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t si bon!"

이 말이 요즘 최고의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어로 '아주 좋다'는 뜻의 '세시봉'. 촌스러운 듯하지만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한 말이다.

요새 이 한 문장이 '추억'이나 '7080 문화'라는 의미를 대변하는 듯하다. 지난해 추석 특집으로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한 가수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이들은 1960년대 '세시봉'이라는 음악 살롱에서 청년문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통기타에 포크송을 부르던 이들이 2011년 대중을 사로잡았다. 60대라는 나이도 잊은 듯 노래면 노래, 입담이면 입담 등, 젊은 세대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세시봉'이다.

중년문화를 넘어 실버문화로의 확산

MBC '세시봉 콘서트'
세시봉 열풍의 주인공인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은 '세시봉 친구들 콘서트'로 전국 순회공연 중이다. 공연은 연일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TV의 덕을 보긴 했지만 그 파장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퍼뜨리고 있다.

특히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세시봉'을 검색하면 "세시봉 콘서트를 다녀와서", "세시봉 감동이었습니다" 등의 많은 글들이 블로그와 카페 등에서 읽힌다. 콘서트의 티켓을 급하게 구하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세시봉 친구들 콘서트'는 이미 창원, 부산, 대구의 공연을 끝냈고 청주, 의정부, 울산, 안양, 포항, 춘천, 고양, 서울, 서귀포, 김해, 원주, 전주 등의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들의 공연에 열광할까? '세시봉 신드롬'은 중년 문화의 또 다른 반향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60~70년대 문화를 즐겼던 현재 50대 이상 연령층이 젊은 세대에게 내주었던 문화 수용자로서의 자리를 되찾아 온 셈이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날 특집으로 방송됐던 <세시봉 콘서트>에서 객석을 차지했던 중·장년층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세시봉 멤버들의 노랫말에 눈시울을 적셨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감춰 두었던 감성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감정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었다. <놀러와>는 세시봉의 특집방송과 함께 스페셜, 재방송에서도 시청률 두자릿수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놀러와>의 신정수 PD는 세시봉의 성공적인 반응에 대해 "2~3년 전부터 고민했던 실버문화에 대한 고찰이 빛을 발산한 것"이라고 말했다.

KBS '콘서트 7080'
세시봉은 이 실버문화를 염두에 두었던 제작진의 놀라운 성과다. 이미 시청자층이 고령화된 현실에서 그들의 문화를 대변하고, 표출해줄 수 있는 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제작진은 이런 현상을 인정하고 중년문화를 넘어 실버문화를 채워주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세시봉을 섭외했다.

<놀러와>의 기획은 세시봉의 전국순회 공연을 만들어냈고, 세시봉 스페셜 음반을 상위권에 올려놓는 데 기여했다. 한 TV 프로그램이 음반 시장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신정수 PD는 "10~20대가 아이돌 문화를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다면,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는 중년문화나 실버문화를 즐길 만한 대상이 없었다"며 "세시봉 콘서트나 음반이 이들에게 소비할 수 있는 문화로 인식되면서 구매층으로까지 확대되는 현상을 낳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단순 복고문화의 부활이 아니라 실버문화층이 탄탄하게 구매력까지 갖추면서 그 영향력이 공연매진 행렬이나 음반의 판매량을 높인 것이라는 얘기다. 중장년층이 그간 얼마나 대중문화에 소외돼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시봉은 지난해 9월 소개된 이후 6개월 동안 열풍을 이어가며 대중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세시봉의 시작은 다른 가수들에게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 90년대 '노총각 4인방'으로 인기를 모았던 가수 이현우, 김현철, 윤상, 윤종신 등도 조심스레 프로젝트 앨범과 콘서트를 논의하게 됐다. 세시봉의 성공에 용기를 내어 대중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준비 중이다.

케이블 채널 '슈퍼스타 K' 시즌2 - 장재인
한 관계자는 "세시봉의 놀랄 만한 열풍은 다른 후배 가수들에게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40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온 선배들의 발자취와 다양한 음악적 세계를 보여준 실력에 감탄하고 있다"며 "이제 대중에게 새로운 문화의 수혈이 필요한 때다"고 말했다.

공연기획자 이기현 씨도 "7080 문화가 이어지려면 가창력 있고, 음악성 있는 가수들이 더 나와 공연해야 한다. 또 예전의 가수들이 용기를 내어 대중 앞에 서는 횟수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 감성에 물들다

"적극적인 문화 향유자들의 욕구가 통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케이블 채널 <슈퍼스타 K> 시즌 2는 통기타의 판매량을 증가시켰다. 장재인, 김지수, 강승윤 등이 손으로 전하는 생생한 기타의 선율은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다. 기타의 판매량이 올라갔으며, 10~30대 젊은 연령층에서 소비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또 한번 벌어졌다. 이번에는 60대 할아버지들의 반란이다.

"음악적 진정성이 대중을 움직였다." 60대 노가수들의 녹슬지 않은 기량과 감수성에 감탄한 가수 변진섭의 말이다. 40년의 세월이 지나도 포크송, 팝송, 트로트 등 장르를 넘나드는 수준급의 음악이 주는 기쁨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즐기는 TV 앞에서 색다른 경험을 맛보았다. 여기에 세시봉 멤버들의 진한 우정이 눈물샘을 자극하며 진정성 있는 음악을 들려줬다. 기타 하나로 우정을 나누던 그들의 모습은 음악 이상의 그 무엇을 전했다. '세시봉 친구들' 콘서트에 젊은이들이 모이고,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 세시봉의 음악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다.

이기현 씨는 "대중의 갈증을 제대로 풀어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이돌 시장이 부풀어 오르면서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즈음에 색다른 문화를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대중은 스스로 찾아가는 적극적인 문화 향유자들이다. 이들의 목마름이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음악이 아닌, 감성을 자극하고 스토리가 있고 추억이 있는 공연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됐다."

<놀러와> 제작진도 '세시봉 문화'라고 말한다. 세시봉을 계기로 부모와 자녀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의 향수와 그리움이 자녀 세대의 호기심으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을 하게끔 했다. 10대 아이돌의 문화와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문화가 공존하게 된 셈이다.

한 음반 제작자는 "좋은 노래와 음악을 따라가는 건 대중의 당연한 권리이자 진리다. 제작자로서 세시봉의 사례가 기분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다"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결국 대중매체의 다양한 문화의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곱씹는 경우가 됐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