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허약한 드라마, 기대에 못 미친 비주얼 괴물과 함께 죽다

깊은 바다 속에 정체불명의 괴물이 산다. 그리고 그 괴물이 올라와 사람들을 공격한다. 1989년 작인 <레비아탄>이나 <딥 식스> 이야기일까.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은 괴물들에 쫓기며 하나둘씩 죽어간다. 그럼 1999년 작 <딥 라이징>이나 <딥 블루 씨>도 있다.

<7광구>는 이것저것 닮은 영화가 많은 작품이다. 소박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영화는 튀는 설정 없이 시종일관 이 선배 영화들의 흔적을 답습한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콘셉트조차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다.

<에이리언> 시리즈나 <타이타닉>, <다이하드> 등 여러 영화들의 설정을 짜깁기한 흔적들이 쉽게 눈에 띈다. 그럼에도 이 영화들이 지금도 사랑을 받는 것은 그 클리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B급 괴수영화로서의 성취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7광구>가 (영화 밖에서) 드러낸 목표는 이런 영화들이 아니라 <괴물>과 <아바타>다. 영화는 <괴물>보다 훨씬 생생한 괴물을 우리 기술로 만든다는 것과 한국영화 최초로 아이맥스 3D로 상영한다는 제작방식을 내세워 '한국 최초의 3D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스스로 붙인 채 출발한다.

이런 화려한 수사들은 상당한 부담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기대가 커진 만큼 실망은 배가 되기 때문. 가까운 예로는 '한국 최초'나 '국산 기술'을 앞세웠던 <디 워>가 있다. 게다가 <괴물>이나 <아바타>가 이룬 성취는 너무 크다. 따라서 <7광구>가 그 타이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함께 연출력의 뒷받침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괴물2>를 기대하게 했던 영화는 <디 워2>에 가까운 영화를 보여준다. 예의 '기술력'이 담겨 있는 괴물의 첫 등장은 영화의 후반부이고, 그 앞의 50분을 메워줄 드라마는 부실하다 못해 공허하다. 사실상 영화의 원톱인 해준(하지원)과 비밀을 가진 정만(안성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드라마 안에서 허무하게 소모되고 만다.

특히 캐릭터 소개 시간으로 소비되는 전반 30분은 지나치게 파편적이다. 여전사 캐릭터를 맡은 하지원은 시종일관 밑도 끝도 없이 대들고 화만 낸다. 감초 캐릭터를 맡은 박철민과 송새벽은 극 전개와 관련 없는 언어유희만 반복하다 사라진다.

심해 괴물의 존재를 설명해주는 과학적 상상력 역시 빈곤하다. 기본적인 드라마가 허약하고 장르의 특성이 사라졌다면 영화가 기댈 것은 하나뿐이다. 제작 초기부터 대대적으로 광고했던, <괴물>의 괴물을 뛰어넘는 '업그레이드 괴물'의 비주얼이다.

허약한 드라마의 부작용은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밀폐된 공간에서 괴물에 쫓기는 설정의 영화에선 대개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어색한 연기를 보여준 캐릭터들의 죽음은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못한다. 다만 특수 안경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괴물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한국판 시고니 위버가 된 하지원과 새로 탄생한 괴물의 대결은 확실히 전반부의 느슨함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긴박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대결은 어떤 명분도 없이 허무하게 끝난다. 결국 생존을 위한 전투였던 이 싸움은 <괴물>보다는 오히려 <차우>에 가까워 보인다.

<7광구>는 드라마와 비주얼 기술의 조화로 많은 담론을 남겼던 <디 워>와 <해운대>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 기술에의 '올인'보다, 드라마와 기술력이 조화를 이룰 때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은 <7광구>를 통해 다시 한번 재확인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