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의 흥행적 요소와 한국적 정서의 결합 영토 확장

SBS <싸인>
"암행어사출두요!~" 1981년 컬러TV 시대가 도래하면서 안방극장에는 '권선징악'이라는 형태의 수사물 '사극'이 등장했다. KBS <포도대장>과 MBC <암행어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포도대장>은 배우 김성원, 백일섭 등의 배우들이 출연해 포교들의 수사활동을 보여주며 서민들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던 '사회 정의 구현' 드라마였다. <암행어사>도 마찬가지. 당시 멜로 배우였던 이정길이 암행어사로 등장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주간드라마였던 <암행어사>는 매주 1회씩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스릴, 액션, 멜로 등을 통합한 블록 버스터급 사극이었다. <대장금>, <상도>, <이산>, <동이> 등을 연출한 이병훈PD의 작품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암행어사>는 양반집 하인이 귀신에 홀려 죽음을 당하는 사건, 한 주막의 여주인을 둘러싼 기이한 사건, 마을 사또의 부정부패 사건 등 매회 다른 에피소드로 볼거리를 제공하며 3년 여 동안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암행어사>가 시대극의 범죄 수사물을 이끌었다면 그 이전 흑백TV 시절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이다. 1971년부터 첫 전파를 탄 이후 18년간 880회를 방영하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아마 이때부터 우리의 정서에는 범죄 수사물의 재미와 감동이 각인되고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최근 그와 유사한 드라마들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우리는 왜 수사물을 좋아하는 걸까?

영화 <조선명탐정>
'CSI'처럼만 해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범죄 수사물은 시리즈."

지난 2000년 미국 채널 CBS를 통해 첫 방영된 는 그 이듬해 국내 케이블 채널에 첫 발을 들였다. 케이블 채널 OCN이 시리즈를 방송한 지 어느덧 10년. 10년 동안 케이블 범죄 수사물 시리즈 중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는 이는 없다.

최근 는 1월 초 '라스베이거스' 시즌 11을 시작으로, 2월 14일에는 '마이애미' 시즌 9를 첫 방송했다. 역시 그 결과는 케이블 채널 동시간대 시청률 1위였다. 평균 시청률 1.75%(이하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최고 시청률이 2.23%. '라스베이거스' 시즌 11도 1월 초 2주 연속 시청률 1위를 했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뒤이어 '뉴욕' 시즌 7도 방영을 앞두고 있어 그 인기를 고스란히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가 10년 동안 꾸준히 케이블의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를 잡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를 방영해온 OCN측은 흥행코드 네 가지를 꼽는다. 스토리의 긴장감, 살아있는 캐릭터, 화려한 화면과 스케일, 그리고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다.

MBC <수사반장>
고정화되어 있지 않은 시청자들의 구미를 끌어당길 만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특히 CG효과까지 불어넣으며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보여준다. 심지어 정확한 증거물에 따른 과학적 수사와 함께 각 캐릭터들의 미묘한 심리묘사 하나까지도 잡아내는 건 CSI만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쯤 되자 국내 드라마 제작사나 방송사들이 'CSI'급 수사물을 기획하는 데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현재 방영 중인 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최근 <싸인>은 시청률 20%를 넘기며 명실공히 '잘 만들어진 수사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캐릭터 연기가 뒷받침하고 있다. CSI만큼 정밀한 증거 감식은 차지하더라도 법의학자들의 소름 끼치는 연기가 일품이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섬뜩할 정도로 진지하다. 이런 진지함이 극 초반에는 반감의 요소로 느껴졌을 정도였다. 시리즈의 흥행요소인 극의 긴장감과 캐릭터 라인, 에피소드의 신선함 등은 거의 따라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OCN의 한 관계자는 "범죄 수사물은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오후 10~12시 프라임 시간대로 편성을 잡는 이유"라며 "국내 일반 드라마들과 달리 매회 색다른 에피소드가 있어, 연이어 시청하지 않으면 미니시리즈나 일일극보다 매력적이다"고 설명했다.

OCN <신의 퀴즈>
범죄 수사물, 영역을 확장하다

"와 <하우스(HOUSE)>가 합쳐졌다"

지난해 10월 OCN은 '국내 최초 메디컬 범죄 수사극'이라는 이름으로 <신의 퀴즈>를 선보였다. 법의관 사무소의 의사들이 미궁에 빠진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며 사건의 비밀을 밝히는 수사과정은 미드 의 화려함과 <하우스>의 전문성을 결합해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미드의 성공코드에 한국적인 스토리를 버무린 작품"이 될 것이라며 제작진의 각오는 대단했다. 국내엔 생소한 법의학팀이 해결하는 사건의 분석력은 신선했고, 10부작으로 완성된 에피소드는 최종회가 2.65%로 마감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시즌 2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26년 전 <암행어사>가 권선징악으로 사건을 해결했다면, 2007년 '조선판 CSI'를 내건 MBC드라마넷 <별순검>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과학수사를 펼치는 수사관들의 활약이 넘쳐났다.

시즌 3까지 방영되면서 조선 최초의 포르노그라피 사전, 테러인질극, 사이코패스 등 화려한 스케일과 동시에 한국적 권선징악 정서를 가미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더욱이 '별순검 마니마'층을 형성해 케이블 수사물의 승률을 높였다.

두 드라마는 현재 방영 중인 <싸인>과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전초전이었다는 게 흥미롭다. 시청자나 관객은 이미 <신의 퀴즈>나 <별순검>에 익숙해져 법의학이나 조선 수사물에 낯설어 하지 않았다. 와 비교되던 영상과 스케일은 한국적인 감성이 더해져 우리만의 수사물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미드 또한 의 수사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고스트 위스퍼러>, <본즈(BONES)>, <넘버스>, <클로즈 투 홈(나는 여검사다)>, <고스트 앤 크라임>, <몽크>, <프린지> 등 다양한 장르의 범죄수사물이 등장했다. 억울한 사연의 영혼을 통해 사건을 보거나, 시체의 뼈로 증거를 찾거나, 외계생명체의 기이한 사건을 마주하고, 수학적 분석력을 발휘한다. 모두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매개체다.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식의 수사극에서 다양한 장르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 영역이 확장될수록 사건 수사의 본질은 분명하다. 바로 인간을 중시하는, 인간을 위한 결론이다. 가 과학수사라고 해도 인간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라는 데에는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국내 범죄 수사물도 이런 점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드라마 속 캐릭터를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것은 물론이고 캐릭터가 가진 개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드라마 맛있게 읽기>의 저자인 정수연 교수는 시리즈를 "인간 중심의 수사극"이라고 말한다.

"차가운 기계와 냉철한 이성으로 분석하는 과학수사 안에 담긴 21세기 뜨거운 현대사회의 모습이 CSI 시리즈가 단순간 '볼거리'가 아닌 '인간 중심의 드라마'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드라마 속의 범죄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현실이 녹아 있고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뒤틀린 욕망이 그대로 드러났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