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정태춘 6집 上 (1993년)서사ㆍ서정 아우른 노래, 민중가요 새 지평

1996년 6월은 한국 대중음악 창작자들에겐 금지곡 망령에서 벗어난 뜻 깊은 타임 테이블이다. 하지만 15년의 세월이 흐른 요즘, 여성가족부가 '술'을 언급한 대중가요들을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된 음반은 '19세 미만 판매금지'라는 스티커를 붙여야 되고 음원을 음악 사이트에 배포하거나, 방송과 공연에서 노래할 때 지적된 부분의 가사를 수정해야 한다.

방송사들도 오후 10시 이전엔 해당 노래를 방송하지 못한다. 이 결정을 어길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기에 가수의 소속사가 여성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1975년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모든 대중가요 음반의 마지막 트랙에는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를 수록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음반을 내려면 사전에 곡과 가사를 윤리위원회에 제출해 1차 심의를 받았고 다시 완성된 음반을 납본해 사후심의를 받는 이중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군사정권에 의해 창작 문화가 억압받았던 시절의 우울한 풍경이다. 사실 사회적 수용한계를 넘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창작물이 넘쳐나는 요즘 소위 '걸러내기' 필터링 과정은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대중문화를 예술이 아닌 상품으로 인식해 작품의 수준과 내용에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재단하려는 당국의 시각일 것이다.

사전심의제도는 1961년 군사 쿠데타 이후 공연예술윤리위원회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수많은 대중음악과 영화등 소위 창작품들은 온갖 황당한 이유로 '금지'의 주홍글씨 낙인을 받고 사라지거나 작품의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런 점에서 사상 최초로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음반'을 제작하고·판매해 이 부당한 제도에 '저항'했던 정태춘의 행위는 의미심장했다. 1991년 발표된 정태춘 5집 <아, 대한민국…>과 1993년 발표된 6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그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이 음반들의 출생은 시대의 억압과 일그러진 통제 시스템에 항거했던 싸움의 시작이었다.

정태춘에 의해 점화된 사전심의 철폐 운동은 이후 영화, 문학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가사 삭제 사태를 정점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며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1999년 이후 공륜의 후속 기관으로 탄생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연령별 등급 분류를 하고 있고 각 방송사는 각자의 기준으로 방송금지곡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사전심의는 사라졌지만 사후심의는 엄연히 살아있다는 이야기다.

1978년 서정적인 포크송으로 데뷔해 풍요로운 인기를 누리다 돌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민중가수로 변신했던 정태춘. 한동안 변혁지향의 서사적 메시지에 몰입했던 그는 1993년 마침내 서사와 서정을 아우른 시대의 명반인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통해 민중가요의 새 지평을 제시했다.

이 음반을 통해 정태춘은 스스로 내팽개쳤던 아름다운 고향의 정서를 그린 젊은 날의 서정을 세상의 아픈 현실을 껴안은 가락과 합체시키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현했다. 대중적으로는 히트곡 하나 없는 음반이지만, 이 음반의 존재가치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순위 63위로 꼽은 후대의 평가가 웅변하고 있다.

대중음악계의 암흑기였던 1978년 낭만적인 데뷔앨범 <시인의 마을>로 데뷔한 정태춘은 이듬해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지만 대학 출신이 주도했던 포크송이나 대학가요제와는 무관했다.

그의 초기 노래들은 기존의 달콤하고 감각적인 대중가요들과는 다른 질감이었다. 전원적 삶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담겼던 그의 음악은 군사정권의 통제에 억눌린 현실세계를 잊고 아름다웠던 고향의 향수를 기억시켰던 마법의 가락이었다.

저항적인 정통 포크가수는 아니었지만 체질적으로 연예인의 '끼' 보다는 예술혼이 꿈틀거렸던 그는 1집의 성공 이후 포크와 국악을 접목하는 음악적 실험에 매몰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2, 3집의 연이은 실패로 팍팍해진 세상살이는 어쩌면 그에게 민중가수로의 변신을 강요한 '저항'이라는 DNA를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