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민중가수 백자 1집 下(2010년)고단한 삶의 노래, 아날로그 정서 진동

과거 변혁의 시절엔 '우리'가 중요한 정서이었다면 지금의 디지털 세상엔 '나'가 중심이다. 그래서 지금의 대중에겐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더 중요하다. 그 점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을 시도하는 백자의 노래는 확실히 현재적 어법이다.

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고단한 삶의 정서에는 사람 냄새 나는 과거의 아날로그 정서가 진동한다. 아이돌 음악에 밀려 서정성이 실종된 요즘 대중음악에 갈증을 느낀다면 백자의 노래는 시원한 해갈의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민중가수의 이력을 가지고 폭넓은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한 가수는 정태춘, 김광석, 안치환 정도가 있다. 백자의 노래는 김광석의 질감에 가깝다. 서정과 서사를 넘나든 세 가수의 음악적 특징을 고루 지녔지만 그들과 차별되는 음악을 구현하고 있는 백자에 대해 안치환은 "진주를 발견했다", 기타리스트 김광석은 "깊은 영혼의 소리"라 표현했다.

백자의 첫 정규앨범을 주도하는 감성과 질감은 포크지만, 저항적이고 담백한 장르 자체의 원형질에 매몰되기보단 어쿠스틱 사운드를 기반으로 블루스와 록을 넘나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구현하고 있다. 귀에 감겨오는 멜로디와 인간적인 가사는 호소력 짙은 그의 보컬을 통해 강력한 흡인력을 획득한다.

삶의 고단함을 담은 블루스 포크의 끈적끈적한 질감과 격정과 평온을 넘나드는 그의 감성은 실로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이질적인 질감이 느껴지는 다양한 장르의 곡 구성은 앨범의 음악적 통일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동시에 향후 음악적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열 받았을 때는 분노하다가도 혼자 있으면 고독해지는 극단적인 성격이라 한다. 앨범에 수록된 그의 노래들도 그의 성격과 닮은꼴이다.

"내 노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를 위로해주는 노래고 다른 하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공감케 하는 노래다. 이번 음반은 철저하게 나를 위로하는 노래들로 꾸며졌다."

정규앨범 수록곡들은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만든 노래가 아니라 대부분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노래들이다. 최근에 창작한 곡은 '울고 싶던 날' 한 곡뿐이다. 그러니까 오랜 기간 그의 감정변이 과정을 담은 조각들을 모아 놓은 음반인 셈이다.

그의 말처럼 자신의 내밀한 감성을 담은 이번 앨범엔 감성적인 트랙들이 즐비하다. 타이틀 <가로등을 보다>는 1997년 군복무 시절 말년 휴가 때 헤어진 첫사랑과의 이별 후 쓴 곡이다. 그래서 가로등은 그가 사랑했던 여자친구일수도 있고 희망과 위로의 대상일수도 있고 삶의 희미한 등불일 수도 있다.

"또 봄은 찾아왔네 이렇게 그대 없는 봄…"이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어김없이>는 뜨거웠던 80년대의 5월을 연상시킨다. <그대가 떠나가는 오늘 밤에는>은 사랑했던 사람, 떠나간 사람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화학 작용해 만들어진 근사한 노래다. 첼로를 도입한 이 곡은 규격화된 드럼의 반복적 비트가 충돌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울고 싶던 어느 날>은 민중가요의 진보적 모습을 제시한 탁월한 곡이다. '힘을 내, 다시 시작해야지. 울지마'와 같은 직설적 화법은 전형적인 민중가요의 서술구조이기에 청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요소가 다분하지만 적어도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그의 드라마틱한 창법은 이전의 민중가요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흥을 제시했다. 투박하고 거친 블루스 포크 곡 '나비'는 향후 그의 음악적 방향과 성취를 기대하게 하는 매력적인 트랙이다.

파워풀한 남성적 보컬을 구사하는 백자는 '상실', '상처', '외로움', '이별'을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소곤소곤 드라마틱한 감성으로 들려주는 가창력을 선보인다. 그가 오랫동안 노래해온 '조국', '노동', '민중' 같은 서사를 배제하고 서정만으로도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태춘이 '92 장마 종로에서'로 민중요가요의 새 지평을 제시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덕규가 노래한 CCM '가수나무'처럼 민중가요 같지 않은 민중가요는 그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