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나오자마자 전국에 '심수봉 열풍'[우리시대 명반ㆍ명곡] 심수봉 '그때 그 사람'下 (1978년)방송출연 금지… '사랑밖엔 난 몰라'가 정점

1979년 지구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은 심수봉은 대학가요제 본선에 함께 출전했지만 입상하지 못했던 '백팔번뇌'의 최현군과 함께 스필릿 음반을 발표했다.

타이틀 곡 '그때 그 사람' 외에도 2회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곡인 한양대 혼성듀엣 박광주, 최혜경의 '젊은 태양', 기성곡인 전영록의 '애심', 송창식의 '날이 갈수록', 윤연선의 '얼굴'을 리메이크해 총 5곡을 수록했다. 앨범이 나오자마자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들불처럼 일어난 심수봉 열풍은 전국을 강타했다. 모든 TV, 라디오의 가요프로그램은 심수봉 노래 일색이었다.

1979년은 심수봉에게 극과 극을 체험시킨 한 해였다. '그때 그사람'은 당대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이었던 MBC TV 금주의 인기가요와 TBC TV 가요 베스트7의 정상에 등극했다.

당시 한 대중매체의 대중가수 인기조사에서 그녀는 신인가수로는 이례적으로 당당히 4위에 올랐다. 지구레코드는 MBC 10대 가수상, TBC와 KBS 신인가수상을 휩쓸며 정상의 가수로 떠오른 심수봉에게 제미니 승용차를 보너스로 선물했을 정도다.

미완의 대기를 알아보지 못했던 신세기와 오아시스 레코드는 '대어를 놓쳤다'며 땅을 치며 묵혀두었던 '여자이니까' 등을 창고에서 꺼내 발매하는 얄팍한 상혼을 보였다.

하지만 세상을 뒤흔들었던 '10ㆍ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터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두 여인 중 한 명으로 밝혀진 그녀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신군부가 들어선 1980년 8월 30일. 3개의 TV와 5개 라디오 방송은 방송윤리위를 열어 심수봉을 위시해 남진, 옥희, 나훈아, 태진아, 정훈희, 이수미 등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거나 시청자에게 혐오감을 주어왔다'는 연예인 20여 명에 대해 방송출연 금지조치를 취했다.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심수봉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관심을 증폭시켰다.

심수봉은 1980년 11월에 개봉한 박호태 감독의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에 출연하며 재기를 꿈꿨다. 영화주제가는 물론 직접 가수로 출연한 이 영화는 화제의 중심이었던 심수봉 덕택으로 관객 5만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하고 홍콩으로까지 수출되었다.

하지만 1979년에 이미 만들었던 영화주제가 '순자의 가을'은 그녀의 컴백 의지를 무참히 꺾어버렸다. 노래 제목에 당시 '영부인의 이름이 나온다'는 이유로 금지조치가 내려지면서 그녀는 또다시 좌절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이었지만, 당시엔 대통령의 외모와 비슷한 남자배우도 한동안 방송출연 금지를 당했던 대중문화의 암흑기였다. 이 노래는 1983년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로 제목을 변경해 코미디언 출신 인기가수로 급부상했던 방미의 6집 타이틀곡으로 발표돼 빅히트가 터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984년이 돼서야 그녀의 방송 출연금지 조치는 해지되었다. 그해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를 다시 취입해 한을 푼 심수봉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시작으로 '당신은 누구시길래', '무궁화', '축제 이야기'로 연타석 히트퍼레이드를 펼쳤다.

1987년에 발표했던 불후의 명곡 '사랑밖엔 난 몰라'는 그녀의 음악 정점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불후의 명곡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듯 한의 정서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창작 트로트 곡들은 비로소 '심수봉류 트로트'라는 독창성을 획득했다.

심수봉은 '10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트로트 싱어송라이터 아티스트'다. '그때 그 사람'은 문병을 갔다 친구의 남자 친구가 기타를 쳐주는 모습을 스케치한 그녀의 창작곡이다.

지난 2010년 KBS TV '가요무대'는 방송 25주년을 맞아 방송문화연구소에 의뢰, 전국 20대 이상 시청자 7155명을 대상으로 '국민가요 100곡'에 대한 인기도를 설문조사했다.

그때 심수봉의 대표곡 '그때 그사람'은 '최고의 국민가요'로 선정되었다. 또한 70년대 인기곡 순위에서도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결핍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굴곡진 삶을 진솔하게 담은 애절한 그녀의 '그때 그사람'은 이제 사랑의 갈증에 공감하는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불후의 명곡으로 공인되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