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희목 작품집 컨필레이션 앨범에[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김정희 '개여울' 下 (1967년)방송용 녹음 음원… 평범한 트로트 음반으로 여겨지며 점차 잊혀져

세상엔 우리가 아는 사실이 실은 진실이 아닌 것이 너무나 많다. 정미조 본인도 '개여울'의 오리지널가수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개여울'의 최초 버전이 담긴 음반에는 정미조의 또 다른 빅히트 곡 '파도'의 최초 버전까지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 김정희 노래다. 하지만 노래를 부른 본인도 자신의 음반이 발매된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사연은 이렇다. 당시 '개여울'의 작곡가 이희목은 KBS 전속 신인가수 김정희의 담백한 노래가 애청자들의 큰 반응이 이끌어내자 1966년 아마추어 작곡가 콘테스트에 출품해 당당히 1등상을 수상했던 것. 그 인연으로 1967년 킹레코드에서 발매한 음반 속에 자신이 작곡한 그녀의 노래 '개여울', '파도', '싹트는 오솔길', '우리 집 자랑' 4곡을 실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음반 수록곡은 방송용으로 녹음한 음원이다. 이희목 작품집으로 발매된 이 음반은 송춘희, 한명숙, 김정희 3명의 여가수 노래가 4곡씩 수록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동안 이 음반은 평범한 트로트 음반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송춘희가 재킷모델을 장식한 음반커버로는 김정희가 노래한 '개여울' 등 4곡이 수록된 음반임을 눈치 챌 여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노래에 대한 언급 없이 비정상적으로 세상에 던져진 이 음반은 설상가상 가수 본인의 짧은 활동으로 사장된 비운의 음반이다. 노래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작곡가 이희목은 5년 후인 1972년,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한 대형가수 정미조에게 '개여울'과 '파도' 2곡을 리메이크시키며 비로소 빅히트를 터뜨렸던 것.

김정희는 1945년 4월 26일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해 가족들과 함께 월남했다. 당시엔 잘나가는 첨단 직종이었던 운전기사를 했던 부친 덕에 전축과 금성 진공관 라디오와 자가용을 소유한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른들이 즐겨 들었던 유행음악을 들으며 음악 내공을 수혈받은 그녀는 1963년 KBS 노래자랑대회를 통해 데뷔했다. 당시 2주 연속 장원을 한 여성과의 최종 대결에서 졌지만 그녀의 음악적 가능성을 본 심사위원 손석우의 추천으로 KBS 6기 전속가수로 선발되었다.

함께 음악을 시작했던 동기 중에는 '내 이름은 소녀'로 유명한 조애희가 포함되어 있다. KBS의 전속가수 제도는 1964년 7기를 마지막으로 없어졌다가 1970년 자매듀엣 유리시스터즈에 의해 잠시 재가동되었다.

1964년 결혼을 한 그녀는 방송과 더불어 송민영악단이 출연한 미8군 장교클럽 '김치카바나' 무대를 오가며 가수생활을 했는데 1968년까지 5년 남짓에 불과했다.

팝송을 주 레퍼토리로 활동을 했던 그녀가 대중가요 '개여울'을 처음 노래한 것은 1965년이다. 당시 KBS 직원이었던 작곡가 이희목이 김소월 시 '개여울'에 로맨틱한 멜로디를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 담백하고 고급스런 창법의 김정희 노래에 소녀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정희는 "방송을 타고 노래가 나가자 신청곡 편지와 엽서가 방송국으로 쇄도했고 당시 KBS 라디오 인기가요차트에서 '개여울'은 4주 동안 연속 1등을 했다"며 "트로트가 대세였던 시기라 음반사들이 팝 스타일의 노래는 상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취입 제의를 받지는 못했다. 인기는 개여울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론 '파도'를 더 좋아했다"고 전했다.

대중은 풍부한 성량으로 노래한 정미조의 히트 버전에 익숙한 것이 사실이지만 김정희 버전엔 화장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매력과 60년대의 낭만적 분위기가 가득하다.

두 버전에 대한 호불호는 청자의 몫이지만 오리지널이라는 역사성은 불변의 진리다. 70년대의 중요 가수로 기록된 정미조와 달리 오리지널 가수 김정희는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은 가수로 명암이 갈렸다. 하지만 뒤늦게 발굴된 그녀의 노래는 시대를 앞서가며 대중가요의 수준을 높인 자양분임을 웅변하고 있다.

은퇴 후 아동교육 사업가로 변신한 김정희의 못다 이룬 음악 갈증은 국내 유일의 바로크 메탈 밴드 지하드의 리드기타리스트로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뽐내고 있는 막내아들 박영수가 대신 풀어주고 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