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섬세한 심리표현과 백조·흑조 통해 인간의 양면성 효과적으로 전달

할리우드에서 '한 영화 한다'는 별들의 관심이 황금빛 대머리 조각상에게 쏠리는 시기다. 2월 27일 LA 코닥극장에서 개최되는 83회 아카데미 시상식 말이다.

보통 골든 글로브 시상식으로 시작해, 뉴욕, LA 등 각 지역 평론가 상, 제작사, 감독, 배우 길드의 최고영화상 시상 등 1월 말부터 이어지는 시상식 릴레이는 마치 '아카데미 예비선거'처럼 여겨질 만큼, 할리우드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의 권위는 남다르다.

과연 올해는 LA 코닥극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 오스카를 손에 들고 감격의 소감을 쏟아낼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리고 단상 아래서 애써 웃으며 박수를 쳐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물론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제 아카데미도 83회 쯤 나이를 먹다 보니 대략 시상 패턴이 드러난 것도 사실. '고상한 대중영화'를 원하는 아카데미의 취향 상 올해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자주연상, 여자주연상, 남자조연상, 여자조연상 등 주요 부문에 대해서는 "이미 수상자가 다 밝혀졌다"고 할 만큼 유력 후보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 중 한 명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에서 '백조와 흑조'의 양면성을 소름끼치게 묘사한 나탈리 포트먼이다.

<블랙 스완>은 아름다움과 완벽을 갈구하는 발레리나가 겪는 심리적 강박과 분열에 대한 이야기다. 니나(나탈리 포트먼)는 뉴욕의 발레단에 속해있는 발레리나. 아직 주역을 맡은 적은 없지만, 가능성을 인정받는 그녀에게 일생 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대표 레퍼토리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인 여왕백조 역 오디션을 보게 된 것. 어린 시절부터 딸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건 어머니의 과보호 아래 살아온 청순한 니나는 순수한 '백조'는 완벽하게 연기하지만, 파격적인 흑조는 영 서툴다.

발레단의 단장(뱅상 카셀)은 니나의 가능성을 보고 그녀 안의 흑조를 끄집어내기 위해 니나를 도발하고, 니나는 그의 도발을 받아들인다. 결국 '여왕백조' 역을 손에 넣지만, 니나의 심리적 분열이 시작된다.

등에서 흑조의 깃털이 자라는 것 같은 상처가 생기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니나. 게다가 새로 발레단에 들어온 신인이 니나 대신 흑조를 연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그녀의 신경증은 더욱 심해진다. 급기야 흑조의 격정적 감정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니나는 일탈을 감행한다. 드디어 시작된 '백조의 호수' 공연. 니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여왕백조'를 연기한다.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최고의 공연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보통의 감독이라면 가슴 찡한 한 편의 감동드라마를 만들었겠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그 안의 신경증에 주목했다.

발레 공연을 보는 관객은 발레리나들의 아름다운 몸동작에 열광하지만, 사실 '발레'는 고통의 춤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강수진의 못생긴 발'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바짝 세워 올린 발끝을 도약대 삼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발레리나들의 춤은 절대 하늘을 날 수 없는 새의 고통스러운 퍼덕임이다. 그들의 육체는 '아름다움'을 위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기에 누군가는 발레를 '고문의 춤'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을 매료시킨 건, 바로 그 고통이다. 여기에 '청순한 백조와 파격의 흑조'라는 1인 2역에 가까운 까다로운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 발레리나가 겪어야 하는 심리적 압박이 더해서 <블랙 스완>은 아름다운 심리 호러로 재구성된다.

결론적으로 그 모든 짐을 짊어진 건, 나탈리 포트먼이다. 과거 발레를 배웠던 그녀는 고난도의 발레 장면을 거의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고,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젊은 발레리나의 신경증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블랙 스완>의 완성도는 '아름다운 화면'을 향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집착과 '현실적인 연기'를 향한 나탈리 포트먼의 강박으로 인해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예고편을 보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니나의 불안과 신경증이 파격적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먼이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주인공에 등극하는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나탈리 포트먼의 연기 자체도 훌륭하지만, 그녀의 캐릭터가 '고상한 대중영화'를 원하는 아카데미의 취향에 꼭 맞아 떨어진 것도 중요한 이유다.

선댄스가 극찬한 <윈터스 본>의 제니퍼 로렌스가 도무지 열 일곱 살 소녀가 지을 수 없는 서슬 퍼런 무표정을 보여주긴 했지만, 아카데미는 아무리 출중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해도 생짜 신인에게 쉽게 오스카를 건네주진 않는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에서 레즈비언 역을 통해 연기 변신을 보여준 아네트 베닝의 수상을 점치는 시각도 있지만, 변신의 파괴력에 있어서는 신경증에 시달리는 아름다운 발레리나 나탈리 포트먼에게 밀린다는 것이 중평이다.

<레옹>의 그 당돌한 소녀가 이렇게 아름답게 자라 오스카를 거머쥐는 최고의 여배우로 성장했다는 감격은 나탈리 포트먼 자신뿐 아니라 그녀의 성장을 오랜 시간 지켜봤던 팬들에게도 꽤 감격스런 일이 될 듯. 똑똑한 여배우의 근사한 수상소감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국내에선 2월 24일 개봉했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