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남궁옥분 '재회'(1985년)격동의 80년대 대중의 심금 울려

예나 지금이나 변변한 히트곡 하나 없이 사라진 가수들은 무수하다. '히트곡 하나를 가지면 평생을 먹고 산다'는 대중음악계의 속설처럼 대중가수에게 히트곡의 존재 유무는 거론자체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중요하다.

대중을 상대로 하기에 대중의 반응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대중가수들의 영원한 갈등은 생성된다. 그러니까 인기는 순간이지만 작품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미지 변신이 이뤄졌지만 통기타 가수는 오랫동안 경제적 궁핍을 상징했다. 무명의 고단한 시절을 딛고 인기를 획득한 통기타 가수들 중에는 음악적 열정을 포기하고 연예인처럼 행동하는 가수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소모적 음악생활에 고뇌하며 뮤지션으로 다시 돌아가는 가수도 있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시기에 아이돌의 지위를 포기하고 자신의 창작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아티스트로 변신한 이상은의 경우는 후자일 것이다.

80년대에 절정기를 구가했던 남궁옥분의 대중적 이미지는 밝고 경쾌한 히트곡들을 많이 부른 인기가수로 각인되어 있다. 여고시절 순수노래모임 <참새를 태운 잠수함>의 동인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1981년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1982년 '꿈을 먹는 젊은이', 1983년 '나의사랑 그대 곁으로', 1984년 '설악산'등으로 히트퍼레이드를 벌이며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1983년 이후 남궁옥분은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던 소모적 음악생활에 대해 짙은 회의감이 들었다. 순수하게 시작했던 통기타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TV에 출연하고 음악프로그램이 아닌 각종 오락프로그램을 전전하며 방송국에서 원하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했던 생활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1985년 지구레코드 전속 1집으로 발표된 그녀의 8번째 앨범은 터닝 포인트다.

당시 음악적으로 방황했던 남궁옥분에게 김학래의 매니저였던 안정대가 '하덕규를 찾아가보라'고 권유했다. 하덕규와 남궁옥분은 명동 라이브클럽 <쉘부르>에서 함께 노래했던 음악친구 사이다.

당시 가요계 풍토는 인기가수라 해도 작곡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권리는 없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 경복궁 앞 화실에서 작업하던 하덕규를 찾아갔다.

세상에 나오기를 꺼렸던 그를 설득해 함께 작업을 하다 작품집 개념으로 볼륨을 확대했다. 당시 지구레코드 측에서는 무명 작곡가 하덕규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남궁옥분의 인지도를 생각해 제작을 결정했다. 이 앨범에는 건전가요 같았던 밝고 경쾌한 노래들이 실종되고 그 자리에는 사색적이고 독특한 감각의 노래들로 메워졌다.

총 9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창작한 8곡과 <참새를 태운 잠수함>의 총무 구자형의 창작곡으로 구성되었다. 하덕규 외에도 '재회'등 몇 곡은 이호준과 김명곤이 편곡에 참여했고 최이철, 함춘호, 이호준, 배수연등 당대 최고의 세션들의 참여는 이 앨범의 음악 완성도에 한 몫 단단히 했다.

타이틀 곡 '재회'는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하지만 짙은 여운으로 그려낸 명곡이다. 이 노래가 격동의 80년대 대중의 심금을 울린 이유는 가슴속에 묻어둔 사랑의 열병을 관조하는 재회의 느낌을 기막히게 해석한 남궁옥분의 탁월한 가창력과 이호준의 탁월한 편곡에 기인한다.

'재회'는 당시 각종 인기가요차트 1위를 장악하며 통기타 가수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10만장이 넘게 팔려나가 지구레코드 임정수 사장이 보너스까지 지불했을 정도.

대중적인 곡은 '재회'가 유일하다. '불새', '파랑새', '헤어진 그 슬픔을'등 다른 곡들은 록, 레게, 포크, 발라드등 다양한 음악장르의 향내가 진동한다. 특히 리메이크곡 '꽃을 주고간 사람'은 남궁옥분의 독특한 고음역대의 보컬이 압권이다.

이 앨범은 남궁옥분에게는 성공적 재기와 음악적 갈등을 해소시켜준 동시에 하덕규를 함춘호와 함께 <시인과 촌장>으로 뭉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계기가 되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