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민중가수 백자 1집 上(2010년)디지털 세상 민중가요 생존 가능성 타진

다양한 장르음악이 공존했던 80년대에는 민중가요도 주류 대중음악 차트에 진입했을 만큼 막강한 파급력을 발휘했다. 변혁의 시대였기에 민주화를 갈망하는 대중에게 서사적인 메시지를 담은 민중가요는 진정 감동적인 큰 울림이었다.

그렇다면 민중가요의 현주소는? 민중가요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대중의 관심사가 급격하게 이동한 지금의 디지털시대에 현저하게 힘이 빠져있다. 독특한 개성과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지금, 과연 민중가요는 80년대의 영광수준은 아닐지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것일까?

민중가요 보컬그룹 <우리나라>의 음악감독 백자(본명 백재길)가 그 해답을 찾아 음악항해에 나섰다. 그의 솔로 프로젝트인 정규 1집 <가로등을 보다>는 정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디지털 세상에서 민중가요의 생존 가능성을 타진하는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첫 걸음이다.

이번 앨범이 그의 첫 독집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산악다큐멘터리영화 <벽>에 수록된 음악들을 모은 소품집 <걸음의 이유>는 이번 앨범에 원동력을 제공했다. 인디제작 시스템으로 발표한 그 음반은 자신의 팬 카페에서만 판매했음에도 재발매 음반까지 동이 나는 성과를 올렸다.

그의 음악을 듣고 생성된 추종자들과 평소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반한 100여 명의 후원자가 주머니를 털어 정규앨범 제작에 힘을 보탰다.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대학생 시절 그는 총학생회 문화국 노래패 즉 운동권이었다. 그때 군에서 제대한 후 후배들과 팀을 꾸려 광운대 월계가요제에 참가해 자신의 군복무 기간을 의미하는 '26달'이란 노래로 대상을 받았다.

그 후 '이등병의 편지'를 창작한 김현성의 주도한 노래모임 <혜화동 푸른섬>에서 1997년 가을부터 본격적인 노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99년 말부터 보컬그룹 <우리나라>를 결성해 민중가요 노래꾼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날로 입지가 협소해진 민중가요계의 척박한 지형에서 음악과 무대에 갈증을 느낀 그는 2007년 포항MBC 주최 제2회 대한민국 창작포크가요제에 참여해 2등에 입상했다.

그때부터 그룹과 별개로 자신의 사운드를 찾아가는 솔로 프로젝트 작업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난 2008년부터 홍대 클럽 바다비, FB등에서 벌이고 있는 솔로 활동과 솔로 앨범은 그 구체적 행동일 것이다. 2010년 발표한 첫 정규앨범 <가로등을 보다>는 13년 동안 만들어온 노래들을 응집시킨 결실이다.

민중가수 이력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한 가수는 극소수다. 정태춘을 시작으로 김광석, 안치환 정도가 있다. 백자는 세 명의 익숙한 특징에다 자신만의 음악을 합체한 기대주다.

백자는 노래를 참 맛깔나게 부르는 가수다. 그의 첫 정규앨범 전체를 주도하는 감성은 포크지만 장르 특유의 저항적이거나 담백한 원형질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포크 특유의 잔잔함을 기반으로 호소력 짙은 멜로디에 시인을 꿈꿨던 인간적인 가사, 그리고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드라마틱한 가창력으로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만약 아이돌 천하로 실종된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노래에 갈증을 느낀다면 그의 노래들은 시원한 생수일 것이다. 때론 블루스 포크의 끈적한 질감을 때론 잔잔함과 경쾌함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멜로디에 담긴 그의 내밀한 감성은 분명 위로의 기능을 안겨주는 따뜻한 가락이다.

하지만 통일성이 없는 앨범의 곡 구성은 이 앨범의 아킬레스건인 동시에 의욕이 충천한 그의 향후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 변혁의 시절엔 '우리'가 중요한 화두였다면 지금의 디지털 세상은 단연 '나'가 중심이다. 그래서 백자는 자신의 이야기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그가 노래하는 자기 위로는 현대인이 언젠가 부터 놓치고 있는 감성이자 그리워하기 시작한 사람 냄새 나는 아날로그적 정서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편곡도, 현란한 기교도 없지만 그의 노래가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일 것이다.

이달 15일부터 3일간 고 김광석이 1000회 공연의 금자탑을 세운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그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