로 등극했다. 예상치 못한 빅히트에 고무된 김지평은 3년 뒤 작사가로 전업을 했고 대중가요평론가로 활동을 병행했다. 그는 1985년 이진관의 히트곡 '인생은 미완성'으로 KBS가요대상은 물론 1986년 제5회 가요대상까지 수상했다.

1992년 KBS 제2라디오는 당대의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한경애의 '옛 시인의 노래'였고 2위는 설운도의 '원점', 3위는 백난아의 '찔레꽃', 4위는 김태희의 '소양강 처녀'였고 방주연의 '당신의 마음'은 여성들의 폭발적 지지로 5위에 랭크되었다.

오랜 기간 아마추어 가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곡으로 각광을 받았던 방주연의 '당신의 마음'은 나훈아, 딱따구리 앙상블, 최성수, 박강성, 김태정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음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