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이적, 타블로 등 상당한 필력 불구 작품성 의심받아등단제도 거치지 않고 유명세 업고 출간 등 선입견이 원인

두 번째 장편소설 '오늘예보' 낸 배우 차인표
지난주 배우 차인표 씨가 두 번째 장편소설 '오늘예보'를 냈다. 기자간담회는 시청 역 근처 프레스센터에서 열렸고, 각 언론사 출판·문학담당 기자들이 초대받았다. 한 주 앞서 열린 조영남의 '쎄시봉 시대' 간담회에 방송사 연예프로그램 리포터들이 질문을 했던 장면과 대조를 이뤘다.

"편집자에게 요구사항이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차 씨는 "책 표지를 보고 연예인 차인표가 잊혀지도록 작업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2009년 첫 소설의 독자 서평을 읽고 놀랐어요. '연예인이 쓴 책이라서 안 보려고 했는데.' 대부분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독자에게 나는 연예인으로 받아들여지겠구나. 소설을 읽으려다가도 차인표란 이름이 걸림돌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배우란 걸출한 타이틀 없이 신인작가의 소설 출간 간담회에 수십 명의 기자들이 올리는 만무할 터고,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소설은 한동안 배우가 쓴 소설이란 이유로 읽힐 것이다.

배우 차인표뿐만 아니라 과 타블로 등 소설책을 낸 연예인들은 상당한 필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품성'을 의심받는다. 독자마다 호오가 엇갈리고 연예인 가십에 대한 세간의 평이 그러하듯 책에 대한 독한 안티도 상당수 된다. 동시에 이들 책은 출간 직후 십수만 권이 팔리는 기염을 토한다.

연예인이 쓴 소설은 기존 소설과 무엇이 다를까? 독자는 단지 '팬심'으로 소설을 읽는 걸까? 대중은 왜 욕하면서도 사볼까?

출판계 효자, 연예인 작가들

최근 몇 년간 연예인이 낸 책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출판계는 '연예인 책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일례로 교보문고 5월 4주차 주간 베스트셀러 종합 10위권 내 4종이 연예인 혹은 방송인이 쓴 책이다. (박재범의 'JUST ME JAY', 김제동의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백지연의 '크리티컬 매스', 유진의 '유진's 겟잇뷰티') 몇 년 전 만해도 연예인의 여행기나 에세이가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영어·수학공부, 인터뷰 모음집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연예인이 쓴 소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5년 이 펴낸 소설집 '지문 사냥꾼'은 출간 직후 대형 서점의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책은 이적이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 온 '희한한 이야기'들을 묶어서 발간한 것. 표제작 '지문 사냥꾼'은 지문을 훔치는 도둑의 이야기로 소설집은 판타지적 요소가 강한 12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이 소설집은 15만 권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소설은 이듬해 몽환적인 분위기의 만화로 재탄생했다.

가수 이적
2008년 출간된 의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은 그가 대학에 다니던 시기에 집필한 작품을 묶은 것이다. 이 책 역시 판매 한 달 만에 14만 부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5달 만에 20만 부를 넘었다. 이 해 문학동네 베스트셀러 1위였던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이 40만 부를 팔았다.

의 소설이 장르물에 가깝다면 타블로의 소설은 서사 없는 순소설에 가깝다. 표제작은 인물의 '의식의 흐름'만을 기록한 단편으로 줄거리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김연수와 한강 등 독자층을 확보한 순문학 작가들이 4만~5만 부를 판매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들의 실적(?)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밖에 구혜선, 차인표가 2009년 장편소설을 출간한 바 있다.

낙하산이라고?

다시, 차인표의 간담회를 엿보자. 이 간담회장에 눈에 띄는 인사가 있었으니, 출판에이전트 '케이엘 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다. 이 대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조경란의 '혀',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까지 국내 작가들의 소설을 해외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차인표의 첫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의 해외 출간을 준비하다 아예 차인표의 국내 출판매니지먼트도 담당하기로 했다. 이구용 대표는 "소설을 수출할 때 두 가지 기준을 대입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이다. 차인표의 첫 소설 주제인 화해와 용서, 이야기 특징인 동화적인 측면은 문학의 보편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란 소재는 한국적 특수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구용 대표의 말은 차 씨의 소설이 꽤 작품성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으로 들린다. 차인표의 첫 장편소설은 중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을 편집한 사람은 시인 이병률 씨다. 이 씨는 "연예인이 쓴 소설이라 출간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작품이 좋았다. 문장이 시적(詩的)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문예창작을 전공한 타블로는 작가 토비아스 울프를 사사했다.

최근 에세이, 인터뷰집, 실용서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연예인 작가'들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유독 진입 장벽이 높은 소설의 경우 대중은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이들의 책을 읽는다. 국내 문학계 풍토에서 이들의 소설은 '소설 아류 쯤'으로 취급받는다. 이 편견은 어디서 발생할까?

영미와 유럽의 많은 출판사들은 작가가 완성된 소설 원고를 투고하면 이를 검토한 후 책으로 출간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 공모 등 '등단 제도'를 통해 공신력(?)을 인정받은 작가들이 문예지 등에 소설을 연재한 후 이를 책으로 출간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른바 '문단' 시스템이다. 해외 문학계에서 헤르타뮐러가 '숨그네'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과 '다빈치코드'가 잘 팔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국내 문학계로 바꾸면 말이 달라진다.

가수 타블로
국내 출판시장에서는 순문학으로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품이 소설 분야 판매 상위에 랭크되는 기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훈과 박완서의 소설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베스트셀러도 섭렵하는 것은 다분히 한국적인 출판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말이다.

소위 '연예인 표' 소설은 이런 등단 과정과 별개로 출간된 소설들이다. 이들이 '연예인이기 때문에' 책을 출간하는 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소설의 작품성은 '연예인이기 때문에' 평가절하되는 측면이 많다.

이병률 씨는 "타블로 소설집을 낼 때 편집자로서 인터뷰를 거의 다 거부했다. 저자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소설 내용이 오해될까 봐서다. 책을 홍보하는 데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은 작가인 연예인도 갖고 있다. 앞서 차인표가 "연예인 차인표가 잊혀지도록 작업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이런 염려에서 비롯된다.

은 계간지 '문학동네'좌담회에서 "괜히 섣불리 책을 냈다가, 그냥 연예인이 낸, 이름 팔아서 만든 책인가 보다, 그렇게 될까봐, 좀 꺼렸었다"고 말했다.

'이적 : 초점이 좀 잘못됐다고 느껴지는 평은 가끔 있어요. 예를 들어 타블로가 저런 소설을 내는 것이 다른 문학도의 힘을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인 게, 예를 들어 모델 장윤주 같은 친구가 앨범을 내면, 음악 좋아하는 애들이 씹는 경우가 있어요. 누구는 실용음악과에서, 홍대에서 죽어라 뺑이치는데 너는 모델이라 판 쉽게 내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아무런 편견 없이 들어보면 그냥 음악 그 자체로 좋거든요. 결국은 내용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장르에 대해 장벽을 만들어놓은 것은 조금 속 좁아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타블로 : 딴 데서 왔으니까, 이건 낙하산이랄까, 뭔가 이건 게임의 룰을 어기는 거랄까, 이런 시선은 좀 그렇지 않나요?'

(계간 <문학동네> 2009년 봄호 기획좌담 '세상에 대고 말한다, 나나 잘하자고')

너나 잘 하세요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 한편, 순수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66~67페이지)

케이엘 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저 발언은 연성화되는 일본 소설을 비판하며 근대소설의 종말을 진단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지만, '연예인 소설'을 무조건 평가절하해 보는 우리 출판계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문단제도를 통해 순문학의 영역을 보존(?)하는 국내 문학계에서 기실 순소설을 표방하며 막장 드라마 수준의 재미도 주지 못하는 작품이 부지기수로 쏟아지니까. 상당한 수준의 문학성을 성취한 꽤 많은 작품들이 '대중소설'로 팔리고 있으니까.

'연예인이니까'의 편견을 떼고 보면, 이들 소설은 한층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온다.

인터뷰
인터뷰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을 편집한 이병률 씨는 문학동네 임프린트 '달'의 대표다. "연예인 소설이란 말이 좀 그렇다"고 말한 그는 타블로를 비롯해 연예인이 쓴 소설들이 평가절하되어 논의되는 상황을 염려하는 듯 보였다.

작가나 출판인으로서 타블로와 이적의 소설 어떻게 읽었나?

달 출판사 이병률 대표
"이적의 경우에는 장르성을 갖고 있다. 은유나 비유에 의해서 문학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큰 상징물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남달랐고, 확실히 문학적이었다. 두 번째 작품을 쓸 거라고 하던데 기대된다. 타블로의 소설은 원고를 모두 본 후 계약했다. 19살, 20살 때 쓴 작품이라 그때 감성이 있다. 확실히 시적이었다."

어디선가 이적의 독서 목록을 본 적이 있다. 장르문학부터 해외 에세이, 인문서까지 웬만한 문학출판 기자보다 다양한 책을 섭렵했더라. 기자가 문학전문가는 아니니까 소설의 작품성을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정도 책을 읽고 자기 이름 걸고 책 내겠다고 하는 사람이면 그 소설, 작품성은 어느 정도 갖췄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적은 독서량이 꽤 되는 분이지만, 다른 (연예인 출신) 작가의 경우에는 독서량이 많지 않은 사람도 있다. 예술적인 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작품이 등단 시스템을 통해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소설과 어떻게 다른가?

"훨씬 자유롭다. 순문학 하는 사람들은 교육이나 고전, 선배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서 학습된 걸 소설로 펼친다. 그렇게 훈련받은 작가들보다 연예인들의 소설은 자유분방하고, 에너지가 세다."

책을 내면서 작가가 연예인이란 사실을 가리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나?

"실제로 연예인임을 숨기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있다. 소설뿐 아니라 산문집을 낼 때도 그런 요구를 하는 작가들이 종종 있다."

추가로 기획하고 있는 연예인 소설 있나?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 이석원 씨도 소설을 쓰고 있다. 이전에 이 씨의 산문집을 편집하면서 소설을 써보라고 추천했다. 산문집 내용이 충실했고 충분히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을쯤 출간할 예정이다. 꼭 고리타분하게 등단이란 형식을 거쳐야 하는가. 작가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노크하는 건 좋은 형식인 것 같다.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을 쓴다는, 그보다 순수한 형태는 없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