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들이 쓴 출간… 기성 사회와 교차점 모색
'호모'라는 부정적 단어로만 존재하던 이들이 현실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체현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최근 몇 년간 게이문화는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산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패션계를 이끌어온 게이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는 '미드'를 통해 자연스레 시청자의 인식 안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트렌드세터의 자격 기준에 '게이 친구'라는 항목이 등장하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일부 젊은 세대를 제외하면 게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탐탁지 않다. 지난해 한 보수단체가 일으킨 '게이 나오는 드라마 보면 게이 된다' 소동은 이 같은 사회 내부의 지체된 인식을 보여준다.
이는 지금의 대중문화에서 보이는 게이들이 단지 하나의 성적 기호로서 얕게 소비되는 양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 사회에서 게이는 여전히 종이나 화면 안에 머물 때만 용납되는 존재다. 물론 이를 주관하는 것은 이성애자들이다.
이성애자들의 이 같은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대개 게이들에 대한 무지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오해들을 만들어낸 것 역시 이성애자들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무지와 오해로 풀고 두 성적 커뮤니티가 공존할 수 있을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멤버들이 주축이 된 편집위원회는 2년간의 취재와 자료 조사, 회의를 통해 다양한 게이문화 상식들과 인권, 라이프 스타일을 망라하는 책을 만들었다. 편집위원회 관계자는 "상상과 짐작에 의해 왜곡된 모습으로 다루어지는 게이와 게이문화가 아니라 현실의 게이문화를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책은 처음부터 게이문화가 종로3가의 뒷골목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선언하며 기성사회와 교차점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게이문화에 대한 담론은 대개 '동성애의 역사와 오해'나 '성 소수자 제 몫 찾기' 등의 인권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 반면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이성애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즐기고 누려왔던 동성애적 예술과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 각 분야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책에 참여한 외부 필진들은 엄정화와 김추자의 노래를 한국의 게이 음악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왕년의 뮤지컬스타 주디 갈란드를 비롯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카일리 미노그, 마돈나 등을 '게이 아이콘'으로, 안소니 퀸을 영화사 최초의 '게이 카우보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들은 <퀴어 애즈 포크>나
하지만 무엇보다 <게이컬처홀릭>을 통해 편집진이 바라는 것은 이성애자들이 다양한 만큼 동성애자들도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다양성'에 대한 희망이다. '언론이 본 게이'를 역으로 해석한 '게이가 본 언론'에서는 언론이 그동안 게이들의 일면을 부각시켜 어떻게 왜곡시켰나를 잘 드러내준다.
화려하고 멋진 유명인사 게이도 있지만 현실세상에는 장애인 게이, 지방 거주 게이, 이주 외국인 게이, 그냥 못생긴 게이 등 커뮤니티 안에서도 소수자인 게이들이 더 많다.
편집진은 "대중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게이들의 모습은 또 하나의 전형성을 만들어내며 오히려 게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퍼뜨리고 있는 것 같다"며 "차이가 차별이 아닌 다양성으로 인식될 때 게이로서의 삶과 문화는 보다 풍성해질 것"이라고 제안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