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잼다큐멘터리 '강정'8명 감독 참여 해군기지 건설 둘러싼 에피소드 합쳐 하나의 이야기로

강 강(江), 물가 정(汀). 오죽 물이 좋았으면 그렇게 불렸을까. 이름의 연원을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움이 더욱 깊어진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세계자연유산이었던 제주도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으로 평화를 잃은지 4년째다.

공사가 시작된 지금, 강정마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우려가 쏠려 있다. 어떤 이익도 이곳의 생태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과 풍광, 삶의 모습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바닷가에 텐트가 늘어난다. 포클레인을 막는 틈틈이 전시가 열리고, 노래가 울려 퍼진다. 해군기지 때문에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영화인들도 나섰다. 1년 여 동안 강정마을에 머물며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앞장선 양윤모 영화평론가가 구속된 사건은 기폭제가 됐다. 지난 5월 함께 강정마을을 찾은 독립영화인들은 영화를 통한 대응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기획된 것이 '잼다큐멘터리 <강정>'이다.

형식이 새롭다. 여러 명의 감독들이 100일 동안 각자 찍은 에피소드를 합쳐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음악에서의 즉흥 합주를 닮아서 '잼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작 기간을 단축하고, 역동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협업 방식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시작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8명의 감독이 참여했다. <쇼킹패밀리>의 경순 감독이 총괄프로듀서를 맡았고 <오월애>의 김태일 감독, <히치하이킹>의 최진성 감독, <별들의 고향>의 정윤석 감독, <원 웨이 티켓>의 권효 감독, <경계도시>의 홍형숙 감독이 참여한다. <택시블루스>의 최하동하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총감독이다. 이들은 지난 6월말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사회적 제작 방식은 그 의미를 더한다. 사회적 제작이란 공공의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마련하고 수익금과 작품 소유권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수익금은 모두 강정마을에 기부된다. 취지에 공감하는 누구라도 제작자로서 힘을 보탤 수 있다.

독립다큐멘터리가 사회적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지를 모으는 이 새로운 시스템은 철거 위기에 처한 홍대 앞 두리반에서의 음악 축제를 담은 <뉴타운 컬쳐 파티>에 이어 두 번째로 시도되는 것이다.

현재 총 3천만 원의 제작비를 절찬리 모집 중이다. '100일간의 잼다큐멘터리 강정' 블로그(blog.naver.com/jamdocu)에 들어가면 참여 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지구에서 점점 희귀해져 가는 아름다움, 저 오래된 자연과 평화를 당장의 경제적 이익과 맞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누구라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제작자로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완성된 영화는 9월부터 영화제와 공동체 상영 등을 통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레미콘 제지
인터뷰
"저 벅찬 바다와 마을을 지키고 싶다"

'잼다큐멘터리 강정'은 어떻게 기획되었나.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지지하러 현장에 갔을 때 바다를 보면서 아,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저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불안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잘 하는 것, 영화적인 것을 고민하게 됐다. 하지만 한 작품을 만드는 데 2~3년이 걸리는 기존 방식으로는 이 급박한 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명의 감독들이 일을 나누되 빠르고 활기 있고 재미있게 영화를 만드는 즉흥 합주 같은 형식을 떠올렸다.

잼다큐멘터리 '강정'
대략의 시놉시스를 보니 주민들 간의 갈등도 담기는 것 같은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 일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더라. 제주도에서는 친척들 간 관계가 중요하고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권당' 문화가 있었는데 해군기지 문제 때문에 이런 전통이 많이 깨졌다.

찬성하는 분들과 반대하는 분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도 안 할 정도다. 우리는 양쪽의 입장을 다 담고,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드러내고 싶은데 찬성하는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일에 대해 주민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외부의 관심이 커지면서 주민들도 이 일이 단지 살림살이와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한국사회 전체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가 관련되었다는 점에 공감하고 진짜 문제가 뭔지, 어떤 다양한 대응 방식이 가능한지까지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그래서 찬성 혹은 반대로 가르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 우려하는 것 같다.

총괄프로듀서 경순 감독
새로운 시도인데, 가장 어려운 점이 뭔가.

아무래도 제작비다. 감독들 모두 재능 기부로 참여하고 있지만, 촬영팀이 8팀이고 현장이 제주도이다 보니 비행기값만 해도 천만 원 이상 들어간다. 사회적 제작 방식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