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조용필 1집 대표곡 모음 (1980년)음악성·흥행성 모두 잡은 성공적 모델

다양한 장르음악이 만개했던 1980년대 대중음악에서 조용필의 지분은 절대적이다. 컬러TV 시대 최초의 슈퍼스타였던 그는 50년대 현인, 60년대 이미자, 70년대 송창식에 이어 80년대의 '국민가수'로 찬란한 계보를 이어받았다.

조용필 신화는 1980년에 발표된 공식 1집으로 회자되는 <조용필 대표곡 모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음반은 모든 창작자들의 영원한 숙제인 음악성과 흥행성을 모두 성취하며 성공적인 롤 모델을 제시했다.

조용필의 최초 음반은 1971년 발표된 뮤지컬 <사랑의 일기> 컴필레이션 음반이고 첫 독집은 1972년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초 버전이 수록된 <조용필 스테레오 히트앨범>이다.

1976년 리메이크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예상치 못한 빅히트 이후 그는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4년간의 활동금지로 자신의 황금기를 80년대로 미뤄두었다.

사실 대중적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공식 1집에 앞서 1980년 1월에 발표된 음반도 있었다. 1978년에 녹음한 드라마 주제가 '꽃순이' 등을 수록한 서라벌레코드 발매 음반이다.

1968년 데뷔부터 1980년 부활까지 그는 록, 포크, 트로트, 민요 등 다양한 장르음악을 섭렵했다. 이 앨범에 발라드(창밖의 여자), 록(너무 짧아요), 트로트(돌아와요 부산항에), 민요(한오백년)에다 디스코(단발머리)까지 다양한 장르의 11곡이 포진한 것은 폭넓은 음악내공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과거의 히트곡들까지 총 망라된 앨범의 백화점식 구성은 세대를 초월해 폭넓게 대중에게 다가가는 계기가 된 동시에 '일관된 음악색깔이 없다'는 비판까지 동반했다. 하지만 이 음반이 암울했던 70년대를 극복하고 80년대를 대중음악의 권토중래 시기로 견인한 명반임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1979년 동아방송 연속극 <인생극장>의 주제가 '창밖의 여자'는 80년대의 명곡이다. 우연하게 만든 이 노래가 없었다면 '가왕', '국민가수'란 타이틀은 그에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구레코드 문예부장을 지낸 임석호는 인천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당시 안평선 씨가 작사를 했는데(음반에는 배명선으로 명기) 곡을 만들기로 예정된 작곡가가 펑크를 냈다. 1주일 뒤 방송인데 마땅한 작곡가와 가수를 찾지 못해 고민하다 내가 조용필씨를 추천해 급하게 만들어진 곡"이라고 말했다.

활동정지 기간에 그는 판소리 창법을 수련해 절창의 득음을 획득했다. 그의 소리는 분명 이전의 대중가요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다른 레벨의 울림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80년 3월 20일 발매된 이 음반은 무려 3가지 버전이 혼재한다는 점이다.

그에게 영광과 좌절의 영욕을 함께 안겨준 대표곡 '돌아와요 부산항'의 수록 여부 때문이었다. 3000장 정도가 제작된 초반에는 경음악 버전으로 1면 마지막 트랙에 수록된 그 노래는 나중에 보컬이 들어간 버전으로 수정되었고 곡 순서도 1면 2번째 트랙으로 재배치되었다.

음반이 발표된 후 2달 후에 터진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혼란스런 정국을 불러왔지만 조용필에게는 반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혼란스런 사회분위기에 답답했던 당대 대중이 한을 토해내듯 포효하는 '창밖의 여자'에 가슴이 뚫리는 통쾌감을 느꼈던 것. 그 결과, 6월부터 각종 인기가요 차트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7월 차트에서는 곧바로 1위로 급부상했고 8월 차트에서는 '단발머리'까지 6위에 오르면서 조용필의 노래 2곡이 상위권에 포진했었다. 또한 '한오백년',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대전블루스' 등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까지 시너지 효과를 내며 동시다발적으로 조용필 노래가 애창되기 시작했다.

<월간팝송> 1980년 9월호는 조용필의 독주시대 시작을 증명하고 있다. 7월까지 국내 인기가수 순위 12위에 불과했던 조용필은 그때까지 1위였던 송창식을 누르고 당당히 1위에 등극한 차트가 발표되었던 것. 또한 1980년 11월 17개국의 가수가 참가한 제2회 TBC 세계가요제에서 조용필은 '한오백년'으로 개막제에서 열창 상을, 본선에서는 '창밖의 여자'로 금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가수로 도약하는 기틀까지 마련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