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운명, 출생의 비밀 등 차별화 시도 관심집중

'반짝반짝 빛나는' 제작발표회 현장
두 여자가 있다. 한 명은 부잣집 딸로 상위 10%의 삶을 영위하는 여자. 또 한 명은 가난한 부모 밑에서 온갖 일을 하며 찌들대로 찌든 삶을 사는 여자. 스물아홉 해를 이렇게 살아온 두 여자가 한 순간에 운명이 바뀐다. 부모도, 집도, 가족도. 그런데 이 모든 게 운명의 장난이다. 한 산부인과에서 간호사의 실수로 운명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제자리로 돌아온 두 여자의 삶으로부터 말이다. 수도 없이 '뒤바뀐 운명'과 '출생의 비밀' 타령을 하던 TV드라마가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뻔한 스토리가 유쾌해지다

"출생이 뒤바뀐 딸을 껴안은 엄마라...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막막하네요. 한번도 그런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연기 내공 40여 년의 배우 고두심의 말이다. 그녀가 말한 "한번도 해보지 못한 엄마" 역할이라는 게 무엇일까? 가난한 엄마의 딸이 부잣집의 딸로 지내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엄마는 그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고두심의 의문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다.

KBS '웃어라 동해야'
지난해 KBS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는 그 흔하디흔한 신데렐라 이야기를 그의 언니에 포커스를 맞추며 변화를 시도했다. 신데렐라가 아닌 그 언니의 입장에서 풀어낸 이야기였다. 뻔한 공식으로 흘러갔을 법한 드라마가 동화 속 시기와 질투로 똘똘 뭉친 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그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시청자들은 울고 웃었다.

이에 도전하듯 MBC는 새 주말극 <반짝반짝 빛나는>을 내세워 그 뻔한 방식을 탈피하려는 분위기다. 극의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과 뒤바뀐 운명을 초반부터 등장시킨 것이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탄탄대로를 걷다가 가난한 집의 딸로 밝혀지는 주인공 한정원(김현주 분)과 가난한 집의 딸로 자랐다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인생역전을 꿈꾸는 황금란(이유미 분)의 이야기는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선보는 자리에서 "뭘 상상했던 그 이상이길 바래요"라고 말하는 부잣집 외동딸 한정원과 "우리 엄마가 없는 살림에 내 뒷바라지까지 했는데"라며 사법고시를 패스한 남자친구에게 매달리는 황금란의 대사만 봐도 드라마의 분위기는 짐작된다. 여기에 딸의 바뀜을 알고 난 후 애끓는 모정과 가족의 갈등은 잔잔한 소스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구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2000년 KBS <가을동화>에서도 은서(송혜교 분)와 신혜(한채영 분)가 뒤바뀐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사춘기 소녀 시절, 그나마 일찍 제자리로 돌아갔던 것. <반짝반짝 빛나는> 속에선 각자 직장 생활을 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다가 역전의 순간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MBC '욕망의 불꽃'
더 흥미로운 것은 가난했던 황금란이 부잣집 딸로 돌아가면서 '악녀'가 되는 설정이다. 또 남부러울 것이 없던 한정원은 난데없이 '캔디'가 되어 버린다. 인생이 바뀐 가운데 성공을 찾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제작진도 자칫 '신파'로 흘러갈 수 있는 스토리를 유쾌하고 발랄한 분위기로 잡아가기 위해 공을 들였다.

더욱이 연출가인 노도철 PD의 참여도 빠져서는 안 될 대목이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와 <소울메이트> 등을 만든 연출가다. 예능PD로서 시트콤에서 인정을 받으며 <종합병원2>에 이어 <반짝반짝 빛나는>의 메가폰을 잡은 것. 진부한 설정을 경쾌하고 따뜻하게 풀어갈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노도철 PD는 "출생의 비밀은 진부할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톡톡 튀는 젊은 감각으로 표현해 기존 드라마보다 속도감이나 전개에서 차별화를 두겠다"며 "예능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경력을 살려 소재의 진부함을 신선하고 유쾌하며 즐겁게 볼 수 있는 요소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막장 코드도 변해야 산다

'한 마디로 말해 유치하고 설정이 제멋대로인, 특히 지나친 노출이나 기존의 드라마 법칙이라고 불리는 진부하고 통속적인 설정들이 하나의 드라마 안에 모두 있거나 말이 되지 않는 억지설정을 한 경우에 이러한 오명을 안게 된다.'

<2010 트렌드 키워드>(미래의 창)에 적힌 '막장 드라마'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 설정이 진부하고 억지스러울수록 더 높은 시청률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한 주간(1월 31일~2월 6일) 방영된 드라마 중 KBS <웃어라 동해야>와 MBC <욕망의 불꽃>은 눈에 띄는 성적을 보이고 있다. <웃어라 동해야>는 29.1%(이하 AGB닐슨미디어리서치)로 지상파 방송 3사 중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욕망의 불꽃>은 19.8%로 4위다. 두 드라마는 '막장 코드'를 지녔기에 더 흥미롭다.

<웃어라 동해야>는 미국 입양아이자 미혼모 안나(도지원 분)에게 태어난 동해(지창욱 분)가 한국으로 건너와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다. 그런데 동해가 요리사로 일하는 호텔 사장의 남편이자 방송국의 아나운서 국장이 바로 동해가 찾는 아버지다.

또 자신과 6년 동안 연인 사이였던 여자가 배신하고 결혼한 집안의 시아버지가 바로 그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출발한 이 드라마는 최근 그 비밀이 풀리면서 더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핵심은 동해가 아니다. 6년 동안 그와 사귀었다가 더 좋은 조건의 남자와 결혼한 여자, 윤새와(박정아 분)가 그 중심에 있다. 윤새와는 결국 두 형제 사이에서 '사랑 놀음'을 한 여자라는 설정이다. 이를 숨기기 위해 온갖 계략을 쓰고 있으니, 시청자들은 동해의 가족상봉보다는 윤새와의 행보에 더 관심이 많다. '윤새와 카드'는 사랑과 배신 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색다른 막장 드라마의 관전 코드를 만들어냈다.

<욕망의 불꽃>은 재벌가의 막장 이야기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막장의 대표드라마로 꼽히는 SBS <조강지처클럽>이나 <아내의 유혹>은 서민들의 불륜과 복수, 배신, 사랑 등을 복합적으로 그려냈다. <욕망의 불꽃>에도 불륜과 배신, 복수 등이 등장하지만 재벌가를 배경으로 탐욕스러운 욕망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아들의 존재, 사돈 간의 사랑, 버린 딸이 며느리가 되는 설정 등은 막장 드라마의 지저분한 요소들이 버무려 있는 것. 그러나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인지라 뻔한 공식을 알면서도 결과에 대한 궁금증은 어쩔 수 없다.

KBS의 한 드라마 PD는 "소위 막장 드라마가 뻔한 결말을 낸다고 해도 일단 말초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시청자들의 대리만족 심리를 자극한다"며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없다. 그 안에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만 시청자들을 TV앞에 앉힐 수 있는 세상이다"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