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합격자 등 인터넷에 올려… 집단지성의 관심인가?

KBS 해피선데이 '1박2일'
"72년생 배우가 새 멤버?" (KBS <1박2일>)
"녹화 조작 논란은···" (MBC <나는 가수다>)
"탈락했던 후보가 패자부활전으로 기사회생?" (MBC <위대한 탄생>)

2011년 바야흐로 '리얼리티' 서바이벌 시대다. TV는 온갖 리얼 상황들을 만들어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관심을 증폭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일명 '스포일러(spoiler)'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을 장식하는 글 이야기다. 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스포일러는 대개 영화의 줄거리나 주요 장면 따위를 미리 알려주어 그 재미를 절감시키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현 사회에선 스포일러는 다분히 사람만을 지칭하는 건 아닌 듯하다.

얼마 전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은 새로운 멤버를 발탁했다. 그런데 그 새로운 멤버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자, 한 인터넷 매체는 뜬금없이 '72년생 배우가 새 멤버'라는 기사를 썼다.

스포일러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듯 배우의 이름은 공개하지도 않았다. 과연 그가 누구인지 알고는 썼을까? 뚜껑을 열어보니 그 멤버는 74년생 배우 엄태웅. 엉뚱하게도 한 시민이 촬영 현장을 휴대폰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사소한 '팩트'를 숨긴 프로그램 제작진의 잘못인지, 아니면 수줍게 '72년생 배우'라고 조심성을 발휘한 언론의 잘못인지. 미디어가 상당한 고민에 빠져 있다.

'초짜'들의 어설픈 '리얼'놀이

"우리는 지금 초급 수준의 리얼리티 쇼를 보는 중이다."

MBC가 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여년 만에 간판을 갈아 낀 <우리들의 일밤>(이하 일밤)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생긴 <위대한 탄생> 때문이다.

<일밤>은 '나는 가수다'와 '신입사원'을 묶어 두고 서바이벌과 오디션 형태를 갖췄다. 요즘 최고의 화두인 두 가지 버전을 동시에 취했다. '나는 가수다'는 7명의 실력파 가수들의 무대를 본 뒤 500여 명의 청중평가단이 1명을 탈락시키는 형식. '신입사원'은 MBC 아나운서를 공개 오디션으로 채용하는 방식이다.

MBC 위대한 탄생
시작은 장대했다. 제작발표회와 간담회를 밥 먹듯이 했고, TV로 프로그램 홍보도 밀어붙였다. 하지만 <일밤>은 그 장대한 시작을 스포일러라는 골칫덩이로 인해 그르치게 생겼다.

특히 '나는 가수다'는 실력파 가수들의 서바이벌 미션이라는 점에서 예민하기 그지없다. 김건모, 이소라, 김범수, 박정현, 백지영, 윤도현, 정엽 등 가창력 있는 가수들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500여 명의 청중평가단이 스포일러라는 누명을 쓰면서 비상이 걸렸다. 첫 탈락자의 행방과 녹화 조작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위대한 탄생>도 마찬가지다. 네티즌은 어떻게 알았는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위대한 탄생>에 출연한 지원자들의 상황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물론 4월이면 생방송으로 바뀌긴 하겠지만, 그 전에 파이널 미션에 올라간 명단이 벌써부터 인터넷에 돌고 있다.

하지만 '예견된 결과'라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케이블 채널에서 서바이벌이나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자존심도 없이 베끼기에 돌입한 지상파 방송의 성급함이라는 것. 설익은 기획과 판단으로 제대로 된 준비기간도 거치지 않은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럴 줄 몰랐나?'라는 반응도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유럽에서 시작한 리얼 프로그램은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했다. 국내에는 지금에서야 상륙해 자리를 잡아가는 형태"라고 말한다. 올 초부터 지상파 방송 3사가 앞다투어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시행착오도 겪지 않았으니 스포일러에 대처하는 방송사의 '의연한' 자세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CBS '서바이벌'
하지만 케이블 채널의 사정은 좀 다르다.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이하 프런코)와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이하 도수코) 등의 프로그램은 사전제작 형식을 띠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스포일러로 고생한 적이 없다.

외국에서 포맷을 구입해 방영 중인 이들 프로그램은 철저한 노련미와 노하우로 제작 중이다. 포맷을 사들인 이유가 리얼리티의 노하우 즉 스포일러의 위험성까지 극복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CJ E&M의 전략미디어마케팅팀 한수경 씨는 "<프런코>나 <도수코>에 출연하는 모든 도전자 및 심사위원, 게스트들은 '방송출연 동의서'를 작성한다"며 "동의서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사항을 밖으로 공개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만약 위반 시에는 (총 제작비에 대한)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된다"고 밝혔다.

케이블 채널은 지상파보다는 빨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한 셈이다. 더불어 제작진의 '단속'도 한 몫하고 있다. 사전제작 중에도 출연자와 탈락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스포일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 이 때문에 <프런코>는 현재 시즌 3을 맞고 있으며, <도수코>는 시즌 2를 시작한다.

특히 <프런코>의 경우 총 11화 중 8화가 전파를 탔지만, 실제로는 이미 파이널에 진출한 톱3가 선발돼 있는 상태다. 이들은 4월에 있을 패션쇼를 준비 중이다.

컨버전스 컬처, 집단지성의 스포일링

요즘처럼 '컨버전스(convergence)'라는 말이 실감날 때가 또 있을까. 컨버전스는 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융합되거나 합쳐지는 현상이다. 현재 디지털 문화가 발달하면서 컨버전스는 콘텐츠의 흐름과 소통을 수용자가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동이 됐다.

이런 컨버전스가 디지털과 더불어 미디어를 만나면서 개인적이었던 수용자들을 한 데 묶어놓았다. 기호학자 피에르 레비는 이를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고 말했다.

MIT 인문학부 교수인 헨리 젠킨스는 저서 <컨버전스 컬처>에서 일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스포일러는 "집단지성으로서의 스포일링"이라고 언급했다. 인터넷 속 집단지성들은 공유된 목적과 목표를 위해 개인적 전문성을 활용해 소통한다는 것. 특히 TV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대화의 문을 열게 하는 소재인 만큼 더 많은 집단지성들이 온라인을 통해 대화를 가능케 했다고 분석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대하는 집단지성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해 자신들의 지식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정보를 공유한다. 자발적이고 임시적이며 전술적이다. 헨리 젠킨스는 책에서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그들의 관심사와 필요가 바뀜에 따라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동시에 한 개 이상의 커뮤니티에 소속될 수도 있다'고 서술했다.

소속과 이동이 자유롭고 용이하다. 이 때문에 한 방송의 비밀을 흘리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일 수도 있다. '컨버전스 컬처'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셈.

우리의 리얼리티 TV가 간과한 게 있다. 바로 집단지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한 네티즌의 활동조차 염두에 두지 못했다. 특히 '나는 가수다'는 청중평가단 500여 명을 투입했음에도 말이다.

미국 CBS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리얼리티 TV <서바이벌(Survivor)>은 스포일러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했다. 16명 내외의 사람들이 오지에서의 생존경쟁을 펼치는 <서바이벌>은 언제나 논란거리다. 탈락자를 맞추려는 시청자와 비밀을 유지하려는 제작진의 싸움 때문이다.

시청자와 제작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책임프로듀서 마크 버넷은 이를 초월한 듯하다. 그는 <서바이벌>의 최종 승자가 누구인지를 감추기 위해 스포일러와 전쟁을 벌인다.

그 방법이 기가 차다. 시청자들의 눈을 흐리게 하기 위해 '허위정보'의 유포 작전을 펼치는 것. 제작진과 시청자 사이의 경쟁은 신비감을 조성하는가 하면 프로그램에 대한 더 깊은 관심을 끌어올린다. 스포일링된 정보들을 경쟁시키면서 홍보 효과까지 저절로 해결되는 셈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출연자 및 탈락자들을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합숙하게 한다. 감금 아닌 감금 장치를 취한 것. 우리 제작 현실은 전 출연자를 포용할 만큼 녹록하지 않다. 그렇다면 단순히 스포일러라며 유난을 떨 것이 아니라 시청자와 집단지성까지 껴안는 아량을 가지면 어떨까.

참고서적 : <컨버전스 컬처>(헨리 젠킨스·비즈앤비즈), <컨버전스와 미디어 세계>(유재천 외·커뮤니케이션북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