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조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소월의 시'김정희 '개여울'上(1967년)"음반 발매 사실 몰랐다… 당시 4주간 라디오 인기가요 차트 정상"

과거 문학과 대중문화 사이에는 차별적 대중적 시각이 존재했다. 소위 품격이 다르다는 거였다. 오죽했으면 대중가요 가사로 사용된 시에 각종 가요 시상식에서 작사상을 주려 해도 수상을 거부하는 시인까지 생겨났겠는가.

요즘은 '시노래'라는 장르가 생겼을 만큼 시 노래의 개체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또한 시인들도 자신의 시가 가사로 사용되어지길 원할 만큼 대중음악에 대한 편견은 사라졌고 인식은 높아졌다.

그렇다면 한국대중음악사를 통틀어 가사로 가장 많이 애용된 시인은 누구일까? 단연 김소월이다. 김소월을 생각하면 노랫가락이 먼저 떠오른다. 토속적인 색채와 한의 정서를 리드미컬한 7.5조 음률에 담아냈던 그의 시는 노래에 가까울 정도다. 실제로 노래를 즐겨 들으며 작업했다는 그의 시가 무수한 대중가요로 둔갑한 이유는 바로 탁월한 음률에 있다.

60년대부터 김소월의 시는 대중가요화되기 시작했고 여러 장의 프로젝트 기획음반으로 발매되었다. 그 결과, 70년대에는 '소월 시를 대중가요 가사로 사용하면 히트곡이 된다'는 속설이 나돌 정도로 각광받으며 무수한 히트곡이 양산되었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부터 어버이 날이면 어김없이 부활하는 유주용의 '부모', 서유석의 '먼 후일', 이은하의 '초혼', 장은숙의 '못잊어', 정미조의 '개여울', 캠퍼스 밴드 라스트 포인트의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활주로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희자매의 '실버들', 마야의 '진달래꽃'에 이르기까지 소월 시를 가사로 사용해 히트한 대중가요는 널려 있다.

지금은 중견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대형가수 정미조의 대표곡으로 널리 알려진 '개여울'은 1922년 개벽지에 발표된 소월 시다. 1972년 정미조가 노래로 발표했을 때 '소월의 시가 50년 만에 대중가요로 탄생했다'는 기사가 나올 만큼 소월 시는 그 자체로 막강한 파급력을 담보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작곡가 이희목이 창작한 낭만적인 멜로디와 성량이 풍성하고 시원했던 정미조의 가창력이 합체되면서 세월을 초월해 사랑받는 명곡이 되었다. 2008년 영화 모던보이의 히로인 김혜수가 OST로 불러 화제를 모았던 이 노래는 심수봉, 김수희, 신계행, 최유나, 적우, 말로, 김종국, 박진석등 트로트에서 팝, 재즈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성을 초월해 지금껏 리메이크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개여울'의 오리지널 가수가 정미조임에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미조가 아닌 '김정희'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정미조보다 무려 5년 앞선 1967년에 이미 정식음반을 통해 노래를 발표했던 가수이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정권에 의해 가동된 금지문화는 소위 '사회정화'라는 통제시스템 하에서 자행되며 한국대중문화계의 기록을 무자비하게 폐기하고 훼손시켰다. 그 결과, 현재 한국대중문화계 전체의 열악한 데이터베이스는 무수한 오류를 반복하며 한국대중문화의 정체성에 대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1966년 당대의 인기가수 쟈니리가 부르고 길옥윤이 작곡했던 '내일은 해가 뜬다'란 노래가 있다. 발표된 그 해에 금지곡이 되어 대중과 유리된 이 노래는 이후 40여 년 동안 작자미상의 전래가요 '사노라면'으로 둔갑해 널리 불렸다.

'개여울'의 오리지널 가수 김정희 역시 활동한 기록은 고사하고 단 한 장의 사진조차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가수다. 그녀가 부른 최초의 '개여울' 버전이 수록된 킹레코드 음반은 1967년에 여러 가수들의 노래가 혼재한 컴필레이션 형식으로 발표되었다.

다행히 음반은 발견되어 대중가요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지만 가수 김정희를 기억하는 대중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녀의 노래는 전혀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인터넷은 놀라운 일을 실현시키기도 한다. 최근 기적적으로 만난 가수 김정희의 증언은 놀랍고 흥미로웠다. 그녀에 의하면 자신이 부른 '개여울'이 "음반으로 발표된 사실을 몰랐다"고 놀라워했고 "노래를 처음 불렀을 당시 4주 동안 KBS 라디오 인기가요 차트 정상을 지켰던 히트곡"이었다고 한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